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마할빠 육아시대, 손자 돌보기 전 마음의 준비
아기를 믿고 맡길 곳이 있다면 큰 행운
전업주부보다 워킹맘들이 육아하기에는 어려움이 훨씬 더 크다.
흉흉한 뉴스를 보게 되면 남에게 사랑하는 내 아이를 맡기기엔 마음이 놓이질 않는다.
유아원에 맡기고 직장을 다닌다 해도 아침마다 전쟁이 따로 없다. 아이를 두고 돌아서면 코끝이 찡해온다.
아이가 감기라도 걸리면 거의 멘붕이다. 아픈 아이를 남에게 맡기고 옮기는 발걸음은 천근같이 무겁다.
아이 걱정은 근무하는 내내 일이 손에 안 잡히고 머릿속에 꽉 차 마음을 짓누르다가 눈물까지 훔치게 한다.
또 낮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아이를 돌보느라 피로감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게다가 엄마가 출장이 잦은 직업이라면 더욱 그렇다. 출장 내내 남편과 아이 걱정이 한가득이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회사를 나오려 해도 재취업의 어려움 때문에 그만두기도 쉽지 않다.
아기를 믿고 맡길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면 그것은 큰 행운이다.
50대 후반의 중년 여성 다섯이 모여 고무줄 허리춤을 풀고 넘치도록 완벽한 식사를 했다.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겨 누구 할것 없이 입꼬리를 한껏 올리고 한참 수다삼매경에 빠져있는데 누군가 불쑥
“애들 결혼하면 손자 키워줄 거예요?”라는 논제를 던졌다.
하던 말을 멈추고 아주 짧은 순간 바람개비 픽 돌리듯 머릿속에서 답할 생각을 찾고 있었다.
그 사이 나이가 가장 적고 예쁜이가 말을 먼저 꺼냈다.
“난 안 키워줄 거예요.”
“내 생각도 ㅇㅇ이 엄마랑 같아요.”
“아아, 우리도 알아서 자식 다 키웠는데,,, 안 돼요.”라며 고개까지 저었다.
“맞아요. 지들도 제 자식들 알아서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요즘 젊은 여자들은 결혼하고 계속 직장 생활을 해서,,,”
“어휴, 그러네요. 이 좋은 세상 누리려면 그만큼 벌어야겠네요.”
“여자들도 꿈과 야망이 있을 거고, 배운 것도 풀어야겠죠.”
“남에게 맡기라고 해야죠. 뭐~.”
“남에게 맡기면 마음 놓을 수 없긴 해요. 그쵸?”
“하긴, 요즘은 말이 할머니지 워낙 젊어서 손자 한둘은 봐줄 수 있을 거예요”
“자식 다 키우고 이제 허리 펴고 세상구경 좀 하고 싶은데,,,”
“봐주는 시간을 정하고 대가를 받으면 마음이 좀 나으려나?”
“그도 그러겠네요. 서로 룰을 정하고 합의하면 좋겠네요.”
이렇게 손자를 봐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놓고 대화가 이어졌다.
얘기 도중 나는 “손자를 돌봐주려면 그전에 공부부터 하셔야 해요.”라는 말을 던졌다.
“어머, 다른 모임에서도 이런 얘기 여러 번 해봤는데 손자 봐주려면 공부부터 하란 소리는 처음 들어봐요.”라며 논제를 던졌던 이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처음 들어봐요? 공부 얘기는 누가 안 했나 봐요?”
“누가 그런 말 하겠어요. 히히히”
“요즘 육아나 교육방식을 우리는 모르잖아요. 배우면 좋죠.”
“듣고 보니 그러네요.”
“그래야 아들 부부나 딸 부부와 육아 방식에 관한 부딪침이 적을 거예요.”
“아이고, 이 나이에 또 공부해야 하다니,,, 아무튼 전 손자 안 키워줄래요.”
모두 “하하하.” 만감이 교차하는 웃음으로 ‘손자를 돌봐주느냐?’의 얘기는 끝이 났다.
워킹 맘은 늘어나고 조모들의 수명연장으로 손자를 돌봐줘야 하는 문제에서 마냥 자유로울 수만은 없다.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교육전문가들도 시대와 환경에 따라 정의가 바뀐다.
그 옛날엔 엄한 아버지 상이었다면 친구 같은 아버지상으로 바뀌었고,
요즘은 규칙에는 엄하고 그 외에는 친구 같은 아버지 상으로 달라졌다.
의학도 마찬가지로 내가 아기를 키우던 30년 전에는 기저귀 발진에 분을 발라줬었는데
지금은 분을 바르면 땀구멍을 막아 증상이 더 악화될 수 있다고 전문의들이 주의를 준다.
또 이유식은 빨리할수록 좋다고 해서 생후 3개월이 지나면 젖과 분유를 끊고 이유식을 먹였었는데
그 결과로 아토피가 발병하는 아이들이 많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이유식을 6개월 넘어서하라고 권장한다. 이런 것들 때문에 육아에 관해 공부하지 않으면 젊은 부모와 부딪치고 그 손해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귀한 손자에게 돌아간다.
행복은 배우는 일, 배워서 남 주랴
“관리사님, 제가 제일 행복해요”라는 산모의 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산후관리사가 되기 위해 정식 교육을 받았고, 중간중간 보수교육을 통해 따끈한 교육정보가 있고,
만나는 아기를 이롭게 돌보기 위해, 산모에게 올바른 육아 정보와 노하우를 전해주고자 수시로 공부하기 때문이다.
육아 지식의 세대 차이로 인해 친정엄마가 산후조리를 해주면 의견 대립으로 다툼이 잦고,
시어머니가 산후조리를 해주면 꿀 먹은 벙어리처럼 냉가슴을 앓아야 한다.
“우리 땐 이랬어.”
“지금은 그렇게 안 해.”라며 서로 다른 육아 방식으로 대립한다. 그 사이에 낀 사랑하는 아기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친정엄마나 시엄마가 산후조리를 해주면 심신 안정이 필요한 산모가 편히 쉬기보다 의견 차이로 인한 스트레스로 힘들어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아기를 낳기 전에 부모와 조부모 모두 다 공부하는 것이 맞다. 배워서 남 주랴.
‘행복은 배우는 일이다.’라는 말이 있다.
할마·할빠가 공부해서 육아상식과 지식을 서로 공유하고 조율한다면 모두가 행복하지 않겠는가?
【 손자를 돌보기 전 마음의 준비 】
할머니가 봐주시든 그 누가 봐주든 육아의 모든 결정권은 주 양육자인 엄마·아빠에게 있다.
1. 육아에 대한 기본 지식부터 배워라.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대략 30여 년 전에 자식 낳아 길렀다. 새로운 육아 지식을 습득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자식보다 손자가 더 예쁘다고 하지 않던가. 귀한 손자를 위해 책이나 강의를 들으며 그 시절과 비교해 보고 그때 몰랐던 것들을 지금 아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다.
2. 참견하지 말고 돕기만 해라.
전문교육받은 산후관리사인 나도 알지만 산모에게 묻고 행동한다.
“분유 얼마나 탈까요? 목욕은 이 시간이 좋겠죠?”라고 묻는
첫 번째 이유는 엄마가 주 양육자이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하루하루 달라지는 아기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서 가장 잘 알기 때문이고,
세 번째 이유는 초보 엄마에게 ‘결정권은 주 양육자인 너에게 있다’는 메시지를 주어 결정하는 습관을 들이기 위함이다.
“이건 어떻게 할까? 이렇게 하면 되겠니?”라고 물어봐 주면 아기 엄마의 책임감과 자존감이 높아진다.
“나도 혼자 애 키웠다. 뭘 그렇게 힘들다고 하니?, 극성이구나.” 이런 말들로 상처 주지 말고 "애쓴다."라고 위로해 주고, “너는 잘할 수 있어."라고 응원해 주고, “잘한다."라고 칭찬해 주면 아기와 함께 무럭무럭 성장하는 엄마를 보게 될 것이다.
3. 사랑은 내리사랑이다.
물이 아래로 흐르듯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
알을 더 따뜻하게 품기 위해 자신의 가슴털을 뽑는 딱따구리나 맹추위와 배고픔에도 알을 품는 펭귄, 산란을 위해 수천 킬로미터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 갓 태어난 새끼를 위해 자기 살을 내어주는 가시고기도 내리사랑만 있다.
열 달 동안 뱃속에 담고 뼈가 으스러지는 진통 끝에 낳고, 똥도 예쁘다며 기저귀 갈아주는 어머니, 잘되라고 야단치고 꼭 안아주는 아버지, 손발이 다 닮도록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자식을 키워냈다.
젊은 엄마·아빠들도 그들의 부모님처럼 그 사랑을 자식들에게 기꺼이 이르게 할 것이라 믿고, 넓고 큰 마음을 가지면 된다.
4. 며느리를 먼저 챙기고 좋아해라.
시어머니께서 우리 집에 오시면 한두 달씩 계시다 가셨다. 계시는 동안 삼시 세끼를 따뜻한 새 밥으로 지어드리고 끼니 중간중간에 간식까지 드리면 하루에 상을 대여섯 번 차렸다.
신혼 때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간식거리 사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배 하나를 전부 깎지 않고 반쪽으로 나눠야 두 번 드릴 수 있었다.
“너는 왜 안 먹냐? 너도 먹어라.”라고 말씀하시면
“저는 배가 아직 안 꺼졌어요.”, “저 그거 안 좋아해요.”, “어머니 많이 드세요.”라는 말로 마음 쓰시지 않게 슬쩍 넘기곤 했다. 그래서일까? 시어머니께서는 식사하실 때 본인 아들 앞에 두고
“저거 주지 말고 너 먹어라. 아야, 너 먹어야.”라며 며느리인 나를 먼저 챙겨주셨다. 자식보다 며느리를 더 사랑해서가 아니리라. 자식에 대한 사랑을 우회로 표현하시는 지혜로운 방법을 쓰셨던 거다.
엄마가 행복해야 그 집안에 웃음꽃이 핀다. 며느리가 행복하면 아들과 손자가 행복해진다.
내가 둘째를 낳겠다고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옆집 애들과 놀 때와 나와 놀 때가 달랐기 때문이다.
동네 친구나 동생들과 놀 때는 깔깔대며 신나게 달리고, 껑충껑충 뛰고, 레고를 맞추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도 입을 쉬지 않고 쫑알거렸다. 반면에 나와 단둘이 놀 때는 아이의 얼굴에서 언뜻언뜻 지루함 같은 것이 보였다. 동생이라도 있다면 달랐으리라. 아무리 노력해도 엄마는 엄마일 뿐 친구나 동생이 될수 없었다.
저출산 시대 엄마·아빠의 많은 빈구석을 할머니의 넉넉함과 포근함으로 채워줄 수 있지 않을까?
너무나 소중하고 귀한 아기는 할머니·할아버지의 육아 도움이 사막의 오아시스다.
할머니들의 육아 참여를 거창하게 '손자를 봐주시면 저출산 문제 해결에도 큰 역할을 하는 겁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대가족 문화와 골목 문화가 사라진 요즘 엄마·아빠가 모든 역할을 다해야 한다.
한없이 품어주는 할머니 할아버지 역할도,
울면 업고 달래주던 이모 고모 삼촌 역할도,
함께 놀며 규칙과 사회성을 배울 수 있는 동네 언니 오빠 동생 역할도,
또래의 친구 역할도 모두 엄마·아빠의 몫이 됐다.
게다가 엄마까지 직장 생활을 병행해야 한다면 아기는 많은 부분 결핍될 수밖에 없다.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하는데
우리의 핵가족 문화에서 엄마·아빠 두 사람이 모든 역할을 다 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저출산 사회 속에 귀하디 귀하게 얻은 우리 손주들 할머니·할아버지의 육아 도움이 필요하다.
≪황혼육아≫의 저자 이점우 작가는 "내 황혼육아는 분명 내 생활의 활력이다."라고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손주 돌보는 황혼육아는 증가하는 추세이다. 맞벌이 부부가 증가하는 원인이 크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듯 신조어들도 등장했다. '할머니+엄마'를 줄인 말이 할마, '할아버지+아빠'를 줄인 말이 할빠다. 또 학부모와 조부모의 합성어로 취학 이후 손주를 맡게 된 조부모를 '학조부모'라 부른다. 그리고 황혼육아로 인해 퇴행성관절염이나 수면장애, 피로, 우울증 등 '손주병'이란 신조어도 생겼다.
육아는 전적으로 부모의 몫이다. 그러나 누군가의 도움이 간절하다면 조부모님께 부탁드리는 용기도 필요하다. 단, 수고에 대한 보상을 지불할 각오를 해야 하고, 조부모의 건강이 무너지지 않도록 시간을 잘 나누어 보조적인 도움이어야 한다. 손주의 재롱을 보는 것은 함박웃음을 짓게 하지만, 황혼육아가 병을 가져다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저서 ≪심리학자 할머니의 손주 육아법≫의 조혜자 작가는 할머니의 적극적인 육아를 강조하며, 워킹맘과 아이, 그리고 할머니가 모두 행복해지는 비결에 관해 저술했다. 조부모님의 육아 도움에 대한 열린 마음이 필요할 때다.
https://brunch.co.kr/@yangmama/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