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누군가의 첫사랑
그때만큼 순수한 적이 없었다. 그때만큼 행복한 시간도 없었다. 또 그때만큼 아팠던 때가 없었다. 이전은 물론 그 후로도. 그 시간을 사람들은 ‘첫사랑’이라 말한다.
첫사랑에 당당하고 화려한 사람은 드물다. 처음 느끼는 낯선 감정에 어찌할 바를 몰라 동동 거리게 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처음이니까. 누군가가 마음에 들어온 일이, 오롯이 내 육신과 마음이 한 사람을 향해 기울어진 일이...
하루를 처음 만난 날, 후지시로는 그런 예감을 했다. 저 아이를 오래 바라보고 기억할 것 같다는 강렬한 느낌. 그리고 그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누구나의 첫사랑이 그렇듯 좋아한단 고백 한 마디 못하고 슬쩍 떨리는 손을 잡은 게 전부지만 헤어진 후로도 오랫동안 하루는 시로의 삶 속에 스며들어 있었다.
스며들었다는 건 나와 일체가 되었다는 것, 완전히 물들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가끔 나를 잊는다. 나를 잊으며 내 안에 스며든 것을 자주 잊는다. 아마 하루의 편지를 받지 못했다면 시로는 그렇게 제 안에 스민 하루를 잊고 덤덤하게 결혼하고 일하며 평생을 살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문득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고 새삼 나란 존재를 끌어안게 되듯이 내 안에 스며든 것들은 어느 순간 갑자기 나타나 온몸을 꽁꽁 사로잡기 마련이다. 시로에게는 하루의 편지가 그랬다. 십 년의 세월을 거슬러 날아온 하루의 편지엔 지금이나 앞으로의 이야기가 없었다. 그들이 한때 공유했던 그때 그곳의 이야기가 박제되어 있었다. 조금도 퇴색하지 않은 그들의 사진과 함께.
“확실히 거기 있는 것들.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이유는 찍히지는 않지만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것들과 만나고 싶기 때문이에요. 그때 내가 이곳에 있으면서 느꼈던 뭔가를 남기기 위해서 셔터를 누르죠.”
하루와 시로는 대학 사진 동아리에서 만났다. 그 때 그들이 손에서 놓지 않았던 수동카메라는 이제 박물관에 가서야 만날 수 있을 정도로 낡았다. 다시 기름칠을 하고 셔터를 눌러도 사진을 찍지 못할지 모를 정도로 긴 시간이 흘렀다. 그래도 사진은 그 카메라가 남긴 사진들만은 여전히 그날의 모습 그대로 남았다.
“내가 죽으면, 넌 날 잊어버릴 거야. 넌 틀림없이 내 얼굴도 목소리도 걷는 모습도 잊어버리겠지. 하지만 그래도 괜찮아. 내가 여기서 카메라를 만지고, 너와 얘기를 나눈 시간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사람들은 왜 사진을 찍을까? 단순히 아름다운 뭔가를 남기고 싶어서일까 아니면 소중한 뭔가가 사라지는 게 싫어서일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누군가와 함께 하는 순간이 오래 남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일거라 생각한다.
『사월이 되면 그녀는』에는 그들이 함께 한 일 년의 시간이 담겨 있다. 4월의 유유니에서 3월의 인도로 가는 여정. 그 곳으로 가는 길은 결코 순탄치 않다. 불륜을 꿈꾸는 사랑을 보고, 완벽한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을 만나고, 시리고 아린 이별의 순간을 겪는다. 그 일 년은,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세 사람의 시계가 겹쳐 만든 시간이다. 그리고 내 앞의 시계 역시 내가 머무는 곳과 지구의 시간, 그리고 우주의 시간이 만나 이뤄진다.
디지털 세상에 사는 우리는 사진을 찍고 지우는 일이 편해졌다. 다양한 각도에서 마구잡이로 찍고 바로바로 삭제를 하는 일이 흔해졌다. 사진 한 장을 지우면 그 안에 머물렀던 한 순간이 지워진다는 것쯤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사랑만은 영원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과연 사랑이 영원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면 이 책을 꼭 읽어 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