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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Dec 31. 2017

거짓말의 시나리오

2015년 12월 16일

어렸을 때 얘기다. 초등학생 때 거짓말을 거하게 했다. 난 기억할 수 있는 유년 시절이 백퍼 사회성 실험이었는데, 이것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사람들은 곧잘 거짓말을 하고, 우기기도 하고, 타인들이 잘 믿어주기도 하더라고. 그래서 __작정하고__ 해 본에 두 번이다.

ㅅㅂ. 반나절도 안 돼서 곧바로 들켰다. 혼났다.


물론 난 지금도 사소한 거짓말은 자주 한다. 하기 싫은 일도 재밌다고 하고, 바쁘지만 안 바쁘다고 하고, 안 바쁘지만 바쁘다고 할 때도 많다. 하지만 난 근본적으로 속이려고 작정하는 거짓말은 잘 못 한다. 안 웃기는데 웃는 것도 잘 못 한다. 누가 나 이쁘냐 하면 내 눈에 안 이쁜데 이쁘다는 말은 못 하고, 와 개성 있다, 그런 거 자주 봤는데 인기 많나보다, 트렌드인가보다, 그런 식으로 답한다.

그러니까 사기성 거짓말의 시나리오, 구조를 잘 모른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거짓말 레퍼토리가 잘 통하는지를 모른다고 해야 하나. 특히나 나에게 유익한, 사기성 짙은 거짓말이 그렇다. "내 이득을 위해서 현실을 포장하거나 호도한다", 혹은 내 커뮤니케이션 실수로 상대가 그렇게 오해할 수 있다 싶으면 불안해진다(참고로, 난 최근에 LG 셀카 모드 보정 평균 3번 세팅으로 내 얼굴 사진을 찍어 올린 데에 깊은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진짜 적나라한 사진도 같이 올려야 하는데, 그 사기 사진 보고 내 피부가 좋다든지, 어려 보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까봐 올릴 때마다 보정한 사진이라고 말을 더한다.). 이건 도덕적 성격... 그런 거보다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어떤 상황을 만들어내었으니 그걸 이젠 내가 기억하고 밀고 나가야 한다는 부담감에 비해, 상대방에게 더 좋은 버전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은 상대적으로 적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인사고과는 처참하다. 내가 뭔가 잘 한 거를 써야 하는데 생각이 잘 안 나는 것도 있고, 내가 한 것을 좀 더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있다는 압박감에 눌려서 그냥 포기해버린다. 지난 인사 리뷰에는 딱 네 줄 썼다. 거의 뭐 "xx 작업 끝냈음", "xx 프로젝트에 참가했음" 정도이다. 딴 애들은 기일게 기일게 잘 적더라. 그래도 나 소설도 쓰던 앤데 좀 심하다 싶을 때 많다.

아아주 예전 글 쓰던 시절에 허언증 작가들을 꽤 많이 겪었다. 그런데 정말 버라이어티한 거짓말로도 참 오래 버티더라. 그게, 허언증 자체도 좀 성격이라서, 어릴 때부터 쭉 하다보면 연습이 되는 것 같다. 그러니까 난 오래 갈 만한 좋은 거짓말을 생각 못 해내는 건지도 . '예쁘다'는 거짓말은 현실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있는데 못하겠고. 우리 애들 천재라는 식으로 거짓말하는 건 대략 통할라나. 무슨 거짓말을 해야 오래 갈라나. 우리 신랑이 이렇게 잘 해 줘요 이런 거? 저 요리 잘해요, 직장에서 이쁨 받아요, 월급 많이 받아요, 실력 좋아요, 친구 많아요 뭐 이런 걸라나. 그 때 그 친구들의 거짓말은 상당히 구구절절했고 에너지 소모가 심한 종류였던 걸로 기억한다. 폭행당해서 유산을 했고, 대단한 사람과 연애를 했고, 부모가 갑부고, 사시를 패스했고, 명문대 출신이고 등등. (난 누가 말 하면 곧이곧대로 듣는 편이기도 해서 오 네 그런가요 +_+ 하다가 자주 말려들었다 어흥흥).

어쨌든. 오래 간다. 그것도 재능이라 해야 하나. 난 뭐 인사고과 셀프 피드백 쓸 때만큼 만이라도 좀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실력 있었으면 좋겠다.


결론: 

저 사실 피부 안 좋아요. 사진 보정해서 올라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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