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tty chitty bang bang과 celebrity를 들으며
최근 jtbc 경연 프로그램 <싱어게인>을 즐겨보았다. 다음 주 감독판 스페셜 방송을 마지막으로 방영이 끝날 예정이던데, 아쉬움이 크다(ㅠㅠ). 요즘 나는 싱어게인에 30호 가수로 출연한 이승윤의 노래를 무한반복재생해서 듣는다(이승윤이 보컬로 활동하고 있는 알라리깡숑이라는 밴드의 노래도 정말 좋다!). 싱어게인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처음엔 읊조리는 듯한 발음이 조금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무대가 거듭될수록 드러나는 그의 실력과 경연에 참가하는 마음가짐에 반해버렸다. 'Chitty Chitty Bang Bang' 무대로 상반된 심사평을 들은 뒤 다음 무대에서 하신 "저는 어디에서나 애매한 사람이었거든요. 제가 애매한 경계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더 많은 걸 오히려 대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라는 말에 위로를 받았다. 나는 음악인은 아니지만, 언제나 어디에서나 뚜렷하게 잘하는 것 하나 없이 애매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절망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쓸 때마다 비슷한 두려움을 느낀다. 나는 별 볼 일 없는 평범한 사람이고, 내 글 역시 평범할 텐데 내가 글을 써도 될까. 잘 쓸 수 있을까. 그런데 과연 애매하지 않은 사람, 평범하지 않은 글이 있을까? '장르가 30호'인 이승윤 가수처럼 나는 그저 나의 얘기를 쓸 뿐이고 우리는 모두 고유한 자신의 삶을 살아내면 된다.
세상의 모서리
구부정하게 커버린 골칫거리 outsider
걸음걸이, 옷차림, 이어폰 너머 play list 음악까지 다 minor
넌 모르지 떨군 고개 위 환한 빛 조명이 어딜 비추는지
느려도 좋으니 결국 알게 되길
The one and only You are my celebrity
잊지 마 넌 흐린 어둠 사이 왼손으로 그린 별 하나
보이니 그 유일함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야
You are my celebrity
아이유의 신곡 'celebrity' 가사 중 일부이다. 세상이 요구하는 셀럽의 기준에 맞지 않아 '골칫거리' 취급을 받아온 이들에게 당신의 유일함이 아름답다 말해주는 내용으로 느껴진다. 삐뚤빼뚤해도 나름의 빛으로 어둠을 밝히는 별에게 너는 나의 진정한 셀러브리티라 응원하는 이 노래도 나의 플레이리스트를 빛내주고 있다.
덕질은 이쯤 하자. 이 글을 통해 말하고 싶은 주제인 '평범함'과 '특별함'이라는 단어에 내포된 세상의 시선과 개인에게 주어지는 부담을 얘기하며 이들의 노래를 빌려오고 싶었다.
'평범함'의 반대말이 무엇일까?
나는 '특별함'이 먼저 떠올랐다. 평범함은 부정적인 느낌이라면 특별함은 긍정적인 느낌이라는 감상도 뒤따랐다. 나는 현재 열아홉 살, 고3이다. 다니고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원서를 쓰고 면접을 봤던 기억이 난다. 나의 성격, 장단점, 경험을 적고 또 말하며 강조하려 노력했던 것은 나만의 고유한 성격, 장단점, 경험 즉 특별함이었다. 우리는 시험과 경쟁, 합격과 승리라는 방식이 익숙하다. 그 방식에 길들여질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진 구조의 부속품으로 살고 있다. 학교나 회사나 다른 일터에 소속되기 위해서 자신이 다른 후보자들과 어떤 점이 다르며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어필하는 것은 근본적으로는 당연한 일이긴 하다. 그러니 이런 한탄을 해본 사람이 아주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난 무난한 성격에 누구나 가진 장단점을 가졌고 내세울 것 없이 그저 그런 경험만 해왔는데, 격렬하게 하고 싶은 것도 눈에 띄게 잘하는 것도 없는데 어떡하지. 난 왜 이렇게 평범할까?' 나도 자주 비슷한 걱정을 한다. 사실... 되게... 미래가 없는 편이다(^-^). 다만 걱정을 쫓아내는 방법으로 성격, 장단점, 경험을 바꾸려고 애쓰거나 꾸며내는 대신, 내게 이미 있는 특별함을 찾기를 택했다.
자소서를 자소설로 꾸미는 꿀팁이 공유되고 스펙이 곧 재산 재산이 곧 스펙으로 여겨질 만큼 자기PR이 중요해진 세상에서, 나는 세상 - 선생님, 교수님, 면접관, 노래 경연 프로그램 심사위원... - 이 원하는 '특별함'이 무언가에 한정되어있는 것 같다는 의심을 한다. 왜냐하면 어떤 특별함은 혐오와 배제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최근에 직접 겪은 일이다. 진료를 받으러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진단을 내리다가 대뜸 내게 말했다. "머리카락을 길러. 네 나이에는 여자가 여자답게 꾸민 모습을 하고 다녀야 한다. 그러면 아픈 게 나을지도 모르지." 나는 짧은 헤어 스타일을 선호한다. 중2 때부터 쭉 숏컷이다. 그 의사가 생각하는 '여자다움', '평범한 여자'의 모습은 긴 머리에 화장을 한 모습이었나 보다. 사회가 여성들에게 요구해온 '여성성'과 같은 기준이다. 그 기준에 나는 들어맞지 않았고 때문에 불이익 - 모욕적인 말을 듣고 제대로 된 진료를 받지 못함 - 을 당했다.
나는 비인가 대안학교에 다녔다. 일반 인가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국영수사과를 배울 때 나와 친구들은 밥 짓는 법과 상추 키우는 법, 나 자신의 행동과 마음을 성찰하는 법을 배웠다. 굳이 비교하자면 근의 공식은 평범한 배움이고 밥물 맞추는 공식은 특별한 배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성인이 되기를 앞둔 나는 요즘 너무 막막하다. 흔히 말하는 '성공'을 하기 위해서는 돈 많이 버는 직장에 다녀야 하고, 돈 많이 버는 직장에 취업하기 위해서는 유명한 대학교에 다녀야 하고, 유명한 대학교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근의 공식을 배워야 한다.
예시를 고민하다가 결국 사담을 늘어놨다. 평범함과 특별함이라는 이분법적인 두 단어가 품은 모순 때문이라고 변명하겠다. 나의 사례에 쓰인 평범함이라는 단어를 '정상적인'으로 바꿔서 다시 한번 읽어보라. 말이 된다. 평범한 것 즉 다수의 것이 정상적이며 다른 것 즉 소수의 것은 비정상적이라는 논리가 만연한 사회이기에 평범하다는 말과 정상적이라는 말이 통용된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관점에서 평범함의 반대말은 '불편함', '이상함'이 아닐까? 그렇기에 평범하지 못한 소수자는 자신의 특별함이 삶을 살아내는 데에 있어서 '위험함'으로 작용하는 경험을 매일 한다.
자신만의 개성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라는 말이 있는데,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상에 들어맞는 동시에 자신만의 개성을 가지라니, 평범한 동시에 특별하라니, 이게 가능한 일인가? 세상이 바라는 특별함은 '정상성'의 범주 내에서의 특별함인 것 같다. 아니, 특별함이라기보다는 '우수함' 아닐까? 그걸 헷갈리게 요구하는 사회에 수용되기 위해서 우리는 '나는 너무 평범해.'라는 고민과 '나는 보통 사람들과 달라. 이상해.'라는 고민을 둘 다 감당하느라 힘든 거 아닐까?
평범함의 반대말이 '다양함'이 되면 좋겠다. 평범하고 지루한 건 나나 당신이 아니라, 정상성의 틀을 규정하고 그에 맞춰 개개인의 특별함을 무시하고 재단하는 사회구조 자체이다. 우리가 볼 땐 전부 빛나는 작은 점처럼 보이는 별들도 모양이 다 다르다. 하다못해 내리는 빗방울도 그렇다. 그중에 정확히 원인 것은 없다. '우주'라는 전체이기도 하지만 별 하나하나가 개별성을 갖는 소우주이다. 우리도 그렇다. 곰곰 생각해보면 자신의 특별함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비정상성이라고 여겨 놓치고 넘어갔던 작은 특징과 끌림을 단점 아닌 장점으로 다시 해석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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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평범하다면 평범하고 특별하다면 특별한 경험을 하며 살고 있다. 내가 쓰는 포스트는 그 경험들을 사탕처럼 하나씩 까먹는 행위의 결과일 것이다. 나를 이루는 요소들을 빛으로 해석하는 과정일 것이다. 글을 읽는 이들이 공감하고 깨달음을 얻을 만한 내용이 될 거라고 믿기에, 이름 모를 여러분과 연결되기를 원한다는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