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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혜영 Aug 26. 2017

진흙 속에 핀 엘레지

J.D 밴스 『힐빌리의 노래 (Hillbilly Elegy)』

                                               

이 책은 소설이 아니다. 그럼에도 첫 장을 걷는 순간부터 믿기 어려운 사건들이 전개된다. 나중에는 에세이라는 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그곳의 이야기는 먼 세상 같았다. 차라리 소설이라면 그 가련한 삶의 끝을 행복으로 마무리 지을 거란 희망을 꿈꿀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 읽는 내내 어이없는 현실에 분통 터뜨리고 그런 일을 아무렇지 않게 견뎌내는 모습에 울고 웃기를 반복하며 더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의 저자 J.D 밴스는 세계 명문으로 꼽히는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현재 실리콘밸리에서 벤처캐피탈 회사를 운영하는 32살의 전도유망한 사업가다. 그런 이력을 가진 유명인사의 에세이는 대부분 누구보다 뛰어나고, 누구보다 똑똑하고, 세상 누구보다 노력해 소위 개천에서 용이 나왔다는 그런 이야기로 꾸려질 거라 예상한다. 어떤 면에서는 이 책도 그런 맥락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성공 스토리와 많이 다르다. 저자가 태어난 힐빌리 지역은 용이 나올만한 개천은커녕 미꾸라지 한 마리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시궁창에 불과했다.      


원제목인 ‘Hillbilly Elegy’(우리말로는 힐빌리의 슬픈 노래쯤이 되겠다)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가 자란 힐빌리는 최악에 가까웠다. 그곳은 어머니를 모욕하면 의식을 잃을 때까지 두들겨 팬 뒤 전기톱으로 썰어도 경찰에 잡혀가지 않는 곳이고 열 두 살짜리 계집애가 좀도둑에게 총질을 하고 도시의 3분의 1이 빈곤층이고 일을 하지 않고 타 낸 정부지원금으로 마약을 사는 곳이다. 그런 곳이다 보니 밴스의 가족 또한 결코 평범할 수 없었다.    

 

그곳은 일자리와 희망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큰 폭으로 사라져가는 동네였다. 부모님과 나의 관계는 좋게 말하자면 복잡한데, 엄마는 거의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약물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나를 키워준 외조부모님은 고등학교도 나오지 않았고 친척들까지 포함해도 대학에 진학한 사람은 거의 없다. 통계적으로 나 같은 아이들의 미래는 비참하다. 운이 좋으면 수급자 신세를 면하는 정도고 운이 나쁘면 헤로인 과다복용으로 사망한다. 자그마한 우리 고향 동네에서 작년에만 수십 명이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p.8)          


‘정말, 이런 사람이? 진짜, 이런 일들이?’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먼 세상의 이야기 같지만, 사실 그리 머지않은 곳에서 지금도 벌어지는 일들이다. 밴스의 할모와 할보가 아메리칸드림을 이루고자 잭슨을 떠난 게 1940년대 말이었다. 우리가 전쟁으로 폐허가 됐던 1950년대와 별 차이가 없다. 먹을 게 없어 지뢰밭을 넘나들며 고철을 줍고 미군부대 쓰레기통에서 음식을 가져와 끓여 먹던 그 시절과 말이다. 그래서 이 책 속 이야기들은 결코 남일 같지 않았다.     


100년이 채 되지 않은 시간 안에 전쟁고아국이란 낙인에서 벗어나 폐허를 일으켜 세운 것은 우리 윗세대의 희망이었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는 헐벗고 잠을 줄여 일을 하더라도 자식만은 더 나은 곳에서 안정되게 살 수 있길 꿈꾸었다. 밴스의 가족이 그랬듯이.      


2년 동안 할아버지와 함께 일주일에 한 번씩 점점 저 복잡한 수학 문제를 풀었고, 문제를 착실히 푸는 날에는 아이스크림이 상으로 주어졌다. 개념이 이해되지 않으면 자책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 좌절했다. 그러나 내가 뿌루퉁하고 있을 때마다 할보는 언제나 내게 다가와 다시 한 번 문제를 풀어보자고 했다. 엄마는 평생 수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지만, 내가 글자를 알기도 전에 나를 도서관에 데려가 도서대출 카드를 만들어 주고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려주며 언제든지 어린이 책을 집으로 빌려 올 수 있게끔 해줬다. 한마디로 우리 동네와 지역 사회에 만연한 분위기 속에서도 우리 집에서는 다른 가르침을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가르침이 나를 구원했을는지도 모른다. (p.104)     


약물중독에 빠져 나오지 못하는 엄마 때문에 대마초를 피우고 툭하면 학교를 결석하던 시기에도 할모는 밴스를 꼭 끌어안고 ‘절대 자기 앞길만 높은 벽으로 막혀 있다고 생각하는 빌어먹을 낙오자처럼 살지 말거라. 네가 하고 싶은 일이면 뭐든 할 수 있다.’고 격려했다. 밴스가 그곳을 나올 수 있었던 건 이런 가족의 사랑이 가장 컸다. 그곳의 여느 아이들처럼 폭력과 약물에 노출됐지만 언제라도 돌아갈 수 있는 안전한 할모집이 그에게는 있었던 것이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그런 안전한 공간마저 허용되지 않았다.      


훗날 할모와 해병대 덕분에 대학에 진학하고 로스쿨을 나온 밴스가 이 책을 쓴 건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가족들이 없었더라면 여기서 내 이야기도 전할 수 없었으리라.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단지 개인의 회고록이 아니라 애팔래치아에서 태어난 어느 힐빌리 가족의 눈으로 본, 기회와 신분 상승의 역사를 담은 가족의 회고록이라고 할 수 있겠다. 2세대 이전에 우리 외조부모님은 찢어지게 가난한 상황에서 서로를 사랑했다. 둘은 주변에 깔려 있던 지독한 가난에서 탈출하겠다는 희망을 품고 결혼하자마자 북부로 이주했다. 훗날 그들의 손자 (나)는 세계 유수의 교육기관을 이수했다. 이것이 간략한 줄거리다. (p.18)     


밴스를 시궁창에서 구한 건 우리가 동경하는 최대 선진국가 미국의 힘이 아니었다. 어떤 악조건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믿고 도와준 가족의 사랑이었다. 책장을 덮고 나는 묻고 싶었다.      


                                                                    “지금 많이 힘드세요?

                                                                              아니면

                                                                      지금 행복하세요?”      


만약 힘들다면 이 책을 탈출의 도움닫기로, 행복하다면 내일의 지침서로 읽길 바란다. 시궁창이 정화되는 기적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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