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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유정 Dec 11. 2021

스물일곱의 끝자락에서 쓰는 일기

나의 스물일곱에게_Epilogue



12월만 되면 싱숭생숭해지는 건 올해도 어쩔 수 없다. 크리스마스 파티를 할 생각에 들떴다가, 한 해를 또 보내줘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가라앉았다가 한다. 괜히 휴대폰 앨범을 열고 2021년 1월 사진부터 찬찬히 훑으며 지난 한 해를 돌아봤다. 첫 자취, 첫 칼럼 연재 계약, 첫 퇴사, 첫 이직 등 굵직한 사건을 대변하는 사진이 눈에 띄었다. 그것만으로도 참 바빴고 스스로가 충분히 대견하지만, 솔직히 올해 이루고자 했던 목표는 더 많았다는 사실. 결의에 찬 표정과 경건한 마음으로 2021년 플래너 맨 앞장에 27살 버킷리스트를 적어 내려갔던 기억이 난다. 그중 '일부'를 공유하자면 이렇다.

✔ 이직하기 (O)
✔ 자취 시작 (O)
✔ 유튜브 꾸준히 업로드하기(2주 1회) (X)
✔ 브런치 에세이 연재하기 (O)
✔ 연말에 굿즈 제작 (   )
✔ 가계부랑 일기 쓰기 (△)
✔ 탁구 레슨 등록하기 (X)
✔ 경제, 마케팅, 데이터 관련 자격증 취득하기 (X)
✔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   )
✔ 자기 전에 스트레칭하고 자는 습관 들이기 (X)
✔ 평소에 물 많이 먹기 (X)
✔ 필름 카메라 연습하기 (X)
✔ 코로나 풀리면 해외여행 (X)

(*남은 2~3주간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항목은 비워두었다.)

부끄럽지만 성공한  별로 없다. 이십  후반이 되었다는 사실에(=이십 대가 끝나간다는 생각에) 괜히 조급해져 여느 때보다 무리한 계획을 세웠던  같다.  이루기는커녕 달리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회사는 적응할만하면 새롭고, 공부는 해도 해도 끝이 없고. 체력은 좀처럼 따라주지 않았다. 그래서 애써 세웠던 계획들을 완전히 잊고  듯하다. 그냥 하루를 살아내는 것도 버거운 날들이 많았으니까. 계획이고 뭐고, 갓생이고 뭐고, 커피와 비타민에 의지하며 주말만 기다렸으니까.


그래도 스스로에게 떳떳할  있는 , 어느 순간에서든 배울 점을 찾고  걸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는 매일 실수를 되짚으며 성장하고 있고, 자취방에서는 집안일을 혼자 감당하며 살아오신 엄마의 삶을 배우는 중이다. 소중한 친구를 잃을  있다는  느꼈고, 먼저  내미는 법을 배웠으며, 사랑하는 사람의 일관된 따뜻함이 당연한  아님을 깨달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이를 먹는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알게 됐다. 어리다는 이유로 용서받던 ‘찬스 사라졌단 뜻이고, 책임질  많아진다는 뜻이고, 어김없이 치열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이가 저절로 해결해주는  아무것도 없는  같다.


죽도록 피하고 싶어도 며칠 뒤면 나는   살을 먹게 된다. 피할  없으므로 나는   살기 위해 스물여덟의 계획을 세우겠지. 스물여덟의 양유정은...   빼고 살았으면 좋겠다. 제대로 해내야 한다는 생각과 멋지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하루 종일 스트레스와 기싸움하는 대신, 그냥 오늘 하루를 만족스럽게 살았으면. 시간에 쫓기며 동동 거리며 사는 삶과 여유로운 시간 부자로 사는  중에서, 마지못해 사는 삶과 기꺼이 사는  중에서, 걱정 때문에 매일    드는 삶과  개운하게 아침을 맞이하는  중에서, 어떤 삶을 살지 선택하는   몫임을 이제는 안다.


헤어지는   아쉽고 슬프지만 여느 때보다 기꺼이  해를 보내줄  있을  같다.


안녕 스물일곱, 고마웠어.


2021년 12월 11일, <나의 스물일곱에게>를 마치다.



양유정

그림 지안 (instagram@inside_gsu)



<나의 스물일곱에게> 시리즈 다시 읽기

프롤로그 : 얼렁뚱땅 서른이 될 순 없으니까
01 : 인생에도 내비게이션이 있다면

02 : 변하는 내 모습이 맘에 들어

03 : 내 결혼 생활은 이런 모습이기를 
04 : 정리하지 못한 방, 정돈되지 않는 삶

05 : 누가 뭐래도 진심을 다할 거예요
에필로그 : 스물일곱의 끝자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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