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by 양지윤







*

열아홉 살이 되던 해, 초롱이가 죽었다.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는데 안방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있던 일이었기에 다시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쿵.

쿵, 쿵.

연이어 들리는 소리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서둘러 안방으로 달려갔다. 바닥에 쓰러진 채 경련을 일으키는 초롱이가 눈에 들어왔다. 솜뭉치 같은 몸을 덜덜 떨면서 초롱이는 분비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세상에서 얻은 것은 모두 돌려주고 가벼운 몸으로 떠나려는 듯, 초롱이의 고통스러운 배출은 계속되었다. 새카만 눈동자에서 빛이 점점 스러져갔다. 2월 해거름 무렵이었다. 가장 좋아했던 쪽빛 담요 위에서 초롱이는 그렇게 기나긴 생을 마감했다.


초롱이가 왔던 날이 생각난다. 굵은 비가 죽죽 쏟아지던 날이었다. 우산을 썼는데도 네 옷이 다 젖을 정도였다. 정원의 흙이 빗발에 푹푹 파였는데, 마치 흙이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는 것만 같았다. 거실 창문으로 비 구경을 하며 초롱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맞다, 그땐 초롱이가 아니었다. 그냥 작고 하얀 강아지였다. 요란한 빗소리를 들으면서 이름을 뭐라고 지으면 좋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초롱이를 안고 네가 현관으로 들어서자, 비 내음이 공기 중으로 확 퍼졌다. 팔뚝에 오돌토돌 소름이 돋았는데, 초롱이를 품에 안자마자 금세 가라앉았다. 이번엔 초롱이가 바들바들 몸을 떨었다. 무척 따뜻하고 말랑했다.

오늘부터 네 이름은 초롱이야.

보송보송 새하얀 귓가에 속삭였더니 초롱이가 귀를 쫑긋거렸다. 그렇게 달구비가 쏟아지던 날 초롱이는 우리에게 왔다.


삽자루가 툭 부러졌다. 겨우내 땅은 단단하게 얼어있었다. 겨울의 산은 초롱이가 누울 자그마한 땅뙈기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포클레인을 불러야 한다고 했다. 알음알음 포클레인 업자를 알아보고 흥정 끝에 삯을 반으로 깎았다. 거대한 삽이 거침없이 땅을 후벼 팠다.

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물을 훔치던 손등에 살짝 혀를 댔더니 바닷물 맛이 났다. 눈물의 소금기는 사람이 바다에서 왔다는 증거라던 어느 시인의 말이 떠올랐다. 바다에 뿌려줄 걸 그랬다. 바다는 땅 속보다는 따뜻할 텐데. 게다가 초롱이는 쪽빛 담요를 참 좋아했었지. 쪽빛 바다에 뿌려줄걸 그랬다.

하얀 보자기에 싸인 초롱이의 몸 위로 흙비가 쏟아져 내렸다. 삶의 길이보다 더없이 짧은 죽음의 길이를 깨닫자마자 초롱이는 완전히 세상을 떠났다.


사진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요즘은 하루에도 몇 번씩 사진을 들여다보지 않으면 초롱이의 모습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초롱이가 나이를 먹는 동안 내게도 성큼 세월이 찾아와 있었다. 네 사진 옆에 초롱이의 사진을 걸어두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누가 내 사진을 그들 옆에 나란히 걸어줄까. 마지막까지 살아있는 나만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짝 억울했다. 사진 속에 박제된 초롱이의 시선은 나를 떠날 줄 몰랐다. 생전에도 늘 내 그림자만 졸졸 따라다니더니, 사진 속에서도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홀로 남아 무기력해진 나는 초롱이의 쪽빛 담요를 둘둘 말고 거실 창가에 누워 구름 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라이너스의 담요처럼 쪽빛 담요는 내게 평온함을 느끼게 해주는 유일한 대상이었다. 스르르 잠이 쏟아졌다. 잠결에 빗소리를 들었다. 창문을 닫아야 하는데. 담요의 무게가 선명해지면서 서서히 빗소리가 잦아들고 암흑이 찾아왔다.


산책을 나갔다 돌아오는 길에 비가 내렸다. 빗물이 고이며 흙바닥에 수십 개의 웅덩이가 생겨났다. 초롱이와 네가 웅덩이 사이를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흙탕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흙투성이가 된 초롱이를 보며 네가 웃었다. 함께 빗속을 뛰어다니고 싶었다. 어느새 내 손에 쥐어진 투명한 비닐우산을 거두려 했지만 잘 접히지 않았다. 빗줄기가 점점 거세지더니 빗발에 너의 웃음소리가 씻겨나가듯 서서히 사라져 갔다. 겨우 우산을 접고 빗속으로 손을 내민 순간, 차가운 빗방울의 감촉과 함께 시야가 캄캄해졌다.


창틈으로 비바람이 새어들었다. 미처 담요로 가리지 못한 얼굴 위로 빗방울이 툭툭 떨어졌다. 늦겨울인데도 이상하리만치 빗방울이 뜨겁게 느껴졌다. 빗발은 약해졌는데 내 얼굴 위로는 여전히 빗물이 죽죽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움

「명사」 내 얼굴 위로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빗물. 끝날 줄 모르는 눈물 장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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