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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혜영 Jun 13. 2017

페미니즘 VS 휴머니즘

『1930년대 중국여성소설 명작선1』 어문학사

                                            페미니즘 VS 휴머니즘


                            『1930년대 중국여성소설 명작선1』, 어문학사



이 소설은 1920년대 후반에서 1930년에 쓰여졌다. 지금으로부터 8・90년 이전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그 부분에 가장 놀라게 된다. 그 옛날에 작가들이 지금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필력과 혜안을 갖추었다는 것, 그리고 그때의 삶과 지금의 삶이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것. 우리는 이 두 가지 사실에 경악에 가까운 놀람을 경험한다.


『1930년대 중국여성소설 명작선1』은 빙신, 루인, 천잉의 중・단편을 싣고 있다.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각기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 세 여류의 글은 저마다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었다.


제일 앞에 소개된 빙신의 『나뉨』은 태어나기 이전부터 신분이 정해진 두 신생아의 이야기다. 한 아기는 학식있고 부유한 부모의 첫아이로 태어나고, 한 아기는 가축을 도륙하는 백정의 막내로 태어난다. 같은 병원에서 나고 서로 나란히 놓인 요람에서 첫 밤을 맞이하지만, 요람을 벗어난 순간부터 둘의 인생은 전혀 다른 삶을 향해 나간다. 한 아기는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만, 다른 아기는 아빠를 따라 돼지를 잡아야 한다. 돈에 의해 나뉘는 신분의 세습. 빙신은 메스같은 필체로 부조리한 사회상을 날카롭게 해부했다.


천잉은 세 작가 중 가장 자유연애에 관심이 많다. 그녀의 작품 『아내』와 『사랑의 시작』 은 용감하게 사랑을 택하지만 여자라서 부딪히는 사회현실의 높은 장벽을 보여준다. 예나 지금이나 왜 사랑은 여자에게만 가혹한 것인지. 그녀의 작품을 읽으면 80년 전 그때에서 별로 벗어나지 못한 여성의 현실을 느낄 수 있다.


루인의 작품 『화염』은 중일전쟁에 출정한 군인의 시선으로 전쟁의 참혹상을 말한다. 전쟁은 인간이 만들어낸 최고의 비극이다. 거기엔 승자가 없다. 약탈과 방화, 살인이 만들어내는 폐허. 여류작가가 썼다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전쟁의 실상을 생생하고 예리하게 묘사했다. 중일전쟁은 중국과 일본만의 전쟁이 아니었다. 우리나라는 그보다 일찍 일본의 희생양이 되었던 과거가 있다. 끊임없이 불거지지만 조금도 진전되지 않는 친일파와 위안부문제. 과거 청산이 왜 필요한지 그녀의 작품을 통해 통감할 수 있다.


이 책에는 별다른 수식어가 붙지 않았다. 그저 1930년대 중국여성소설이란 제목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책을 읽고나면 우리는 이 작품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게 된다. ‘페미니즘’이란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현실을 직시하고 불의를 수정하는 일이 페미니즘이고 곧 휴머니즘이다. 남성, 여성이 아니라 그냥 사람. ‘여성소설’이란 그런 의미인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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