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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파링 Aug 14. 2021

상처받을 준비를 하기

<붕대 감기> 독후감




윤이형 / 작가정신


선물을 주고받는 건 참 설레고 기쁜 일이다. 물질적인 선물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테고, 소중한 관계에서 꼭 물질이 오가지 않아도 서로 마음을 표현할 방법은 많지만, 그래도 선물을 주거나 받았을 때 기분이 좋은 건 사실이다. 나는 글이라는 형식이 가장 익숙하고 또 좋아해서인지 가사가 있는 노래 선물이나 책 선물을 주고받을 때가 가장 설렌다. 달콤한 간식거리를 선물할 때는 ‘네가 잠깐이라도 기분이 좋아지길’ 바라는 마음, 생필품을 선물할 때는 ‘네 일상생활이 편안하길’ 바라는 마음인 것처럼 선물에는 주는 이의 소망이나 전하고 싶은 마음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노래와 책에는 가사와 책 본문이라는 텍스트로 그런 마음이 더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어서(마치 편지처럼) 더욱 진심 어린 선물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에 노래와 책이 좋다.


<붕대 감기>를 선물 받았다.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동료 페미니스트로서 나누고 싶은 이야기라고 했다. 책을 읽는 동안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다 읽고 난 후에는 나도 또 다른 나의 소중한 친구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페미니즘을 알게 되고, 페미니즘이 지나온 나의 삶을 해석하는 유용한 수단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 특히 내 주변의 여성들에게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나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칭하게 되었고, 페미니스트로서 노력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어려웠다. 지금도 많은 게 어렵다. 가장 어려울 때는 페미니스트 집단 내에서도 의견이 확연히 갈리는 주제들을 접할 때이다. 이런 주제를 두고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이 논쟁을 벌이는 경우가 잦다. 논쟁을 바라볼 때면 어떤 의견에 동의해야 할지 헷갈린다. 결국 고민으로부터 회피한다. <붕대 감기>는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그런 어려운 주제들이 실은 누군가의 삶과 아주 밀접하고, 곧 우리와도 밀접하다는 사실을 되새기게 해준다. 미용사인 지현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그의 손님인 워킹맘 은정, 은정의 아들 서균과 같은 반 친구 율아의 엄마인 진경, 진경의 친구 세연… 나이도 직업도 삶의 형태도 가진 상처도 전부 다른 여러 여성 인물들의 이야기가 어떤 연결고리를 통해 이어지고 또 이어진다. 너무 다른 이들의 공통점은 여성이며, 여성과 살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이라서 받은 상처가 있고, 그 상처를 준 사람이 여성이기도 하지만, 결국 여성끼리의 연대를 통해 상처를 다른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붕대 감기>가 고민의 정답을 알려주지는 않는다. 인물 간의 갈등을 완전히 매듭짓는 장면을 서술해주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최선의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느껴진다. 우리가 논쟁의 현장에 이리 휩쓸리고 저리 휩쓸리며 내 주장을 찾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러니 그저 우리의 고민이 ‘무엇이 진짜 페미니즘인가?’, ‘누가 완벽에 가까운 페미니스트인가?’라며 서로를 재단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기만을 바란다는 메시지를 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같아지겠다는 게 아니고 상처받을 준비가 됐다는 거야, 진경이 중얼거렸다. 다른 사람들이 아니고 너한테는, 나는 상처받고, 배울 준비가 됐다고! 네 생각이 어떤지 궁금하다고. p.158-159


똑같아져야지만 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너무 거대하다는 생각은 들지만, 사랑하기에, 상처받을 걸 알면서도 서로와 손잡으려는 우리를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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