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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Dec 31. 2017

'파티 드레스 선택'의 문제풀기 접근법

2015년 12월 6일

갑자기 뷰티 패션 블로그가 된 느낌인데;;

친구랑 얘기하다가 좀 뜨어 했던 거. 아 가기 싫어 때려칠까 하던 중에 친구가 물었다. 그래도 너 가고 싶어 했던 거 아니야? 화장도 하고 차려입고 가고 싶어 하는 거 같아서.

아뇨!!!!!! 아 진짜 내 귀차니즘을 뭘로 보는 거임???


생각해 보니 이건 그냥 귀차니즘이 때문이 아니라, 효율성 계산 및 문제풀기형 접근에 의한 피로감이다.

부작용이 무엇일지 모르는 이벤트에, 확실하지 않은 기준에 부합하는 꾸밈을 해서 가야 한다는 것이 챌린지.

이걸 문제풀기식으로 접근하면 만점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은 난이도 챌린지다. 누가 오는지 모르고, 어떤 식으로 내가 망쳐버릴지 확실하지 않고, 그 후에 신랑이 어떤 피해를 입을지도 모르고, 어떻게 차려 입어야 하는지도 아리까리하니까 이건 시험범위도 없고 족보도 없는 시험을 치르는데 '못 치면 너 망한다' 이런 케이스란 말이지.

물론 이걸 '이쁘게 꾸민다'에 중점을 두면 더 즐길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렇게 꾸미는 거 좋아했으면 내가 이 나이 이때까지 무화장 무 스타일링 노 패션으로 살아왔겠소??? 한 살이라도 어렸을 때 빡세게 꾸몄겠지.

시간 들고 스트레스 받고 돈 들고 성공 가능성도 확실하지 않고 잘 해봐야 본전이고 이거 영 재미 못 볼 것 같은 상황에 비해서 안 가면 몸 편하고 돈 안 들고 스트레스 안 받고..;; 신랑이 곤란한 거 아니라면 그냥 빠지겠다. 아, 파티 가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없는 건 아닌데, 내가 직접 참여하지 않고 그냥 스르륵 보고 오는 편을 선호하겠다. 신랑 회사 사람들 만나고 싶다는 호기심도 조금은 있으나... 참여 요구사항 및 내 쪽 손해가 너무 커.

돈이 이유 없이 많이 든다는 건 당위성 없이 리소스를 더 낭비한다는 거다. 돈 더 쓰면 좀 더 좋을 수는 있지만 꼭 그럴 필요 없을 때엔 한량스런 낭비뿐으로 보인다. 그래서 난 조금 더 비싼 거 샀다고 해서 자기만족이 된다던지, 나 자신을 대접했다는 느낌 없다. 단지 두 번 사는 수고는 미칠 듯이 견딜 수 없으므로 그걸 피하기 위해 __두 번째로 싼 물건__ 을 살 뿐이다 쿨럭.


어쨌든 이 '파티의 문제'를 잘 풀려면.

어떤 복장이 적당한지 알아본다 - 이건 답장 받았다. 대강 알 것 같다. 긴 치마로 간다. 

나한테 어울리는 드레스가 뭔지 발견한다 - 이것도 성공 기준이 모호하다. 내 눈에 이쁜 거? 뭔가 좀 보편적인 기준이 있나? 게 모야 ㅠ0ㅠ 

나한테 어울리는 메이크업과 헤어를 한다 - ....이건 그냥 전문가한테 맡기기로 결정 -_;;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시간/노력/스트레스/돈이라는 리소스를 최소한으로 해서 최대한의 결과를 내는 건데...

스트레스임. 그리 즐겁지 않음. 내가 드레스 입어보고 액세서리 사고 이러는 거 즐기는 사람이었으면, 쇼핑 천국 옥스퍼드 거리에서 걸어서 15분에 사무실이 있는데 이전부터 안 했을 리가 있나. 헤어 살롱 넘쳐나고 네일숍도 널렸는데 그거 즐기는 사람이었으면 안 갔을 리 없고. (아시다시피 블로그 십 년 하면서 지난 며칠처럼 내 사진 자주 올린 적은 없었지요잉)


어제 드레스 쇼핑 마지막으로 하면서 재차 느꼈다. 신랑은 내가 안 간다고 지랄을 한 번 해 놓은 상태라, 결혼 14년 동안 보지 못했던 성실 신실함과 진중한 관심으로 드레스 쇼핑가자고(무려 지가 먼저!!!) 제안했으나... 두 시간 채 안 되어서 나는 GG. 사람에 치이고, 드레스 너무 많고, 봐도 이젠 그냥 지치고, 뭐가 뭔지 모르겠고, 아 그냥 대강대강 적당하고 싼 걸로 하고 치워 아캏ㄷㅎ가ㅏㅎㄱ나 상태 됨. 내 맘에 드는 옷 몇 개 사는 걸로 하면 좀 더 즐거웠으려나. 한국에선 날 잡아서 옷 쇼핑가면 재밌었는데 사이즈 고민 안 해도 된다는 편리함이 있고 내 취향에 맞는 옷도 많아서 많이 걷거나 안 입어 봐도 걍 대강 괜찮다는 효율성이 있어서 그랬을지도.

신랑이 새로 옮긴 회사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스트레스는 안 받았을 것 같다. 그래도 뭐 이쁘게 꾸며서 사진이라도 찍으면 좋지 않냐는 마음으로 버티고 있...기에는 아 진짜 스트레스. 글케 보면 신랑 회사 이벤트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공들이진 않았을 테니까 닭이냐 계란이냐.

쇼핑 피로 누적으로 드레스는 이제 그냥 포기하고 사둔 거 입기로 했고. 

헤어 메이크업 맡긴 분 있고. 

목걸이도 십 파운드짜리 (처음 올린 드레스 사진에서 다들 예쁘다고 했던 거 그냥 샀....) 

신발 가방 코트는 무시하고 그냥 있던 거 입고/들고 가기로 결정. 특히 클러치는 딱 내가 어디다 두고 다닐 사이즈라서 신랑의 포켓을 이용하기로..;;


그러니까 고민 끝. 이제 더 이상 신경 안 씀. 망하면 망하는 거고.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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