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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동에 겹쳐있는 4개의 레이어

by 우주가이드

탑동 TAPDONG


50년 전 탑동, 탑알, 탑아래, 탑바래, 탑바리라고 부르던 작은 마을에는 앞 바다가 있었습니다. 반짝이는 먹돌(감정색 자갈)이 굴러가는 소리와 동네 사람들의 소리가 어우러진 이곳에는 새로운 땅이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새로운 길, 새로운 건물이 생기더니 새로운 도시 만들어집니다. 완벽히 새롭게 창조된 도시가 바로 지금 탑동입니다. 탑동에는 4개의 레이어가 겹쳐 있습니다. 분명하게 다른 4개의 장면이 4개의 다른 탑동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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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024 김만덕기념관 개관 9주년 특별기획사진전 <산지천 포구, 항구가 되다> 전시


예전에는 탑동 바다를 앞바당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만큼 바다가 마을 가까이 있었죠. 조선시대 제주목(+)을 나타낸 지도나 그림에는 제주읍성 북벽 넘어 바로 바다가 표현됩니다. 제주읍성의 북벽은 현재의 제주북초등학교 북쪽 울타리에 접한 북성로 따라 있었는데, 지금도 지적도를 보면 둥글게 돌아가는 길에서 성벽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마을에서 가까운 곳에 바다가 있었고, 이 바다는 모두의 바다였습니다. 해녀의 삶의 터전이었고, 마을 사람들은 이곳에 나와 바릇 잡이를 했으며, 아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했습니다.

(+) 조선시대 제주의 행정 구역은 전라도에 속해 있는 1목 2현이었는데 지금의 제주시 지역이 제주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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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7184.jpg 사진. 2024 김만덕기념관 개관 9주년 특별기획사진전 <산지천 포구, 항구가 되다> 전시


1976년 제주시는 탑동의 해일 피해를 방지하고 해안도로를 개설하여 임해 관광단지를 조성할 목적으로 탑동 매립 계획을 수립합니다. 그리고 두 번에 걸쳐 바다 매립을 진행합니다. 1차 매립은 1980년 5월에 완료되었습니다. 이때 탑동에는 제주서울호텔(현재 맹그로브)과 오리엔탈호텔 등이 들어섰습니다. 이어서 1982년에 제주시는 2차 탑동 매립 기본 계획안을 수립했고, 10년에 걸쳐 1991년 준공된 탑동 매립지에는 대형 호텔, 상업시설, 탑동 광장이 들어서게 됩니다. 새로운 도시는 활기를 가져다 주기도 했지만, 누군가에게는 상실을 가져다 주기도 했습니다. 앞 바다를 매립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들과 부딪치는 모습도 두 번째 장면 중 하나입니다. 매립된 탑동에는 관광객과 도민이 많이 찾는 장소가 됐고, 탑동의 이미지는 조금씩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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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탑동은 활기가 넘칩니다. 식당에는 관광객이 가득하고, 바다가 보인다는 극장에는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광장에선 젊은 청년들이 밤새 농구하고, 맥주를 마셨습니다. 이 청년은 이제 나이가 들어 주말이면 자식들과 이곳으로 나와 여유를 즐기기도 합니다. 탑동의 세 번째 장면을 기억하는 세대에게 탑동은 기분 좋은 순간을 추억하는 곳입니다. 이 세대가 나이 든 만큼 탑동도 나이가 들고, 힘이 빠지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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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동의 마지막 네 번째 레이어는 현재입니다. 탑동의 현재는 재생입니다. 횟집에 드나들던 대형 관광버스는 모습을 감춘 지 오래고, 제주 최고의 핫플레이스였던 극장은 문을 닫았습니다. 용도를 다한 건물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새롭게 만들어낸 도시, 임해 관광단지를 꿈꿨던 도시엔 그에 걸맞은 대형 건물이 많이 생겼습니다. 용도를 다한 대형 건물은 새로운 용도를 찾기 어렵습니다. 탑동은 마치 유령도시같이 한동안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새로운 액션이 시작되었고, 빨간색 미술관 아라리오뮤지엄으로부터 재생이라는 이름의 프로젝트가 펼쳐집니다. 활기를 잃었던 도시는 조금씩 활력을 되찾고 있습니다. 이 장면을 경험하고 싶은 새로운 세대는 지금 탑동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4개의 레이어가 있다는 건 탑동을 경험한 사람들은 각자 다른 레이어를 경험했고, 이곳을 기억하는 장면도 다르다는 뜻입니다. 4개의 레이어는 약 50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쌓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이곳에는 4개의 레이어를 경험한 모든 세대가 함께 탑동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물론 각자 다른 장면으로요.

여러분은 어떤 장면으로 탑동을 기억하고 있나요? 그리고 앞으로 어떤 장면으로 기억하게 될까요?



탑동을 더 재밌게 여행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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