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부계정’을 팠다. 내가 불행한 건 비밀이니까 당연히 비공개로.
“최근에 가장 행복했던 일 하나씩 말해봐.”
누구를 만나든 기계처럼 물었다. 모처럼 만난 친구들과 행복한 근황 토크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니다. 고백하자면 꽤 불순한 의도를 숨겨놓았다. 나만 불행한가 싶어서 그랬다. 대체 다른 사람들은 어떤 행복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걸까 궁금해서. 사실은 남들도 다 행복한 척하며 사는 게 아닐까 하는, 내 정신 승리에 대해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던 거다.
친구들은 잠깐 뜸을 들였다. 하지만 내 기대를 저버리고 이내 몇 가지 행복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난 너무 당황스러워서 대화에 집중하지 못했다. 내가 원했던 대답은 그게 아닌데… 너희도 불행한 줄 알았는데. 사실은 나 빼고 다들 행복했던 거야? 그렇게 만나는 사람마다 같은 레퍼토리가 반복됐고, 그럴 때마다 나는 더 ‘행복 부진아’가 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조급해졌다. 나랑 쟤랑 똑같이 하루 24시간을 보내는데 나만 불행하다고? 불공평해. 그래서 어떻게든 행복해보려고 인스타그램에 거짓 행복의 공간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우울한 일들에 잠식될 뻔한 날에도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을 올렸다.
말하자면 내 인스타그램 피드는 백화점 쇼윈도였고, 나는 그 속의 마네킹이었다. 억지로 행복한 척이라도 하면 조금은 행복해지지 않을까 했는데… SNS 속 가짜 양유정을 볼 때마다, 친구들이 ‘넌 참 행복하게 사는 것 같다’고 할 때마다, 현타와 죄책감에 맞서 싸워야 하는 숙제만 추가됐다.
그래서 ‘어둠의 부계정’을 팠다. 그곳엔 내 진짜 속마음에 대한 게시물만 올리기로 했다. 스스로에게만큼은 솔직하고 싶었다. 우울, 무기력, 외로움, 환멸, 분노와 같은 지질한 내 진짜 감정을 업로드 했다. 내가 불행한 건 비밀이니까 당연히 비공개로. 문득 그리워진 전 남친에 대한 얘기도 써봤다.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를 찍어놓고 꼭 나 같다는 글도 올렸다. 평소엔 입에 담기 힘든 욕도 써보고, 웹드의 해피엔딩을 질투하는 글도 썼다.
그렇게 피드를 채워놓고선 ‘이거 봐! 내가 얼마나 불행한 사람인지!’라고 스스로에게 소리치려는데…. 깜짝 놀랐다. 막연해서 더 크게 느껴졌던 불행들이 막상 선명하게 마주하고 보니 별거 없었다. 하나둘 늘어가는 불행의 현신을 보며, 나는 친구들이 행복을 늘어놓던 때보다 더 당황했다. 고작 이 정도 불행이었어? 쨉도 안 되는 불행에 쫄아 평가절하했던 내 행복들이 불쌍하고 만감이 교차했다. 그동안 불행에 낭비한 시간이 아까웠다. 그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면 국밥 천 그릇은 먹었을 텐데….
처음 어둠의 부계정을 팠을 때까지만 해도 하루에 몇 개씩 게시물을 올릴 줄 알았는데, 본 계정에 억지로 행복한 게시물을 올리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막상 올리려고 하면, 내가 불행이라고 생각했던 웬만한 것들은 불행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그렇게 야심 차게 시작했던 어둠의 부계정은 내 예상과는 달리 잠정 휴식기에 접어들었다.
‘불행 프레임’에서 벗어나니, 도처에 널린 행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온갖 행복을 발견하는 재주가 생기면서 난 드라마틱하게 긍정봇이 됐다. “괜찮을 거예요” “잘 될 거예요” “좋게 풀릴 줄 알았어요” 등 내가 뱉은 긍정의 말들에 나도 놀랐다. 그저 행복을 누리느라 내 안의 달콤한 변화를 체감할 틈도 없었던 건가? 행복이라는 거, 정말 짜릿하네.
“다들 행복했던 일 하나씩 말해봐.”
잔뜩 행복해졌지만, 요즘도 나는 질문한다. 물론 의도는 전과 완벽하게 다르다. 혹시 그들도 부풀려진 불행에 가려 놓치고 있을지 모를 행복들을 붙잡아 주고 싶어서다. 내가 낭비했던 시간을 내 사람들은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제는 나도 질문에 답한다. 소소하지만 확실하게 행복한 일들에 대해서. 이렇게 나를 포함한 모두에게 행복을 되찾아주고 나면, 행복요정이 된 것 같아서 내 행복은 두 배가 된다.
자, 독자 여러분도 지금부터 행복했던 일 하나씩 말해보세요. 다 같이 ‘진짜’ 행복해집시다!
[대학내일 914호 – 20’s voi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