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의 테이프』 (미쓰다 신조/ 북로드)
“저는 늦은 밤에 미쓰다 신조의 책은 번역하지 않기로 하고 있습니다.”
『괴담의 테이프』 맨 뒷장에 실린 역자의 말이다. 나는 왜 책을 다 읽고 난 후에야 그 말을 발견했을까? 아마 책을 읽기 전, 그 문장을 먼저 봤더라면 조금은 덜 무서울 텐데 말이다...
“나는 늦은 밤에 미쓰다 신조의 책 리뷰를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술술 읽히는 가독성 때문에 오전에 집어 든 책을 반나절 만에 다 읽었다. 책장을 덮고 바깥을 보니 그 사이 어스름해졌다. 시계에 찍힌 시각은 오후 6시 40분. 나는 얼른 책상에 앉아 리뷰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마음이 급했다. 이 책의 서평은 반드시 어둡기 전에 끝나야 한다.
괴담의 사전적 의미는 기묘하고 이상한 이야기로 간단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괴담의 정체를 설명하기 어렵다. 고층 건물 밖을 떠다니는 발 없는 우등생, 아이를 잡아 간다는 홍콩 할매, 자정에 화장실 거울에 비치는 타인의 얼굴 등. 어린 시절부터 들어온 괴담은 성별, 장소 그 어떤 것에도 제한되지 않았다. 그 기이한 이야기들은 어디에나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었다. 그래서 더 두렵고 무서웠다.
이 책에 담긴 여섯 편의 괴담 역시 누군가에게 일어난 이야기라고 했다.
첫 장에 실린 『죽은 자의 테이프 녹취록』은 소설가이자 편집자인 주인공이 자살자들이 죽기 직전 녹음한 테이프 녹취록을 받으면서 시작되는 기이한 경험담이다. 단순한 자살 실황 테이프로 여겼던 녹음테이프를 듣고 정신상태가 이상해거나 사람이 실종된다. 주인공은 황급히 녹음테이프를 폐기하지만, 테이프의 저주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끝까지 따라 붙는 자살 실황 테이프. 어둠 속 목소리의 공포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빈집을 지키던 밤』 은 할머니가 혼자 있는 빈집을 지키는 고액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대학생 이야기다. 주인부부가 외출한 밤, 대저택에 홀로 남게 된 여대생은 절대 올라가지 말라는 3층에 발을 디디고, 그 순간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에게 쫓긴다. 과연 그 괴한의 정체는 무엇이고 여대생은 저택을 빠져 나올 수 있을까?
『우연히 모인 네 사람』에선 가쿠 마사노부의 초대를 받고 생면부지의 네 사람이 산행을 하게 된다. 초대를 한 가쿠는 나타나지 않고 험한 네가히산을 오르면서 기이한 일들을 겪는다. 그들이 오르는 네가히산은 옛날부터 지오 지방 사람들이 죽으면 돌아오는 곳이라는 전설을 갖고 있었다. 죽은 자들이 돌아오는 산세에서 그들은 어떤 일을 더 겪게 될까? 무사히 산을 내려갈 수 있을까?
『시체와 잠들지 마라』는 요양병원에 들어온 노인이 중얼대는 불가해한 이야기다. 곧 죽어갈 노인의 뼈밖에 남지 않은 몸뚱이에서 나오는 어린애 같은 목소리의 정체는 상상만으로도 온몸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주인공의 추리대로 두 사람의 혼이 바뀌기라도 한 것일까?
『기우메: 노란 우비의 여자』에서 사토루는 매일 집 앞 길목에서 노란색 우산과 우비를 입은 여자와 마주친다. 여자의 눈은 시커먼 구멍이 뚫린 듯 검은 자위만 남아 있다. 여자와 눈이 마주친 이후 그에게는 기분 나쁜 일들만 계속 벌어진다. 사토루는 여자에게서 벗어날 생각 때문에 일상생활을 못할 지경에 이른다. 그러던 어느 밤, 누군가 그의 창문을 두드리고 창문을 연 사토루는 사라진다. 사토루는 어디로 간 걸까? 그리고 여자는 대체 누구일까?
『스쳐 지나가는 것』은 매일 오가는 출근길에서 오싹한 검은 형체를 만나게 된 유나의 이야기다. 검은 형체는 조금씩 유나 가까이 다가오더니 급기야 집으로 찾아왔다. 늦은 밤 적요한 복도에서 들리는 노크 소리는 끝나지 않고 유나는 괴담을 믿는 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다. 친구가 도착한 후 노크 소리는 사라지지만, 그 날 사라진 건 노크 소리만이 아니었다.
괴담은 대부분 원혼과 관련이 있다. 원혼은 이승에서 할 말을 다 못했거나 할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한 혼령이다. 그들은 저승으로 가지 못한 채 사람들 사이를 떠돈다. 대부분 사람과 부딪히지 않고 지나치지만 어쩌다 마주치면 예외 없이 끔찍한 저주를 받는다.
괴담 앞에는 실제 있었던 이야기라는 단서가 자주 붙는다. 그래서 다른 호러보다 더 공포스럽다. 미쓰다 신조의 『괴담의 테이프』는 그 부분을 교묘하게 파고들었다. 실제와 허구 사이, 호로와 미스터리가 공존하는 그녀의 이야기는 읽을수록, 상상할수록 오싹하고 짜릿하다.
리뷰를 쓰는 사이, 주변이 많이 어두워졌다. 서둘러 마무리하며 다시 한 번 다짐한다.
“늦은 밤에는 절대 미쓰다 신조의 책 리뷰를 쓰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