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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May 31. 2018

인생은 느낌 먼저, 합리화는 그 다음

2015년 11월 4일 ·

어제 글 세션 끝나고 나오는 길이었다. 참가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사실 거의 없다시피 해서, 내가 옆에 앉는 걸 싫어하는 듯한 아줌마한테도, 같이 앉을 사람을 찾는 것 같은 아줌마한테도 별 아는 척 안 하고 혼자만 열심히 쓰다가 나왔다.

옥스포드 거리 참 예쁘게 장식해놨더라. 사람들도 북적거리고 볼 것도 많고 그렇다.

그 와중에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그런 생각 자주 하는 편이긴 하지만, 직장 일 잘 끝내고 글 쓰러 갈 수 있어서 행복하고, 야경 예쁜 런던 거리 걸으면서 집 복귀할 수 있으니 행복하고, 내 옷은 추레할망정 지나가는 예쁜 젊은이들이 많으니 눈이 행복하고 (...), 배고프면 먹을 만큼 돈 있으니 이 어찌 행복하지 않을까.

물론 이게 진짜 행복한 이유는 아니고 그냥 그 날 저녁 호르몬 밸런스가 그랬던 것뿐이다. 왜냐면 그 다음날 아침, 그러니까 오늘, 아침에 글 잘 쓰고 밥 잘 먹고 출근 완료하고 갑자기 불안/불행 어택이 한 십 분간 왔거든. 변한 건 별로 없다. 딱히 이유를 찾자면 뭐 이거저거 댈 수 있겠지만 인생은 느낌 먼저, 합리화가 그 다음.


점심을 같이 먹을 동료가 있다는 건 좋은데, 혼자 먹는 날이 좋을 때도 있다. 뭐라도 간단히 먹으려고 아래층 부엌으로 갔다가, 밖으로 나가보자 싶어서 나갔다가, 땡기는 게 없어서 걷다 걷다 보니 한국식당까지 갔다. 제육덮밥 시켰더니 뭐야 이거 2인분이냐 왜 이렇게 많아. 근데 맛있음. 우걱우걱 다 먹고 휘적휘적 돌아오는 길에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아. 이건 또 좋고 행복하다 생각이 드는 이유. 밥 먹었으니까. 난 보면 하여튼 배가 부르면 행복 지수 70% 은 먹고 간다. 심히 과식하고 나서 자학이 삼 제곱으로 뻥튀기되어 문제지만.


--이 뜬금없는 글은 독자님들에 대한 무한애정으로 이어집니다--


이제는 모임 나가도 다른 사람을 알려는 노력을 그리 하지 않는데 블로그 분들은 늘 반가운 이유가, 아무래도 이기심에다가 나의 구린 소통 방법 같다. 블로그도 그렇고 여기도 그렇고, 지 혼자 막 혼잣말하는데 다른 이들이 공감해주는 플랫폼을 십 년이나 유지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그럭저럭 어중간찌질한 모습을 몇 년간 보아온 분들을 자주 만나다 보니까 아예 처음 만나는 사람은 이건 엄두도 안 나는 것. 벌써 나를 잘 아는 사람과 시작하는 관계와, 나의 엉뚱한 말투와 띵함을 모르는 사람에게 잘 보여야 하는... 으음...

뭐 하여튼 그런 이유로 오늘 저녁에도 글 쓰러 가면 닥치고 글만 쓰고 온다는 얘깁니다.


그리고 이 뜬금없는 글의 포인트는, 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반전은, 이 감사함조차도 넉넉한 양의 제육볶음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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