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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May 30. 2018

노동의 저평가

2016년 3월 7일


* 이 글은 "번역 한 번 했다고 얼마나 오래 생색내려고 그러냐, 자기가 쓴 것도 아닌 번역책 돈 받지 말고 그냥 공짜로 배포해라"정도의 논지의 글을 읽고 썼다.



원료 값을 따진다거나, '그거 하면 얼마나 걸린다고, 공짜로 좀 해줘' 라는 식의 말을 하는 걸로 사회생활 해봤냐 안 해봤냐/ 돈 벌어봤냐 안 벌어봤냐 구분을 한다. 꼭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돈 벌 필요 없으면 당연히 안 벌어도 된다. 단지 구분법으로 유용하다는 것뿐이다.


'시간을 중요히 여기라'는 말이, 나이 들어보니까 살짝 뉘앙스가 다르다. 사실 내 시간을 팔아서 돈을 받는다는 게 그리 쉬운 게 아니다. 노동 시장에 나가서, 내가 신경 써주는 건 이만큼 가치가 있으니까 사서 돈 내라는 것이 결국 고용 계약.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는 것보다는, 시간을 팔아서 돈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그리 쉽지 않은 거라, 그 시간으로 돈을 벌고 있지 않거나, 몸값 올리기에 투자하고 있지 않다면, 나이 들면 들수록 기본적인 의식주 해결이 힘들어진다는 문제.

어릴 땐 최하 시급도 못 받는다. 그러다가 취업하면 100만 원을 받는다고 하자. 내가 내 머릿속으로 가치를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하여튼 내 고용주가 생각하는 내 시간의 가치는 100만 원이다. 난 원래 이거 할 사람이 아닌데 여기서 이러고 있다는 식으로 정신 승리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잘난 만큼, 혹은 노력한 만큼 사람들이 돈을 주는 시스템이 아니다 보니 내가 돈 줄 사람을 찾아서 네가 나한테 이만큼 돈을 줘야 한다고 설득시켜야 하는 게, 어쨌든 벌어서 먹고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딜레마다. 장사를 하든 취업을 하든 마찬가지다. 당장 역지사지하면, 난 다른 사람들의 시간에 얼마의 돈을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보면 된다. 내가 진짜 보고 싶었던 외국 책이라고 해도, 번역책이 3만 원 넘어가면 돈 쓰기 싫을 걸. 1만 원도 싫죠. 이왕이면 공짜였음 좋겠죠. 이 세상 사람들이 다 마찬가지인데 그 속에서 어떻게든 내 시간을 사고 돈을 정기적으로 줄 사람/회사를 찾아야 한다. 세상은 내가 박사학위 있다고 자동적으로 돈을 주지 않고, 내가 정말 열심히 쓴 책이라고 해서 자동적으로 더 많이 사지 않는다.


다 더럽고 치사하다, 난 장사하겠다 하는 이들 있다. 나도 이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삼. 취업은 회사 하나, 사람 하나를 설득시켜서 시간치환 돈 받는 시스템인데, 장사를 하는 것은 훨씬 많은 수의 사람들은 계속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이거 당연히 쉽지 않다.

그래서 먹고 살아야 하는 사회인에게 시간은 신성하다. 내 노동을 공짜로 빼먹으려고 하는 이들에게 얼마나 빡치는가로, 얼마나 오래 먹고 사느라 발버둥 쳤는가를 알 수 있다고 믿는다. 웬만하면 사람들 잘 도와주는 편(이라고 난 생각하는데 ㅋㅋ) 번역? 통역? ㅅㅂ 그냥 돈 십만 원 달라고 해라...고 지랄한다. 돈 내가 주께 가서 번역/통역가 구해 ㅅㄲ야. 내가 '그 몇 장 번역해주는' 1박 2일, 혹은 통역 반나절이 아무런 금전적 가치가 없다라고 생각하는 사람하고는 난 상종하고 싶지 않다.


그 번역 생색 발언 한 아가씨에게는 -

우리 다 어릴 땐 다 내가 천재인 거 같고, 늙은 사람들이 한심하고 적은 돈에 벌벌 떠는 게 찌질해 보이고 그렇다. 한 살 한 살 들면서, 그렇게 만만하게 보였던 것이 사실 얼마나 큰 노력을 필요로 하는가를 깨닫기 시작한다. 너도 그럴 거다. 꼰대짓이라고? 뭐 그렇죠.

남의 돈 받아먹는 것이 얼마나 안 만만한지, 내가 죽어라고 노력해서 만들어낸 것이 아무 가치 없이 씹히고 버려지는 것을 보고, 지금까지의 내 인생을 몇 초 만에 판단하고 시급 5천 원을 부르는 고용주를 겪어본 다음에 우리 얘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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