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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달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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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혜영 Oct 10. 2017

제주를 걷다

- 제주 광치기 해변-

<광치기 해변가>


제주의 시월은 아름답지 않다

눈이 시리도록 말간 가을 하늘 대신 우중충한 잿빛 구름이 자주 출몰한다

흐리다 비가 내리기를 반복하는 시월의 변덕스런 날씨는

언제 밀려왔다 사라질지 모르는 제주 바다를 많이 닮았다


성산에 몇 차례 왔었지만 광치기 해변은 처음이었다.

이름부터 낯선 해변에 들어서니 숨돌림 틈 없이 파도가 밀려왔다

황금빛 모래사장 대신 펼쳐지는 검은 모래 언덕은 

한길에 못 미칠 정도로 짧았다


자칫 발을 헛딛으면 그대로 바다로 빠질 듯한 곳

투박한 풍경이 오히려 마음을 사로잡았다



                                 <제주 성산읍 고성리>


성산포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곳은 사라졌다

한때 갈대숲이 끝없이 이어진 늪지를 무척 좋아했었다

억새꽃 일색인 제주에서 유일하게 갈대를 볼 수 있어서였다

제주에서 갈대를 볼 기회는 거의 없다.


열 아홉 여름의 끝물, 

나는 그곳에서 갈대를 처음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다. 

속으로 우는 갈대의 울음이 좋아서였을 것이다.


이제 한참을 걸어도 끝이 뵈지 않던 갈대숲은 없지만, 

그곳을 지날 때마다 여전히 내 안에서 조용히 운다


                                               <제주 플레이스 캠프 인근>


한때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뜨겁던 사랑과 열정도 

시간이 흐르면 조용한 울음으로 남는다.

그제야 비로소 알게 된다..

진정한 사랑은 헤어지고 난 후에 시작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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