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지질혈증. 혈액 중에 지방 성분이 과다하게 많이 함유된 상태를 말합니다. 평소 운동도 많이 하고 과체중도 아닌데 참 고약한 바이러스가 내 몸에 들어왔습니다. 뚜렷한 원인은 찾지 못하고 유전적 요인일 것으로만 판단하니 참 답답합니다. 그래서 요즘 식단 조절을 하고 있습니다.
조절을 시작하면서 가장 불편한 건 누군가와 식당에서 밥을 먹는 일입니다. 점심, 저녁 약속에, 식당에서 먹을 수 있는 메뉴는 너무 제한적이며, 그마저 어려운 상대와의 식사 자리에선 도저히 제 식단을 맞출 수 없습니다. 자연스레 식사 약속은 줄어들었습니다.
미루다 미룬 친구와 만남이 있었습니다. 제 사정을 충분히 이해하는 친구는 이미 점심 메뉴를 정해놓았습니다. 물고기 세상에서 해초 비빔밥. 메뉴를 듣고 흰 쌀밥이 마음에 걸렸지만 이 정도면 나를 얼마나 배려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물고기 세상은 이미 동네 주민들에게 맛집으로 소문난 집이랍니다. 점심 식사가 한창인 시간에 가면 줄을 설 정도로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우리는 조금 일찍 나섰습니다.
11시 30분쯤 식당에 도착하니 자리는 여유 있었습니다. 메뉴판을 볼 것도 없이 이미 정한 해초비빔밥 두 개를 시켰습니다. 정확한 메뉴의 이름은 돌솥해초비빔밥이었습니다. 이곳은 다 좋은데 단점이 있어. 불친절해. 친구가 작은 목소리로 전해줍니다. 동네에선 이미 그렇게 소문이 났나 봅니다. 평소 ‘친절과 불친절은 상대적인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개의치 않고 음식을 기다리며 식당 안을 둘러보았습니다. 사장님은 바쁜 주방에서 친절하게 손님들을 응대하고, 홀에서는 한 분이 고군분투하고 계셨습니다. 아마 불친절 소문의 근원은 홀에 계신 분인 듯합니다. 특유의 투박함이 보이지만 특별히 불친절하다고 느껴지진 않습니다. 소문은 소문이 되어 소문을 만들어 냅니다.
뜨거운 돌솥에 해초비빔밥이 나왔습니다. 소스를 넣고 비벼 먹으라고 설명을 해주십니다. 고추장을 생각했지만 마치 옅은 굴 소스 같은 모습의 특별한 소스입니다. 열이 식기 전에 소스를 넣고 비볐습니다. 해초가 꽤 많이 들어있어 맛이 궁금했는데 첫 숟갈에 입으로 들어간 비빔밥은 과하지 않게, 각 재료의 향을 모두 느낄 수 있는, 밸런스가 너무 좋은 음식이었습니다. 사실 메인 메뉴가 나오기 전 차려진 밑반찬에서 이미 예상(혀가 느끼는 맛이 아닌 충분히 훌륭한 음식일 거라는 예상)을 했습니다. 재료는 신선했고, 모든 반찬은 오차 없이 정확하게 딱 떨어지는 맛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간이 적당할 수 있지. 먹는 내내 수도 없이 내뱉은 말이었습니다.
오랜만에 기분 좋은 식사였습니다. 사람은 먹고 싶은 걸 먹지 않으면 우울해집니다. 요즘 많이 느끼는 감정입니다. 이런 외식이라면 가끔은 시도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