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노력 참 많이 했으니까 후회는 말자
끌림 하나로 만났던 사람이 있다. 찌릿. 처음 눈이 마주쳤던 순간 전기에 오른 것처럼 잠깐 세상이 멈췄다. 저 사람은 누굴까? 어떤 사람일까?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 찼다. 그는 묘한 긴장감이 주는 사람이었다. 외모부터 행동까지 나랑 정반대여서 그랬을까. N극과 S극이 서로를 잡아당기듯 우리는 서로 다름이 가져다주는 강한 끌림을 믿고 연애를 시작했다.
하지만 '끌림'은 너무 많은 것을 간과하게 했다. 운명인 줄 알았던 그와 나의 궁합은 최악이었다. 음식 취향, 영화 취향은 물론이고 싸우는 이유나 화해하는 방식도 정반대였다. 나는 한식을 좋아했고 그는 일식을 좋아했다. 나는 한국 영화를 즐겨봤고 그는 주로 외국 영화를 본다고 했다. 나는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솔직하게 말하고 그 자리에서 풀고 싶어 했는데, 그는 내 솔직함에 지나치게 상처 받았다. 그가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면 난 그를 기다리는 동안 피가 말랐다. 취향이 다른 것까지는 (한 번씩 양보하는 식으로) 맞춰볼 수 있었지만 우리 사이에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하는 방식이 다른 건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그가 혼자 충분히 생각하고 내게 하고 싶은 말을 정리하는 동안 나는 너무 지쳐서 화해할 의지를 상실했다. 그는 그런 나를 보고 또 지쳐버리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맞지 않는 퍼즐 두 조각을 이리저리 돌려 끼워 봤자 맞지 않는 퍼즐일 뿐이었다. 단 한 번도 언성 높여 싸워본 적 없었지만 어쩌면 그보다 훨씬 힘든 연애였다. 같은 것에 웃고 울고 같이 싸우고 같이 화해했으면 좋았을 텐데. 우리는 연애 중이었지만 각자 고군분투하느라 외로웠다.
시간도, 사랑도 해결해줄 수 없는 게 있다. 처음 그를 봤을 때 느꼈던 묘한 긴장감이 완벽한 타인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낯섦으로 바뀌었을 때, 나는 이별을 택했다. 그 사람과 헤어지는 것으로 나와 그를 지키기로 마음먹는 거다. 우리 둘 다 조금은 더 잘 맞는 사람을 만나 수월한 연애를 했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면서. 그 모든 것을 이겨낼 정도로 사랑하지 않은 거 아니냐고 되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맞는 말이다. 나는 나를 해치면서까지 그를 사랑할 자신이 없었다.
최근 카카오TV의 웹 예능 <체인지 데이즈>를 보는데 그가 떠올랐다. <체인지데이즈>는 이별을 고민 중인 세 커플이 한 집에서 일주일 동안 생활하면서 애인을 바꿔 데이트하는(!) 프로그램이다. 그중 한 커플은 10년이나 만난 장수 커플인데, 끊임없이 싸우고 서로에게 모진 말을 한다. 예상했다시피 이미 여러 차례 헤어졌다가 다시 만났다고. '저렇게 안 맞으면 그냥 헤어져야 하는 거 아니야?’ 그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하다가 그때의 우리가 생각났다. 우리도 그런 마음으로 만났던 거니까. 이 관계에 희망이 없다는 걸 알면서, 끝인 걸 알면서 이별을 차일피일 미뤘던 우리. 프로그램 속 커플도 서로 너무 안 맞는 걸 잘 알지만 그게 누군가의 '잘못'은 아니기에 쉽게 헤어질 수도 없었던 거겠지. 하지만 매일 치열하게 서로의 다름을 놓고 싸우면서 10년이 흐른 지금, 그 둘에게 남은 게 도대체 무엇일까. 더 상처주기 위해 나쁜 말을 일부러 고르고, 서로를 향한 눈빛에 애정이 없는데. 이런 걸 보면 <체인지데이즈>의 기획 의도는, 이별할 용기가 없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괜찮겠다는 용기’를 주고자 함이 아닐까 싶다.
사랑하면서 이별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사랑해서 헤어진다는 말이 왜 나왔는지 이제는 안다.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다. 매일 밤 울며 잠들었던 시간과 더 행복해질 수 없을 것 같다는 무력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혹시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 전력 질주를 하는 듯한 연애를 하고 있다면, 그리고 그 연애가 나와 내 일상을 철저하게 짓밟고 있다면 그만 버티고 내려놓기를. 서로의 손을 놓아야 행복이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다.
글 양유정
그림 소우주 (instagram@sowoojoo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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