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도 제대로 살아본 적 없는 촌놈이 감히 도쿄를 동경하다니
우수운 일이다. 서울에서도 제대로 살아번 적 없는 촌놈이 감히 도쿄를 동경한다니.
29년 인생에 고작 12번의 일본 여행, 그중에서도 도쿄는 고작 2번. 그것도 한 번은 최악이었다. 하지만 다른 한 번의 여행이 내 인생을 뒤흔들어놓았다.
그 후로 나는 일본의 모든 것을 편파적이고 맹목적으로 좋아하게 됐다. 한국의 지옥 같은 도로와 달리, 도쿄의 거리는 마치 예술 작품처럼 깨끗했다.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는 차들에 시달리던 나날들과 달리, 이곳에선 모두가 질서 속에서 움직였다. 서두르지 않고, 서로를 배려하며, 마치 춤을 추듯 자연스럽게 흐르는 차들의 행렬에 감탄했다.
매일 아침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달리던 출근길과 달리, 도쿄의 새벽길은 고요하고 안전했다. 어둠 속에서도 불안을 느낄 일이 없었다. 소모품처럼 취급받던 공사장과 달리, 작은 편의점에서조차 나는 한 명의 인간으로 존중해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도쿄대학의 우거진 캠퍼스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했다. 수백 년 된 나무들이 지켜온 학문의 전통이, 내가 현장에서 보았던 그 위험천만한 공사현장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프리츠커상을 받은 건축가들의 작품들은 예술이었다. 안전 따위는 안중에 없던 한국의 공사현장과는 달리, 이곳의 건물들은 하나하나가 장인의 혼이 깃든 걸작이었다.
한국의 획일화된 아파트 숲과는 달리, 도쿄는 도심 한가운데서도 전통 가옥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다. 옛것과 새것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모습에 가슴이 뛰었다. 아파트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밀어버리는 한국과는 달랐다.
특히 사회복지를 전공한 내 눈에는, 도쿄의 거리 곳곳에서 약자를 배려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휠체어 사용자를 위해 섬세하게 설계된 경사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블록과 음성 안내, 고령자를 위한 쉼터. 이런 것들이 형식적이거나 전시성이 아닌, 실제로 사용하기 편하게 설계되어 있다는 게 놀라웠다. 지하철역마다 설치된 엘리베이터에서의 배려는 당연했고, 버스 기사가 휠체어 승객을 위해 경사로를 설치하는 모습은 아름답고 정성스러웠다.
더욱 놀라운 건, 이런 배려가 특별한 것이 아닌 일상이라는 거였다. 청각장애인이 일하는 카페에서 손님들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었고, 거리에서 마주치는 노인들은 서둘러 길을 비키라는 눈초리를 받지 않았다.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로 누군가를 소외시키지 않는, 더불어 사는 삶이 이곳에선 가능해 보였다.
어느날 아침 "오하이요 고자이마스"를 외치며 손뼉 치는 상점 주인장의 모습은 마치 축복과도 같았다. 그가 보여줬던 미소는 매일 아침 나를 짓눌렀던 한국의 모든 압박감을 씻어내주는 것만 같았다. 어디를 가든 느낄 수 있는 장인정신과 자부심은, 내가 그토록 꿈꾸었던 목수의 길과 맞닿아있는 듯했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내 꿈을 비웃지 않을 것만 같았다.
시부야의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서도, 아사쿠사의 오래된 골목에서도, 신주쿠의 번화가에서도, 나는 같은 감동을 느꼈다. 아날로그와 첨단 기술이 완벽하게 공존하는 거리, 화려한 패션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젊은이들과 점잖은 셀러리맨이 서로를 존중하는 개성이 넘치는 풍경, 각 지역마다 고유하게 지켜온 문화와 전통.
이 모든 것이 내게는 충격이자, 새로운 자극이었고, 희망이었다.
그리고 그런 도쿄를 보면 볼수록, 한국의 모든 것들이 혐오스럽게 변해갔다. 무질서한 거리, 서로를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들, 전통은 무시한 채 돈만 쫓는 난개발, 인간의 존엄성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작업 현장, 늘 서두르기만 하는 삶의 방식.
이 모든 것들이 견딜 수 없게 느껴졌다. 약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 편의시설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놓은 쓸모없는 장식들, 효율성만을 쫓다가 소외되는 이웃들을 보는 것이 나는 고통스러웠다.
나는 도쿄를 동경했다. 단순한 도시 이상으로, 어딘가에는 존재할지도 모르는 구원처럼 동경했다. 지긋지긋한 한국을 벗어나, 새로운 삶을 꿈꿀 수 있다는 듯이 동경했다.
아침에 일어나 한적한 거리를 쓸며 "오하이요 고자이마스"라는 인사를 나누는 상상을 했다. 좁은 골목길 어딘가의 목공소에서 장인의 길을 배우는 상상을 했다. 퇴근 후에는 사랑하는 사람과 커피를 내리며 하루를 정리하는 상상을 했다. 주말이면 우에노 공원에 있는 미술관을 산책하고, 비오는 날이면 신주쿠 공원 밴치에 앉아서 물소리를 감상하고, 시부야의 사람들 사이를 누비는 상상을 했다.
그리고 어쩌면 이곳에서는 이상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이게 단순한 여행객의 환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동경했다.
도쿄의 어두운 면도 분명 있을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동경했다.
내가 보았던 것들이 관광객의 시선으로 미화된 것일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동경했다.
완벽한 복지시스템 같은 건 없다는 것을 전공자로서 잘 알면서도 동경했다.
하지만 좋지아니한가.
적어도 이 환상은 한국에서의 가위눌림보다는 나았다.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살아가는 것보다는, 낯선 곳에서의 새로운 두려움이 나았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곳보다는, 서투르더라도 서로를 배려하려고 노력하는 곳이 나았다.
어쩌면 나는 도쿄라는 도시가 아닌, 도망칠 곳을 동경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좋았다. 한국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나만의 상상속의 구원을, 이 도시는 약속해주는 것만 같았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약자라는 이유로, 다르다는 이유로 내몰리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도쿄를 동경했다. 지금도 동경한다.
이 동경이 환상임을 알면서도,
이 동경이 도망임을 알면서도,
나는 여전히 도쿄를 동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