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와 경계 사이에서 머뭇거리다.

-페미니즘을 생각하며

by 김 스텔라


사진 속에서 엄마는 투명 차단막 너머로 마이크 앞에 꼿꼿이 앉아 있다.

코로나 사태로 5개월 만에 사진으로나마 보는 엄마는 다리와 허리가 불편한 노인 같지 않고 받은 인터뷰하는 여사처럼 보인다.

'그래... 그 힘으로 버텼지.' 선혜는 먹먹해진다.

엄마는 젊은 나이에 어린 딸 셋을 데리고 이혼을 감행하고 삶의 고비를 넘기다 요양원에 있은지가 오래되어 간다. 엄마 사진을 확대해 보고 또 들여다보면서 '나에게 엄마는 어떤 사람일까...'생각해 본다. 지금 그녀의 가슴으로 내 엄마이기 이전에 한 여자였던 인생이 걸어 들어온다.


엄마를 생각하면서 선혜는 문득 두 사람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신사임당과 신여성의 대명사인 나혜석이다.아마도 신사임당은 그녀가 엄마에게 원했던 사람이고,나혜석은 엄마가 자신에게 원했던 사람일 것이다.

자식이 대부분 그렇듯이 그녀도 엄마가 양처가 되기를 거부했으면 현모로 살아주기를 바랐지만

엄마는 자신을 포기하지 않은 대가를 치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한계를 넘을 수 없었다.

현모로서의 엄마를 바랐던 선혜는 이제 나이가 들어서 자기 자신으로 살라는 딸의 충고를 받아들인다.

딸은 그 옛날 한국에서 여자로서 겪는 부당함에 이혼을 감행했던 할머니는 용기 있는 여자였다고 한다.

'그래... 어린 딸들을 데리고 나와서 키웠으니 신사임당 같은 어머니였고

끝까지 자신을 굽히지 않았으니 나혜석 같은 여인이겠구나.

두 사람처럼 든든한 후원자가 있었다면 예술가가 되었겠지.' 라며 오버랩되는 엄마의 모습을 본다.

그녀가 초등학교 다닐 때 학교 복도에 벽화를 그려줄 만큼 그림을 잘 그렸던 엄마, 교습받은 적 없이 무용을 가르쳤고, 어릴 적 성당에서 배운 피아노 실력도 대단해서 우리 학교에 일일 음악 선생님으로 왔을 때는 눈이 부셔서 엄마라고 부르지도 못했다.

그림 그리는 엄마에게 어린 그녀가 물었다.

"엄마는 무슨 색을 좋아해?"

은근히 그녀가 좋아하는 파란색이라고 해 주기를 바랐는데 엄마는 망설이지 않고

"응, 초록색. 자유를 나타내는 색이거든." 했다.

그러던 엄마는 세상의 한계에 부딪치며 점점 자신에게로만 몰입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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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선혜는 엄마를 닮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엄마에게서 자신을 본다.

세상이 만든 한계 속에서도 자신의 경계를 넓혀 갔던 신사임당이 보이고,

자신에게 주어진 한계를 인정할 수 없어서 세상의 경계를 넘은 나혜석이 보인다.

우리 모두가 인생을 걸었던 가치는 '사람답게 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그녀는 다짐 시키듯이 자신에게 말해준다. 그리고는 '엄마가 평안했으면 좋겠다'며 사진을 저장하고 전화 바탕화면으로 깔아 둔다.



신사임당의 '포도도'
image_2404846711486520867470.jpg 나혜석의 '무희'

***나혜석(1896-1948);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작가. 사회운동가. 한국 최초의 페미니스트


불꽃처럼 살아간 인생이 아름다운 것은 그 인생이 추구했던 가치 때문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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