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플러스를 포함한 다양한 OTT가 들어오는 현재 국내 OTT인 티빙도 그에 대비하여 다양한 작품을 준비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이 드라마인데 전염병 아포칼립스를 소재인 드라마인데 전염병 아포칼립스의 경우 단편 드라마, 애니메이션, 영화로 주로 제작되는 소재인데 티빙은 과감하게 12부작으로 편성한 것이다.
스토리
코로나19가 끝나고 다시 들이닥친 광인병 바이러스로 인한 사회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한 가지 신선한 점은 광인병의 증상 자체가 좀비를 연상케 하는데 이런 경우 다시는 인간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점이 흔한데 이들은 계속 광인 증삼을 보이는 것이 아닌 갈증이 심할 때만 좀비로 변화하고 그 외에는 단순한 인간이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평소에는 이성이 있기에 좀비 게임처럼 막 죽이면 살인을 저지른다는 감각이 바로 오게 한다. 그렇기에 광인병에 걸린 사람과 같이 지내고 그들을 치료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드라마는 그걸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며 광인병 발병자를 치료할 약이 나올 때까지 격리시키게 되는데
봉쇄 전략은 아직 발병하지 않는 사람들도 포함되기에 미발병자와 발병자 간의 갈등이 생기게 되고 또한 봉쇄된 아파트를 중심으로 서로 간의 직업과 재산으로 인한 다툼도 발생하는 것도 중심이 되지만 솔직히 이 부분은 제대로 잘 표현하지 못하였다. 고립된 인물들이 초조함에 무리수를 두는 부분이 확실히 드러난 캐릭터는 김정국(이준혁) 정도를 제외하고는 약간 개연성이 조금 떨어진다.
캐릭터
캐릭터는 상당히 소시민적이고 생동감을 보이기는 하지만 스토리의 호흡 조절 실패 혹은 개연성 부족으로 인해 그 매력이 반감되는 경향이 강한 게 이 드라마의 완결 후 필자의 감상이다.
윤새봄(한효주), 정이현(박형식)의 경우 전형적인 정의로운 주인공이기에 시청자가 가장 편하게 감정 이입할 수 있는 유형이다. 로맨스 부분도 나오기는 하지만 필자에게는 흥미를 못 주었기 때문에 별로라고 느껴지지만 이러한 로맨스는 이 드라마가 가진 긴장감 완화를 충분히 해주기에 의미 없지는 않다.
오히려 인상 싶은 것은 한태석(조우진)의 캐릭터성이 눈에 띄는데 감염병 관련 최전선에 선 인물이기에 현장에서 감염병 해결을 위해 수단 방법을 안 가리는 인물이기에 악역을 맡은 인물이다. 다만 그 행동의 기저에는 넥스트를 제조하여 그 약물로 인해 아내가 감염되어 죽을 위기에 처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며 동시에 그러한 강경책을 실행하기 전에 그 의도를 윤새봄, 정이현이 알아차리게 한다. 분명히 감출 수 있음에도 말이다.
오주형(백현진)의 캐릭터는 끈질기게 살아남는 악당이지만 그렇다고 무언가 극에 큰 변화를 이끄는 것도 아니면 자질 구래 한 악당도 아닌 붕 뜬 캐릭터가 돼버리는 배우 백현진의 연기톤이 찌질남에 특화된 느낌이라 치졸하고 집요한 악당이라고 좀 부족해 보인다.
오연옥(배해선)의 캐릭터성은 스스로 아파트의 높으신 분으로 있었지만 점차 몰락하고 남편도 잃어버리자 극단으로 치닫는 캐릭터인데 이 극단으로 치닫는 캐릭터의 모습은 용팔이, 호텔 델루나 등에서 보여준 연기력으로 확실히 증명했지만 상황을 극단으로 치닫게 하는 캐릭터의 중심인물이 아니라서 이 또한 붕 뜨게 한다.
앤드류(이주승)의 경우 반전형 캐릭터이며 이 드라마의 어느 순간 스며들어온 일상을 파괴하는 광인병 자체를 상징하는 캐릭터이다. 연쇄살인마인 앤드류는 살해한 사람의 신분증을 위조하여 자신을 감추는 행동은 정말 일상을 위험하게 하지만 드라마의 호흡 조절의 실패로 급박하게 이야기를 전개시켜 캐릭터가 주는 긴장감이 빨리 소비되어 버려서 좀 아쉬운 캐릭터이다. 물론 다른 캐릭터처럼 붕 뜬 느낌은 주지 않았기에 제 역할은 해 준 것이다.
필자는 이름도 기억하지 못할 만큼 존재감 없는 302호 가족은 중반부에 가서는 완전히 극 중에서 사라져 버려 퇴장 타이밍을 못 잡은 캐릭터 특징을 잘 보여준다.
나현경 나수민 남매(박희본, 나철)의 경우 공감 가는 소시민 캐릭터인 동시에 극단으로 가지 않는 인물을 상징하는데 후반부에 항체를 보유한 것이 밝혀졌는데 필자는 이러한 이기적이지만 몰라도 도덕적 선을 넘지 않는 이들의 생존이 세상을 다시 행복한 시절도 돌려준다는 것을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일주일에 두 번씩 공개되는 방식으로는 이러한 개연성 문제를 알기가 어려울 수 있지만 몰아본다면 알아차리기가 쉽다는 점이 드러난다. 그렇기에 평작에 해당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