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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지윤 Oct 21. 2023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맛

소고기덮밥

내가 일하는 도서관은 1인 운영체제라 따로 점심시간이 없으므로 적당한 틈을 노려 밥을 먹어야 한다. 메뉴도 후루룩 먹어 치울 수 있는 것 위주로 고른다. 언제 이용자가 방문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반찬과 밥을 데스크 위에 늘어놓고 먹는 여유를 부리기는 힘들다. 그래서 도시락통은 늘 용기 하나를 이용해 밥 위에 반찬을 얹는 덮밥 식으로 싼다. 밥을 먹다가 누군가 도서관에 들어오는 기색이 느껴지면 후다닥 뚜껑 하나만 덮어서 은폐할 수 있도록.

원래 나는 무언가 섞거나 얹거나 말아서 먹는 밥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비빔밥을 먹을 때도 나물 따로 밥 따로 맛을 즐기는 걸 선호했고 낙지볶음을 먹으러 가도 다들 밥에 콩나물과 낙지볶음을 넣고 비벼 먹을 때 나 홀로 밥 한 입 낙지 한 입 콩나물 한 입 따로따로 먹곤 했다. 원래 비벼 먹기 위해 고안했을 음식이겠지만 어쩐지 그것들을 한데 비비면 재료가 엉망진창 뒤섞여 결국 진한 양념의 맛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팔레트에 각각 짜놓은 하얀색, 노란색, 초록색 등등의 물감을 빨간색으로 마구 뒤섞어 결국 음울한 잿빛으로 만드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이왕이면 흰쌀밥과 노란 콩나물과 푸릇한 시금치나물을 제각각 맛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시뻘건 고추장이 그릇 안을 장악하는 광경은 영 탐탁지 않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내 음식 취향이 바뀌었다. 고추장의 단맛에 휩싸인 나물의 푸릇한 식감을 찬양하는가 하면, 뜨끈한 국물에 만 밥 한 숟갈에 잘 익은 쪽파김치를 통으로 올려 먹으며 감탄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이제 나는 낙지볶음 양념에 물들 대로 물들어 버린 쌀밥과 콩나물을 보면 희열을 느낀다. 어느새 이러한 음식들이 내 식탁을 점령해 버렸다. 그야말로 나의 덮밥 시대가 열린 셈이다. 그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기억의 식탁을 행주로 훔치듯 훑다 보면 검은색 한자가 어렴풋이 보인다. 거리를 진한 간장 냄새로 뒤덮으며 우뚝 서 있는 오렌지색 간판의 소고기덮밥 전문점, 요시노야(吉野店). 바로 여기에서 내 덮밥 시대가 열렸다.     


일본에서의 첫 아르바이트였던 우동집 ‘헤노갑파’가 운영난으로 문을 닫은 후 나는 여기저기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평일 낮에는 학교 근처에 있던 ‘선쿠스’ 편의점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도쿄역 인근에 있던 이자카야 ‘와타미’에서 부지런히 생맥주를 날랐다. 편의점에서 보내는 한 시간과 이자카야에서 보내는 한 시간은 그 밀도와 농도가 달랐다. 상품을 발주하고 정리하고 채우며 오가는 손님에게 인사하고 도시락과 호빵 등을 데우는 편의점 일은 금방 손에 익어서, 며칠 지나지 않아 나는 점장에게 신뢰받는 아르바이트생이 되었다. 게다가 편의점에서는 유통기한이 임박한 도시락을 마음대로 가져올 수 있어 생활에 보탬이 되었다. 반면, 너구리굴처럼 어둑한 붉은빛 조명 아래에서 술에 취해 떠드는 사람 사이를 바삐 오가며 양손 각각 커다란 생맥주잔을 서너 개씩 들고 나르는 이자카야 일은 너무 고됐다. 편의점에 오는 손님들이 매장에 머무는 시간은 길어봐야 몇 분이었지만 이자카야에서는 기본 한 시간 이상이었다. 끊임없이 손님들의 테이블을 체크하고 빈 술잔이나 안주 접시를 치우면서, 어쩌다 술에 취한 손님이 말이라도 걸어오면 몇 마디든 대꾸도 해줘야 했다. 나는 각종 안주와 술 냄새가 온몸에 밴 후에야 농밀한 그 공간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는데, 전철역으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동안 스스로가 명절에 먹다 남은 전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밥상 위에 처음 올랐을 때의 먹음직스러운 풍미는 온데간데없고 여러 번 데운 탓에 너무 기름에 절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식어버린 전 같은 나.

학교와도 가깝고 도쿄 곳곳을 편히 다닐 수 있는 동네에 살고 싶어서 도심으로 이사 왔는데 그 월세를 충당하려고 구한 이자카야 아르바이트에 치여서 정작 집에서는 잠만 자다 나오는 신세가 되었다. 학교도 늘 지각하기 일쑤였다. 이대로 있다가는 술에 취한 손님들의 풍경이 도쿄에서의 기억을 점령해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인 나는 이자카야를 그만두고 다른 아르바이트를 알아보았다. 편의점처럼 손님 회전율이 빠르고 무거운 맥주잔을 나를 필요가 없으며 밝은 빛이 가득한 곳을 찾고 있는데 귀국을 앞둔 중국인 친구가 자신이 일하던 곳을 토스하듯 소개해 주었다. 간다역 근처에 있는 요시노야였다.

요시노야는 도쿄 어디를 가든 그 간판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이를테면 요식업계의 편의점 같은 곳이었다. 나도 도쿄역 근처에 있던 요시노야에서 소고기덮밥이나 닭고기덮밥을 후루룩 먹고 이자카야 아르바이트에 간 적이 종종 있었다. 한 면에 딸린 개방형 주방을 카운터석이 둘러싼 형태로 된 식당이었는데 손님 대부분은 자기 앞에 놓인 돈부리(일본식 덮밥)에 코를 박고 부지런히 밥을 먹은 뒤 썰물처럼 가게를 빠져나갔다. 직원들은 주방을 오가며 돈부리용 도자기 그릇에 소고기덮밥을 퍼서 손님들 앞에 척척 내놓기도 하고 빈 그릇을 치우기도 하며 분주히 일했다. 손님으로 드나들던 시절에는 최대한 밥과 소고기가 섞이지 않도록 분리해서 소고기덮밥을 먹으며 그들의 모습을 구경하곤 했는데. 설마 내가 저 자그마한 직사각형 주방 안에 들어가게 될 줄이야.

요시노야에서 보내는 시간은 그야말로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쿠퍼와 브랜드가 처음 방문한 밀러 행성과도 같았다. 솥에서 끓고 있는 소고기덮밥을 이따금 국자로 저어주며 육수와 고기를 보충해 주고, 개수대에 식기가 쌓이지 않도록 틈틈이 체크하며 설거지하고, 손님에게 바로 내갈 수 있도록 쟁반에 기본 반찬과 장국을 세팅해서 차곡차곡 쌓아둔다. 그러다 손님이 들어와 자리에 앉으면 물컵을 내간다. 주문이 접수되면 커다란 밥솥을 열어 뜨거운 김을 피해 가며 돈부리 그릇에 일정한 양의 밥을 담은 뒤 팔팔 끓고 있는 솥으로 가 소고기소스를 한 국자 가득 퍼서 돈부리에 끼얹는다. 손님에 따라 쓰유다쿠(국물 많이)일 때는 반 국자 국물을 더 넣어주고, 쓰유누키(국물 적게)일 때는 국물을 따라버린 뒤 고기만 넣는다. 손님이 나가자마자 쟁반을 치우고 행주로 테이블을 훔친 뒤 시치미(고춧가루를 기본으로 여러 향신료를 섞어 만든 것으로 기호에 따라 덮밥에 뿌려 먹는다) 통과 베니쇼가(생강초절임) 통을 보충한다. 이러한 과정을 정신없이 되풀이하다 보면 선배 직원이 슬쩍 다가와 내게 휴식하라고 일러준다. 앞치마와 두건을 벗고 주방에서 나와 시계를 보면 거짓말처럼 몇 시간이 훌쩍 지나 있곤 했다. 일을 시작한 지 몇 분 지나지 않은 것 같았는데. 블랙홀 근처의 밀러 행성에서 한 시간을 보내고 우주선으로 돌아와 보니 스무 해 이상 흘러버렸다는 영화 속 상황처럼, 요시노야 주방에서의 시간은 현실과 다르게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휴식 시간이 되면 아르바이트생은 손님처럼 카운터석에 앉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덮밥을 먹을 수 있었다. 돌아서면 늘 허기가 졌던 나는 휴식 시간마다 소고기덮밥을 먹었다. 주어진 시간은 20분 남짓으로 짧았기 때문에 소고기와 밥이 섞이지 않도록 조심해서 먹을 여유란 없었다. 여느 일본인 손님처럼 나도 이때만큼은 그릇을 손에 들고 돈부리에 코를 박은 채 밥과 소고기를 섞어가며 젓가락을 부산히 움직였다. 일본의 소고기덮밥은 뚝배기 불고기와 맛이 비슷하면서도 좀 더 달고 짰다. 여기에 붉은빛의 베니쇼가를 올려 먹으면, 짜고 달던 고기의 맛이 시고 알싸한 맛에 떠밀려 사라지고 어느새 개운한 향이 입안에 안개처럼 어린다. 주방에서 일할 때 손님들이 먹는 방법을 관찰해 뒀다가 그대로 따라서 주문해 먹기도 했다. 뜨끈한 국물이 당길 때는 쓰유다쿠로 해달라고 부탁해서 거의 소고기국밥이 된 덮밥을 마시듯 흡입했는데, 종일 솥에서 끓이며 우린 국물은 마치 엄마가 밤새 뼈를 고아 만들어 준 사골처럼 먹는 족족 온몸 구석구석으로 따뜻한 기운을 퍼트렸다. 유독 손님이 많아 일이 고된 날에는 사이드로 반숙 계란을 시켜 덮밥 위에 얹어 먹는 사치를 부리기도 했다. 흰자에 둘러싸여 희끄무레한 노란빛을 띠는 노른자를 젓가락 끝으로 터트리면 활화산이 폭발하듯 선명하고 끈적한 노란 진액이 덮밥의 산을 뒤덮으며 흘러내렸다. 용암이 굳듯 노른자가 익을세라 황급히 젓가락으로 노란 막이 씐 덮밥을 가득 퍼 입에 넣으면 노른자 소스가 소고기를 촉촉하게 감싸며 씹을수록 더욱 고소한 맛을 자아냈다. 내게 그 시절 소고기덮밥 한 그릇은,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 속에 나오는 돈까스 덮밥과 다를 바 없었다.     

이 돈까스 덮밥은 거의 행복한 만남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솜씨다. 고기의 질하며, 소스의 맛하며, 계란과 양파를 익힌 정도하며, 고실고실하게 지은 밥하며, 어디 흠잡을 데가 없다.
                                                              
                                                              -요시모토 바나나 《키친》 중 <만월>에서 발췌-      


할머니가 죽은 뒤 천애 고아가 된 미카게는 뼛속까지 사무치는 고독을 느낀다. 그러한 마음의 허기를 달래준 것은 어느 허름한 국숫집에서 먹은 돈까스 덮밥이었다. 깜짝 놀랄 만큼 맛있는 돈까스 덮밥을 먹고 기운을 얻은 미카게는 다시 앞을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요시노야에서 고된 업무 중간에 먹었던 소고기덮밥 덕분에 나는 남은 시간을 헤쳐 나갈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아무리 고달픈 상황에 직면해 있을지라도 사람은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간다. 이토록 단순한 삶의 법칙을, 나는 한밤중 미카게가 먹었던 돈까스 덮밥과 이십 대 시절 즐겨 먹던 소고기덮밥의 맛을 돌이키면서 새삼 사무치게 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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