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채워나갑니다. 오감이 열려 있는 여행에서는 아주 조금의 노력으로도 필요한 것을 채울 좋은 기회입니다.
제주를 여행하시나요? 세 가지 지식만 살짝 담아보세요. 제주는 여러분들에게 더 많은 것을 채워줄 것입니다. 그러면 제주 여행이 훨씬 재밌어집니다.
1. 제주는 화산섬이다
제주 여행에서 가장 큰 기대는 자연일 거 같아요. 제주도에 따라오는 수식어 역시 환상의 섬, 세계자연유산, 천혜의 자연과 같이 항상 제주의 자연을 담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풍광을 쫓는 여행자에게도, 소박한 감성을 좋아하는 여행자에게도, 신비한 장면이 궁금한 여행자에게도 제주의 자연은 언제나 기대에 부응합니다.
햇살이 따사로운 초원에 드러누워 한가하게 휴식의 시간을 보내는 것은 멋진 일이다. 그러나 산과 시냇물, 오리나무 숲과 멀리 우뚝 솟아 있는 산봉우리들과 더불어 이 초원에 친숙하고 그 땅을 잘 아는 자만이 그러한 풍경을 충분히, 백배는 더 깊고 더 고상하게 즐길 수 있다. 그러한 한 조각의 조그만 땅에서 땅의 법칙을 읽고, 형성과 식생의 필연성을 꿰뚫어 보고, 그 필연성을 그곳에 사는 주민들의 역사, 기질, 건축 양식, 말투, 복장과 관련해서 느끼려면 사랑과 헌신, 연습이 필요하다. 그래도 그렇게 노력하면 보람이 있다. 그대가 열성과 사랑으로 친숙해져서 그대의 것으로 만든 땅에서 그대가 휴식을 취하는 모든 초원과 암석은 그대에게 자신의 모든 비밀을 알려주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부여하지 않는 힘으로 그대를 키워준다. <헤르만 헤세의 [여행에 대하여] 중에서, 1904년>
120년 전 헤세의 글처럼 제주에 발을 딛고, 제주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아보는 노력을 한다면 제주는 기꺼이 자신의 비밀을 알려줍니다.
제주의 자연은 화산 활동으로부터 시작됐습니다. 180만 년 전 한반도 남쪽 바다 아래에서 폭발한 화산은 오랜 시간 동안 이어졌고, 결국 망망대해에 섬을 만들어 냈습니다. 섬이 만들어진 후에도 땅속 마그마는 멈추지 않았고, 이제는 바다가 아닌 섬 위로 용암을 쏟아 냅니다. 분출한 용암은 온 섬을 흐르며 한라산, 성산일출봉, 오름, 용암동굴과 같은 화산 지형을 만들어 냅니다. 제주에서 우리가 걷는 모든 곳은 용암이 흘렀던 곳입니다.
‘만약 지구에서 화산 활동이 없었다면 우리가 보는 풍경은 아주 지루했을 것이다.’라고 할 만큼 화산 활동은 인상적인 장면을 많이 만들어 냈습니다. 그 환상적인 모습을 제주에서는 발길 닿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섬 전체가 화산 활동의 흔적이다 보니 풍경은 물론 학술 가치 또한 전 지구적으로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제주의 지질이 연구 대상이 되고, 전 세계 과학자들이 궁금해합니다. 유네스코는 생물권보전지역, 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하며, 제주의 가치를 인정하였습니다.
제주를 여행하면서 섬 위를 흐르던 붉은 용암을 상상해 볼까요? 지금은 까맣게 변한 돌이 뜨거운 용암이었던 상상만으로도 제주는 훨씬 스펙터클한 섬이 됩니다.
2. 제주는 독립 국가였다
지금의 제주도가 있기 전 이 섬에는 ‘탐라’라는 독립 국가가 있었습니다. 인류의 역사가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로 넘어갈 즈음 시작해 - 독립 국가의 정체성이 완전히 사라진 정확한 시점은 여전히 논의 중이지만 - 고려의 지방 행정구역으로 탐라군이 설치된 1105년을 탐라의 마지막으로 본다면, 천 년이 넘는 독립 국가로 지낸 시간이 탐라국이 사라진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시간보다 더 길었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제주를 여행하다 보면 독특한 문화, 다른 언어, 생소한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찌 보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서로 다른 두 나라가 하나의 나라가 되고, 그 흔적을 완전히 지우기 위해서는 훨씬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탐라는 섬나라이기에 폐쇄적인 환경을 갖고 있어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었지만, 주변 나라의 문화를 - 자의 또는 타의로 - 받아들이는 모습도 보여줍니다. 제주 사람들이 쓰는 말을 듣다 보면 “어? 이게 정말 같은 나라 말이야?” 하게 됩니다. 사실 현재의 제주어는 탐라 시대에 사용했던 언어가 아닌 11세기 이후 섬으로 들어온 후기 고대 한국어 또는 초기 중세 한국어로 추정합니다. 보다 이전에 사용하던 언어에 대해서는 고증할 사료가 많지 않아 정확히 어떤 언어를 사용했는지 확인할 수 없습니다.
제주 사람들이 쓰는 언어를 제주어라고 한다면, 구전으로 계속 전해진 이 언어는 탐라의 정체성을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탐라는 섬으로 들어온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받아들인 문화 위에 그들만의 문화를 계속 만들어 나가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독립성을, 때로는 개방성을 보이며 살아왔던 모습이 탐라의 정체성입니다.
지금 제주의 모습 중에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과 다른 것들이 보인다면 탐라에서부터 이어진 제주만의 정체성을 발견해 보세요. 제주가 훨씬 입체적이고 풍부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여행이 더욱 재밌어지거든요.
3. 제주는 사면이 바다다.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의 배경에는 항상 바다가 있습니다. 사면이 바다인 섬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죠. 제주는 어디에서나 바다가 보이고, 어디에서나 쉽게 바다에 갈 수 있습니다.
섬을 둘러싼 바다는 환상적인 풍광을 전해주는 것은 물론 바다만이 만들 수 있는 섬의 이야기도 들려줍니다. 바다는 제주 사람들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 있습니다. 바다를 이용하는 이곳 사람들의 이야기는 ‘시간’, ‘바람’, ‘해류’라는 단어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시간은 농경에 맞춰 흘러갔습니다. 그래서 이십사절기가 중요했죠. 씨를 뿌릴 때, 못자리를 마련할 때, 추수할 때를 알기 위해 계절의 변화를 알아야 했습니다. 변하는 계절에 맞춰 시간을 만들었죠. 반면 바다가 삶의 터전인 제주도에서는 농경의 시간보다 바다의 시간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제주의 시간은 이십사절기가 아닌 물때였습니다. 바닷물이 언제 들어오고, 나가는지, 바다에 언제 들어가고, 나와야 하는지, 바다를 이용해야 하는 제주 사람들이 알아야 하는 시간은 바로 물때였습니다.
바다에 나가기 위해서 바람도 중요했습니다. 바람을 알고, 바람을 이용할 줄 아는 사람만이 바다에 나갈 수 있었습니다. 제주는 2월부터 본격적인 바다의 시간이 시작됩니다. 겨울 계절풍이 끝나 따뜻한 바람으로 바뀌면서 본격적으로 바다에 나갈 준비를 하는데, 이 시기에 섬 곳곳에서는 아주 극적인 장면이 연출되기도 합니다. 바람이 바뀌는 자연 현상을 신이 주관하는 것으로 믿고, 그 신을 정성껏 맞이하고, 잘 보내드리는 축제를 펼칩니다. 바로 영등신을 맞이하는 영등굿입니다.
시간, 바람과 함께 또 하나 중요한 건 해류입니다. 물의 흐름을 이용해 바닷길을 만들고, 그 길을 통해 바다를 다녔습니다. 제주의 동쪽, 하도 해안 앞에는 작은 섬이 하나 있습니다. 하얀 모래가 바위로 둘러싸여 있는, ‘토끼섬’이라고 불리는 섬입니다. 이곳에는 문주란 군락이 형성되어 있는데, 아프리카에서 자라던 문주란은 북방 한계선이 제주도여서 우리나라에서는 제주에서만 만날 수 있는 식물입니다. 그만큼 학술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하고 있기도 하죠. 이 식물은 아프리카에서 바다를 타고 동아시아, 오스트레일리아로, 그리고 태평양 건너 미국까지 이동했습니다. 토끼섬 문주란은 일본 오키나와나 규슈지방에서 쿠로시오 해류를 타고 유입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해류를 타고 이동한 건 문주란뿐이었을까요? 아마 인류도 이 해류, 바닷길을 따라 교류하고, 새로운 사람이 오가고, 새로운 문화가 전파됐을 거 같습니다. 섬 주변을 흐르는 해류 역시 제주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바다를 이용하기 위해서 제주 사람들은 초자연적인 힘을 빌리기도 했습니다. 프랑스 역사학자이자, 아날학파* 1세대 뤼시앵 페브르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바다 사람들에게 자연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 사이의 교류는 늘 정상적(normal)이었고, 지속적이었다. 그들은 우주에 대한 신비적인 비전, 보편적인 비전을 갖고 있었다.” 역사학자의 시선에서도 제주 사람들이 행했던 무속은 비정상이 아닌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이었습니다.
* 아날학파: 전통적 정치사 중심의 역사학에 반발해 사회경제적 구조와 일상생활을 중시하는 접근을 중시했던 역사 학파
제주도에 관한 이 세 개의 지식은 섬이 만들어지고 지금까지 섬 위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이해할 수 있는 배경입니다. 이것을 알고 제주를 여행하면 제주도의 멋진 장면, 맛있는 음식, 재밌는 콘텐츠가 더 멋있고, 더 맛있고, 더 재밌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