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일기, 아이 자신감의 비밀과 자존감 높이는 방법
사랑의 힘으로 혼자서도 잘해요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
윗글은 메타버스 이프랜드 공식 인플루언서로서 1년 반 동안 활동했던 Meet Up 주제였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머리 커트를 내가 직접 해줬다.
처음에는 가위로 앞머리만 살짝 잘라줬는데 머리 전체를 이발하기 위해 미용실에 데려갔더니
너무 낯설어하며 이발하는 내내 수도꼭지 틀어놓은 냥 울었다.
우는 아이가 너무 안쓰러워 차라리 집에서 내가 해주는 게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한두 번 해보니 자신감도 생기고 한 푼이라도 아낄 수 있어 좋았다.
배운 적이 없는 솜씨로 아이를 식탁 의자에 앉히고 머리카락이 옷에 묻지 않게 황금색 보자기를 어깨에 둘러주고 이발했다.
아이가 점점 커가면서 의사 표현이 늘고 자기주장이 강해져 요구사항이 늘어났다.
"여기는 짧게 해 주고, 여기는 길게 해 주세요.", "여긴 너무 잘랐는데,,, 여긴 예쁘게 안 됐잖아요."라며 큰 눈에 눈물을 담았다. 불만들을 들어주기에는 실력이 모자란 데다 가위 하나로는 무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이왕 할 거 잘해보자는 생각에 아예 이발기계(일명-바리깡)를 샀다.
깎아놓은 머리를 보면 잘 된 것 같은데 아이의 불만은 세제가 거품을 내뿜듯 커졌다.
아이의 불만에 자신감은 줄어들고 좀 서운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럼 생일 전까지만 엄마가 이발해 줄게 대신 미용실에는 너 혼자 가는 거다."라며 옹졸한 마음마저 드러내고 말았다.
"저 혼자 미용실에 가라고요?"라며 놀랬는지 왕방울만 한 눈을 하고 물었다.
"엄마는 실력이 모자라서 더 이상 네 요구를 채워 줄 수 없어. 네가 가서 직접 요구사항 말하고 이발해야지. 안 그래?"라고 했더니 "네. 알았어요. 그럴게요."라는 예상치 못한 옹골찬 대답이 돌아왔다.
‘절대 혼자는 못 가요. 엄마랑 갈 거예요.’라는 말을 하리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아이는 두 달 뒤 다섯 살 생일이 지나 이발할 돈을 손에 쥐고 당당하게 집을 나섰다.
잘 가는지 걱정 반 기대 반으로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며 이름을 불렀더니 뒤돌아 손 한번 흔들어주고 총총걸음으로 뛰어갔다.
한참 후에 당당하게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얼른 뛰어가 문을 열었더니 말끔한 모습을 하고 문 앞에 서서 어깨를 으쓱이며 '어때, 나 잘했지?'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이는 혼자서 해냈다는 자신감에 충만해 있었다.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을 미용사에게 잘 설명했더니 원하는 대로 나왔다며 자랑까지 늘어졌다.
자신이 대견한지 자꾸 자기 모습을 거울에 비춰봤다.
아이 스스로 할 기회를 줌으로써 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엄마가 해야 하는 일 중의 하나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형도 했고, 너도 할 수 있어. 어때?”
“네. 그럴게요.” 그렇게 둘째도 다섯 살 생일이 지난 후부터 형이 했던 것처럼 혼자 단지 내 미용실에 가서 이발했다.
5살짜리가 보호자 없이 혼자 미용실에 가서 원하는 머리모양을 설명할 수 있었던 것은 태교에 신경 썼고, 출산 후 집에 돌아온 그 순간부터 클래식 음악을 틀어줬고, 아기가 보내는 신호(몸의 언어_울음 등)를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으며, 말 못 하는 아기를 돌보며 수다쟁이가 되었고, 주 1회 70여 편의 동시 외우는 놀이를 통해 3살에 글씨를 터득했기 때문이리라.
그림을 그리고 종이를 가위로 자르고 찢어 붙이는 등 여러 놀이를 나와 함께했고, 동∙식물원 박물관 미술관 과학관 등 많이 보여주기 위해 열심히 데리고 다녔고, 이웃의 형 동생 친구들과 놀 기회를 많이 줬기에 가능했다고 믿는다.
가끔 5살 자녀를 둔 산모에게 아기 혼자 미용실에 간 일화를 말해주면 자기 아이를 쳐다보며
“정말이요? 믿어지지 않는데요. 우리 애는 안 될 것 같아요.”라며 고개를 젓는다.
요즘은 워낙 흉흉한 세상이라 아이 혼자 밖을 내보내기 무섭기도 하겠지만 다섯 살짜리가 자기가 원하는 머리모양을 설명하려면 언어표현력이 미숙하거나 자신감과 자존감이 낮은 경우라면 도전하기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부모의 사랑은 아이 자신감을 키우는 비밀의 열쇠이며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이다.
야, 중심 잡아!
남편이 직장 생활을 하며 가정경제를 책임졌기에 내 역할은 살림과 육아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결혼하고 아기를 갖기로 한 순간부터 엄마라는 직업을 하나 가졌다고 생각했다.
직업인으로서 전문자격을 갖춰야 하듯 육아에 자격을 갖추기 위해 공부를 해야 했다.
이는 안정적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소양을 갖춰야 하는 것과 같았다. 이것은 주 양육자로서 엄마로서 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 직업인의 기본 윤리 중 일부 】
1) 품위유지의 원직 : 개인의 행동이 국가나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전문자격을 갖추고,
자격자로서 인격에 합당한 언행과 품위를 유지하여야 한다.
2) 신의성실의 원칙 : 신뢰관계가 유지되도록 성실한 자세로 업무에 임하여야 한다. 또한 어떠한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있어서는 안 된다.
위 품위유지와 신의성실의 원칙은 직업인의 기본적인 소양이자 필수적인 개념이다.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직업인으로서 자격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주어진 자리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정확히 알고, 그 역할에 최선을 다해 충실하게 수행해야 하는 것이 ‘직업윤리’라 할 것이다.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담임은 심광식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은 아침 조회에 들어오셔서 우당탕 시끌벅적 정신 놓고 떠드는 우리들을 볼 때면 기다란 막대기로 교탁을 '쾅쾅' 두드리시며 “야. 이 녀석들아, 중심 잡아!”라는 말씀을 하셨다.
졸업을 하고, 진학을 하고, 사회생활을 하고,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고, 지금까지 “중심 잡아!”라는 말이 나의 좌우명 중 하나가 되었다. 항상 좌우명을 새기며 학생으로서 사회인으로서 내 위치를 지키려 했다.
동창들에게 선생님의 '중심 잡아!'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이상하게도 기억하는 친구가 없었다.
기다란 몽둥이를 들고 다니시며 훈계하셨던 기억밖에 없다며 선생님은 절대 네가 생각하는 그런 좋은 뜻으로 말씀하지 않으셨을 거란다.
여하튼 나는 언제나 이 말을 새기며 아내로서 엄마로서 중심 잡으려 노력했다.
아이에게 노력을 기울였던
첫 번째 이유는 남편이 나가서 일한 만큼 전업주부인 나는 그만큼의 몫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엄마이기에 집에서 살림하고 아이를 키우는 것이 당연한 내 몫이었다. 힘들고 피곤해도 내 몫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아기에게 책을 읽어주는 단순한 일도 아이들 보며 빨래와 청소, 반찬과 밥 짓는 살림 하느라 그냥 넘기기 일쑤였다. 이렇게 마음의 끈을 살짝만 놓아도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 버렸다. 문득 흘려보낸 시간이 아까워 반성하고 다시 책 읽어주기를 시작했다.
그렇게 삼일쯤 지나면 다시 게을러지고 또 시간이 흐르고 또다시 작심하고 수없는 작심과 삼일을 반복했다. 작심이 삼일로 끝나버려도 삼일 동안 했던 노력은 남았다.
그런 하루하루의 노력들이 학습지를 하지 않고도 세 살이 끝나갈 무렵 한글을 읽었다.
두 번째 이유는 내 말을 빨리 알아듣길 원했기 때문이다.
해야 할 행동과 하면 안 되는 행동을 설명해 주면 알아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 속 터질 게 뻔했다.
또 말귀가 트이면 둘째를 낳아 돌보게 될 때 그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훨씬 수월할 것 같았다.
내 능력이나 성격에 정신없이 나대는 두 아이를 키우게 된다면 스트레스받을게 불 보듯 훤했다.
세 번째 이유는 학교 보내놓고 말썽 부려서 선생님께 불려 가는 일이 없기를 바라서였다.
그런데 둘째 고등학교 2학년 때 꿈에도 원치 않았던 담임선생님의 호출을 받게 됐다.
“ㅇㅇ이 어머니 학교 좀 나오셔야겠습니다.”라는 말에 전화기를 들었던 손은 파르르, 마음은 콩닥콩닥, 머릿속은 엉킨 실타래 같았다.
‘무슨 일이지? 교복 속에 흰 티 대신 빨강, 노랑, 파랑 입고 다닌 건 어제오늘이 아닌데?,,,’
이런저런 생각에 안개 낀 마음으로 약속한 날에 4층 진로실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담임선생님과 상담선생님 두 분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계셨다.
잔뜩 긴장하고 두 분을 바라보는데 내게 진로검사서, 성격검사서, 학습능력검사서 등 여러 가지 내용이 담긴 종이를 내미셨다.
대뜸 “아들을 어떻게 키우셨어요?”라는 질문부터 던졌다.
긴장되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대답을 망설이고 있는데
“ㅇㅇ이의 결과가 아주 드문 경우라서 서울 전문가에게 맡겨 한 번 더 분석을 했습니다.”
“아, 네.”만을 떨리는 목소리로 답하고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 경우의 학생은 학교 담 밖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경찰서를 들락날락해야 하는데 학교 안에서 공부한다는 게 이해가 안 돼서 어떻게 키우셨는지 묻고 싶기도 해서 뵙자고 했습니다.”라고 하셨다.
“검사지에 경찰서 들락날락 그런 것도 나오나요?”라고 물으며 잔뜩 긴장한 마음을 풀지 못했다.
선생님은 검사서를 넘겨 가며 “어머니, 이거 보십시오. 아빠는 인자하시고, 엄마는 자상하시다고 생각하고 있고, 본인의 행복 도는 최상으로 나와 있습니다.”라고 자상하게 설명해 주셨다.
“이는 부모님의 노력이 아주 각별하셨다고 보입니다. 그간 애쓰셨네요.”라는 말에 안도감이 들었다.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지자 선생님께 “낼모레 고3인데 공부보다 컴퓨터게임을 더 많이 해요.”라고 고자질하듯 말했다.
“ㅇㅇ이는 4시간 게임하고 30분 공부하면 많이 하는 학생입니다.”
“그게 말이 되나요? 4시간 게임을 하면 그만큼 4시간이나 2시간 정도는 공부하는 거 아닌가요?”라고 물었더니 “ㅇㅇ이는 4시간 게임 안 하면 30분 공부도 안 할 거라고 나와 있네요.”라고 단호히 말씀하시며 한 가지 부탁을 하셨다.
“수능 끝날 때까지 어머님이 학교 끝나는 시간에 학교 앞에서 기다리셨다가 데려가 주십시오.”라는 너무나 어이없는 요청이었다.
“아니, 유치원생도 아니고 고등학생을요?”라고 반문했더니
“머리가 좋아 조금만 공부하면 하버드대도 들어갈 녀석입니다. 1년 반만 수고해 주세요.”라며 재차 당부하셨다. 걱정도 있으셨겠지만 선생님들께서 우리 부부보다 우리 아이에 대한 욕심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는 이미 키워 본 첫째와 180도 달랐고, 일반적이지 않아 이해하기까지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좋은 검사결과지와 선생님들의 칭찬으로 그간의 노고에 대한 위안을 받는 시간이 됐다.
상담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둘째를 키웠던 17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사랑은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포기하지 않는 힘은 부모의 사랑에서
이 아이 중학교 때까지 SBS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프로그램도 매주 보며 나를 다지는 연습을 했다.
다 큰 아이든 어린아이든 엄마가 아이를 대하는 교육적 기본 원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남다른 사춘기를 보내는 아들을 바꾸기 전에 내가 먼저 변해야 했다.
‘너_메시지 대화법’으로 습관이 된 말투를 ‘나_메시지 대화법’으로 바꾸기 위해 6개월이 걸린다는 것을 그때 경험으로 알았다.
3~4세 아이들 상대로 해결책을 제시하는 프로그램을 중학생 아들을 키우며 봤듯이 산모를 만나면 오은영 박사가 출연하는 채널A 프로그램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을 보라고 권한다.
신생아를 둔 산모에게 큰아이들 솔루션 하는 프로그램을 왜 보라고 하는지 궁금할 것이다.
그 프로를 보면 내가 계속 강조하는 아이가 울면 왜 바로 안아줘야 하는지, 아이의 신호에 왜 즉각 반응해야 하는지, 아이의 모든 문제는 부모하기 나름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될 거라 믿기 때문이다.
어떤 산모는 매일 2편씩 숙제하듯 시청하고, 어떤 산모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버린다.
내가 게으른 육아를 했다면 지금 아마도 경찰서에 들락거리는 아들을 보며 매일 울고 다니지 않을까?
두뇌그릇은 완성되는 생후 6개월, 두뇌성장이 중요한 생후 1년.
이 중요한 시기는 아기를 낳아 정신없이 기르다 보면 훌쩍 흘러가 버리는 시간이다.
나는 공부 잘해서 1등 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었던 게 아니라 지능이 높고 바른 아이로 키우고 싶었다.
그 결과가 성적도 잘 나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자신이 원할 때 뭐든지 할 수 있는 아이로 키우는 것이 내 목표였다. 좋은 대학에 가고 싶을 때, 전문자격증을 따고 싶을 때, 공무원시험 등에 붙어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고 싶을 때,,, 좋은 머리가 더 유리하단 생각을 했다.
우리 주변에는 시험에 떨어져 취직 못하고 삼수 사수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도전하며 허송세월 다 보내고 포기하는 이도 봤고, 부모 눈치 보며 기 한번 못 펴는 이도 봤다.
이들의 좌절감은 상당하리라. 또 이들을 바라보는 부모 마음은 오죽하겠는가?
게으른 육아는 부메랑이 되어 부모에게 돌아온다.
큰아들 중2 때 친구 엄마가 자기 아들에게 공부하는 동기부여를 해주고 싶다며 우리 애가 읽는 책 한 권을 빌려달라고 했다. 그래서 그 당시 자신의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유행이었던
김현근의 저서 ⟪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할 수는 없다⟫라는 책을 빌려줬는데 다음날 바로 가져왔다.
“벌써 다 읽은 거예요?”라고 물었더니
“아니요. 우리 아들은 그 머리가 안 된대요. 이런 건 아무나 읽는 거 아니라고 빨리 갖다주라네요.”라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머리가 안 된다며 해보지도 않고 지레 포기해 버린 아이에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N포세대’ 용어는 오래전부터 유행하는 신조어다. 삼포세대는 연애, 결혼, 출산 3가지를 포기한 세대를 말하고, 오포세대는 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까지, 칠포세대는 희망(꿈)/취업과 경력까지, 구포세대는 신체건강과 외모까지 포기하는 세대를 일컫는다고 한다.
이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가슴이 아파진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 자녀로 키우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되겠다.
https://brunch.co.kr/@yangmama/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