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미니즘을 생각하며
영화 '서프러제트'는 1900년대 초 영국에서 일어난 여성 참정권 운동을 배경으로
이 운동에 참여하게 된 한 여자의 이야기이다.
영어로 서프러제트(Suffragette)는 여성 참정권 운동, 혹은 여성 참정권 운동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단어로 참정권이라는 단어 Suffrage 에서 나왔다.
1903년 영국 여성 에멀린 팽크허스트가 '여성 사회 정치 연합'을 결성하면서 생겨난 신종어다.
주인공 모드 와츠는 세탁 공장에서 일하는 24살의 기혼녀다.
세탁장에서 만난 남편 사이에 어린 아들을 두고 당시 영국의 여성 노동자들과 같이 힘든 노동과 평범한 가정생활을 하며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우연히 서프러제트를 목격하게 되고 세탁장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도 그 일원임을 알게 된다.
여성 선거권을 외치는 모습에 왠지 마음이 동요되던 모드는 서프러제트가 아니었는데도 직장 동료를 대신해서 국회에서 세탁 노동자 대표로 증언하게 된다. 투표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는 모드는 왜 여기 증언하러 왔냐는 총리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에게도 또 다른 인생이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요.
모드는 투표나 여성 권리가 왜 필요한지는 모르지만 지금 여자 노동자로 살아가는 삶이 적어도 남자 노동자와 어떻게 다른지는 알고 있다. 부당한 현실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에서부터 그녀의 다른 인생이 시작된다.
모드의 진솔한 대답과 진실한 증언으로 총리는 여성 선거권에 진전이 있을 거라고 약속했지만 결과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항의하는 모드와 서프라제트에게 경찰의 폭력이 가해지고 모드는 시위 현장에서 연행 구속된다. 출옥 후 다시 서프러제트에 가담하면 아이를 볼 수 없을 거라는 남편의 말에 모드는 양육권이 없는 여자로서 할수 없이 엄마의 길을 택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모드는 침대에서 남편에게 묻는다.
우리한테 딸이 있었으면 뭐라고 불렀을까?...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남편의 답,
당신하고 같겠지.
이 대화에서 영화는 반전을 맞는다.
모드는 아들을 가진 엄마였지만 자신을 포함한 여자의 인생을 생각하고 있었다.
남편의 엄마, 모드 자신, 세탁장에서 고용주에게 성적 학대를 당하는 친구 딸 매기, 앞으로 태어날 여자아이들의 인생은 되풀이될 뿐 어떤 꿈도 없다는데 생각이 미치자 서프러제트가 되기로 하고 행동하기 시작한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주체적으로 선택한 길이었다. "이렇게는 살지 않겠어."라고.
후에 서프러제트의 행동 기밀을 알려주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해 주겠다는 검사의 회유에 모드는 자신의 선택을 확실하게 한다.
평생을 공손하게 살았고 남자들이 시키는 데로 했어요. 하지만 이젠 달라요.
나도 당신과 동등한 사람입니다.
법이 우리 모자를 떼어 놓는다면 법을 바꾸겠습니다.
결국 모드의 남편은 아들을 키울 수 없어서 입양 보내고 여자에게 양육권이 없는 법은 모자를 떼어 놓는다. 법을 바꾸겠다는 모드의 의지가 더욱 확고해지게 되는 건 당연하다.
최초의 서프러제트였고 '여성 사회 정치 연합'을 결성해서 서프러제트를 주도한 에밀턴 팽크허스트 이다.
영화에서는 잠깐 등장하지만 메시지는 강력하다.
(이 영화에는 두 명의 서프러제트 실존 인물이 등장한다. 에밀턴 팽크허스트와 에밀리 데이비슨이다)
모드는 동료 서프러제트들과 함께 팽크허스트의 연설을 듣고 자신의 선택에 따라 행동할 힘을 얻는다.
여성들도 자신의 인생을 선택할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는 범법자가 아닌 법 제정자가 될 것입니다.
모드와 동료들은 세계 언론을 일깨우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해 보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 하고 있던 중,
실존 인물이기도 한 동료 에밀리가 달려오는 국왕 조지 5세의 경주마 앞으로 뛰어들어 가서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고 이 사건은 여성 선거권 획득에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1913년 6월 4일에 일어난 일이다.
그 광경을 목격한 모드는 슬픔과 실의에 빠져서 돌아가던 중 아이들이 굴렁쇠를 굴리며 노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거의 본능에 가까운 힘을 얻는다.
굴렁쇠를 굴리는 소년을 따라가는 소녀를 보는 순간 모드는 아들과 세탁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소녀 매기가 떠올랐던 것 같다. 그 순간 모드는 자신의 아들과 어린 소녀들이 살아갈 다음 세대에는 남자와 여자가 굴렁쇠를 함께 굴리며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지는 세상을 위해 화합하며 나가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까... 싶다.
모드는 전속력으로 달려가서 세탁장에 있는 메기를 꺼내 서프러제트를 지지하는 국회의원 부인집 가정부로 취직 시킨다. 부탁이 아니라 당당하게 요구하는 그녀의 태도에서 힘이 느껴진다.
에밀리의 장례행렬에는 서프러제트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참여했다.
에밀리 데이비슨의 묘비에는 '말은 행동하지 않는다'는 서프러제트의 슬로건이 새겨져 있다.
에밀리 사후 5년 뒤인 1918년에 드디어 30세 이상의 재산을 가진 여성에게 선거권이, 1925년에 여성 자녀 양육권이, 1928년에 남녀에게 동등한 참정권이 주어졌다. 모드가 국회에서 증언 한 대로 다른 인생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장례식에 참석하려고 나가는 모드의 뒷모습 뒤로 에밀리가 모드에게 준 책 '드림'의 한 구절이 독백으로 흐른다.
이성이 물었다. 침묵 속에서 무엇이 들리는가?
발소리, 수천수만의 발소리. 당신을 따르는 발소리입니다.
감성 만이 허락되었던 여성들이 이성을 따른다. 여성도 남성과 같이 이성과 감성이 있는 인격으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외친다. 그녀들은 남성을 대상으로 투쟁하지 않았다. 부당함과 싸웠고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서프러제트는 이성을 사용해서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며 살아갈 수 있는 인간권리에 인생을 걸었다.
신념에는 목숨을 걸고, 가치에는 인생을 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