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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유정 Mar 08. 2021

두 번째 꿈은 실패하기 싫어서

저는 아나운서 지망생'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꿈을 꾸고 계신가요?


저는 한때 아나운서를 꿈꿨던 사람입니다. '한때 아나운서였다'도 아니고 '꿈꿨다'라니 쓰고 보니 창피하네요. 결국 못 했다는 거면서 괜히 그럴싸하게 쓰는 것 같잖아요. 또 꿈이라는 건 누구나 꿀 수 있고 어떤 직업으로든 쉽게 대체될 수 있는 거니까요. 이를 테면 '난 대통령이 꿈이었어', '나는 변호사가 꿈이었어', '나는 아이돌이 꿈이었어' 그런 말인들 누가 못하겠어요. 초등학교 10살 때부터 마지막 시험을 치렀던 24살 때까지 꼬박 15년을 바랐는데, 못난 과거형 꿈이 되었습니다. 남들이 보기엔 처음부터 꾸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겠죠. 결국 이뤄내지 못했으니까요.


실패를 받아들이는 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는지 모릅니다. 실은 아직도 종종 패배감에 사로잡혀 우울해지곤 해요. 저는 정말 제가 해낼 수 있을 줄 알았거든요. 제가 제일 간절하다고 생각했고요. 처음엔 믿기지 않아서 어떻게든 실패했다는 사실을 외면하려고 했습니다. 제일 먼저 인스타그램 피드에 남아있는 꿈의 흔적들을 다 지웠어요. 카메라 테스트를 보러 간 날에 방송국에서 찍은 사진이라든가, 스튜디오에서 프로필 사진을 찍었던 날의 이야기 같은 것들이요. 누군가 이 흔적들을 보고서 '얘 아나운서 하겠다고 애쓰더니 결국 실패했나 보네'라고 생각할 것 같더라고요. 또 아무도 놀리지 않았지만 너무 창피할 것 같고, 아무도 불쌍히 여기지 않았지만 초라해 보일까 봐서요. 한 때는 참 자랑스러워하며 업로드했던 사진들인데 한 장, 한 장 지우는데 참 씁쓸했습니다. 열정을 펄펄 끓였던 시간이 길었던 만큼 식히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필요한 걸까요.


실패라는 것. 다들 성공으로 가는 길이라고들 하죠. 실패는 우리를 더 단단하게 하고,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하니까요. 그런 시간이 쌓였을 때 우리는 결국 더 큰 성공을 일궈낼 수 있을 테고요. 저도 그게 무슨 말인지 알고 있고 백 번 천 번 공감하는데요. 코앞에 마주한 실패는 정말 쓰더라고요. 일단 실패했다는 사실에서 한 번, 그걸 받아들이는 시간 속에서 또 한 번 침울해집니다. 마치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만 있는 것 같았어요. 꿈을 이룬 부류의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그리고 그중 제가 후자에 속한다는 게 어찌나 사무치던지요.


그래서 간절하지 않았던 척도 해봤습니다. 열심히 하지 않은 척도 해봤고요. 그런데 제 스스로가 제일 잘 알잖아요. 사실은 간절했고, 나름 치열했다는 거. 아닌 척하는 게 저를 더 비참하게 만들더라고요. 아직도 그 꿈만 떠올리면 못 잊은 첫사랑을 떠올리는 것처럼 마음 한편이 저릿합니다. 막 세상이 끝난 것처럼 답답하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요, 역시 죽으란 법은 없나 봐요. 두 번째 꿈이 생겼거든요. 이렇게 글 쓰는 일이요. 생각해보면 아주 어릴 때부터 일기든 독후감이든, 뭐든 쓰는 것을 좋아했어요. 대학 입시도 논술 전형으로 치러 합격했고, 대학생 시절엔 블로그 포스팅이 취미였고요. 제게 글은 너무 일상적인 것이어서 꿈이 될 수 있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글을 쓰며 치유의 시간을 가졌더라고요. 그러다가 매거진 에디터 인턴으로 일하게 됐는데, 이전보다 훨씬 많은 글을 읽고 선배들의 도움으로 제 글을 갈고닦으며 글의 매력에 완전히 빠져버렸습니다. 마이크를 잡았을 때 말고, 심장을 뛰게 만드는 두 번째 꿈을 만나게 된 겁니다.


그때부터 사람들의 마음을 고루 어루만져줄 수 있는, 따뜻한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어 졌어요. 제가 글을 읽고 쓰며 힐링의 시간을 가지듯, 누군가 제 글을 읽고 마음이 누그러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런 독자의 모습을 상상하면 참 짜릿합니다. 그래서 요즘은 밤낮으로 글을 쓰고 있어요. 낮에는 회사에서 금융 기사를 쓰고, 밤에는 지금처럼 일상 에세이를 쓰고 있습니다. 친한 디자이너 언니와 컬래버레이션으로 연애 관련 콘텐츠도 만들고 있고, 장르를 불문하고 예전보다 훨씬 많은 글을 읽기도 합니다. 정말 열심히 하고 있어요. 두 번째 꿈은 실패하기 싫고, 정말 잘해보고 싶거든요.


제 두 번째 꿈의 결말이 어떻게 될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분명한 건, 한 번 실패해본 경험과 그 실패를 딛고 일어서 본 기억이, 저로 하여금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도와줄 거란 거예요. 또 실패하더라도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시간이 치유해줄 것이고 또 다른 꿈이 찾아와 줄 거라고 믿으니까요. 이렇게 생각하니까 저도 마음이 훨씬 편하네요. 이제 몇 년 전처럼 꿈을 향해 달려갈 일만 남았습니다.


이제는 첫 번째 꿈이 좀 잊혔냐고요? 아니요. 오히려 앞으로는 더 선명하게 기억하려고 합니다. 창피한 기억인 줄 알았는데, 끝내 이루지 못했더라도 꿈을 꾸는 동안 제 모습은 찬란하게 빛났더라고요. 또 그 시간이 지금의 저를 만들어줬을 거고요. (역시 시간이 약인가 봐요. 이렇게 정신 승리도 되고 말이에요.) 아팠던 만큼 성장한 것도, 실패의 경험이 저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 것도 사실이니까요. 어떤 꿈과 일에 미쳐봤던 지난 기억이 제 두 번째 꿈을 이룰 수 있는 자양분이 되어주지 않을까요? 더 이상은 꿈을 꾸는 게 무섭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꿈을 꾸고 계신가요?




 양유정

사진 김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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