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잡담

시애틀 여행기(2014년 버전)

2016년 5월 27일

by yangpa

2년 전에 갔을 때와 많이 달라져서, 그 때 글 먼저 올린다.




* 오후 두 시 비행기였다. 아침 열 시에 출발했다. 물론 늦잠 잤으므로 아침 아홉 시에 일어나서 짐 쌌다. 물론 아침 먹는 것이 더 중요하므로 짐 싸는 건 십오 분이었고 나머지는 만두를 노릇노릇 잘 구워서 소스 찍어 먹는 데 집중했다.

* 공항에 도착했다. 또 배가 고파서 핫도그를 먹었다. 아참, 내 돈 아니라고 시애틀 직항 비즈니스로 당차게 끊었다. 내가 얼마나 유치하고 자기합리화가 심한지는 비즈니스 몇 번 타면서 알게 됐는데, 비즈니스 탈 땐 누가 좀 봐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고, 서비스가 좀 더 좋았으면 하는 기대가 있으며, 뭐 여러 가지로 하여튼 뿌듯하면서도 속물적이면서도 그런 마음이 있으나, 이코노미 타고 갈 때는 누가 그 돈 주고 비즈니스 타야 되냐, 사실 BA는 이코노미석이 더 편하다,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 이번에는 비즈니스이므로 좋은 서비스 받으려는 마음으로 (천천히, 누가 봐주기를 바라면서) 갔다.

* 근데 게이트에 도착하면서부터 뭔가 좀 이상하다. 이 사람들이 차려입은 것부터 시작해서 가방 모양이랑 안경, 머리 스타일까지 뭔가 기분 나쁜 친근함이 느껴진다. 뉴욕의 미국사람들과는 약간 다르게 좀 캐주얼한가 보다 라며 애써 합리화했다. 비행기 타서 자리에 앉았다. 아니 이거 진짜 좀 심할 정도로, 배신감 느껴질 정도로 친근하다. 뭐 시애틀에 테크 회사가 많으니까 테크 쪽 사람들이 좀 있겠지, 그리고 그러다 보면 그 주위 사람들도 좀 분위기 따라가서 '개발자수준 패션'이 정착이 되었..

옆에 앉은 아저씨가 서피스를 꺼내네. 그것도 아주 사랑스럽게 비싼 커버를 씌운 서피스. (덧. 이건 2014년 일이다. 서피스 RT 때다. 인기 없었다).

이 아저씨 역시 입는 옷부터 시작해서 가방이며 아주 테크 냄새가 고약했단 말이지. 내가 아무리 우리 회사 제품이니까 좋아하려고 해도, 서피스 RT 세일즈는 망한 걸로 알고 있는데, 회사에서 공짜로 받은 거 아냐??

모른 척했다.

* 안 그래도 애 없이 비행하자니 천국인데 자리를 잘 잡아서, 발 놓을 곳까지 있고 의자 확 뒤로 젖혀지고, 퍼스트 클래스가 부럽지 않아!! (그 돈 주고 퍼스트 클래스 타냐! 이 정도만 해도 훌륭한데...라는 합리화를 무지막지하게 하고 있었다.)

* 헉. 기지개 켜려고 일어나니까 내 뒷자리의 50대 아저씨는 마이크로소프트 예전 로고 달린 티셔츠를 입고 있어!!

무시했다.

* 헉. 화장실 가려고 일어나니까 오른쪽에 앉은 아저씨는 (ISC)2 로고가 있는 모자를 쓰고 있어!!

무시했다.

* 헉. 화장실 가니까 개발자티 팍팍 나는 젊은 남자들이 삼삼오오 떼 지어서 얘기하고 있어! 이게 무슨 수학여행이냐?? 글구 안 들으려고 해도 들리는 대화 소리가 다 개발 얘기야. 흑흑.

...무시했다. ㅜㅜ

* 뱅기가 시애틀에 내렸다. 신나서 얼른 나왔는데... 입국심사가 똬리를 튼 아나콘다 특대 사이즈다. 한 시간 줄 서서 기다렸다. 그런데.. 줄 서서 보니까 이건 진짜 더 이상 부정할 수가 없다. 우선 성비가 아주 친근한 20:1이고, 그나마 여자들은 확실히 테크 쪽 냄새가 폴폴 나고..

오른쪽을 보니까 애져 배지 달은 남자. (Azure, 마소 제품)

왼쪽에는 윈도폰 어쩌고저쩌고 얘기하는 개발자 둘.

두시 방향에는 XBox 배지 달은 남자.

네 시 방향에는 마소 로고 백팩 든 남자.

일곱 시 방향에는 윈도 로고 새겨진 머그잔 들고 있는 남자.

뭐야!! 마소가 전세 낸 비행기인가??

* 아참. 테크 쪽에 있는 여자들도 패턴이 있다. 우선 화장기가 별로 없다. 머리는 생머리가 보통이다. 드라이기 별로 없고, 파마기도 없다. 염색도 드물다(20대라면 예외가 많다. 특히 머리 색깔에서). 덩치는 아주 뚱뚱한 사람도 별로 없고, 무지 늘씬하게 이쁜 여자도 별로 없다. 그냥 보통 몸매에, 생머리에, 화장기 없는 얼굴에, 안경 흔하고, 가방도 노트북 들어갈 만하고, 옷은 후줄근하진 않지만 아주 새끈하지도 않다. 약간 낮은 목소리가 많고, 말할 때 특색이 있는데 그걸 보면 플젝 매니저 쪽인지(더 흔하다), 개발 쪽인지(덜 흔하다) 알 수 있다.

* 택시 찾다보니까 마소 사람들 더 보이네. 아니 진짜 도대체 몇 명이야? 이 도시엔 마소 직원들만 사나??

* 호텔에 도착했다. 체크인 하려니까... orz;;; 또 마소 사람들!! 악 이젠 진짜;;

* 알고 보니 무슨 콘퍼런스가 있어서 왕창 다들 들어온 거라고.

* 저녁 먹으러 나갔다. 일식이 땡겨서 검색해보니까 호텔 근처에 Benihana라고 있더라. 갔다. 괜찮아 보였다. 사람들이 많아서 줄 서서 있었다. 곧바로 나와서 딴 데로 갔다. 앉아서 시키니까 웨이트리스가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런던이라고 했다. 마소에서 일하냐고 물었다.

ㅜㅜ

아 놔 진짜. 영국 처음 왔을 때 지하철 역 나오자마자 들리던 아프리칸스 욕. 중국 갔을 때 옆에 한국인 관광객들 와방 보일 때의 짜증이 몰려왔다.

난 있잖아, 뭐 좀 유치하긴 하지만, 시애틀을 떠도는 고독한 한 마리의 관광객이 되고 싶었어. 이따구로 마소 직원들 개미 떼의 뻔한 1인이 되고 싶진 않았다구!! 뭐 이따 컨퍼런스가 내 여행을 망치고 있...흑흑.


* 호텔은 미안할 정도로 널찍하고 크다. 역시 미국에 와서 살아야겠어. 런던은 사람 살 곳이 아냐.

* 미국 사람들이 오버스럽게 친절해서 신경질이 났다. 스스럼없이 말 붙이고 친 한척 하는 건 내 전공이란 말이다!! 다른 사람이 나한테 그러니까 적응이 안 되네그려. 그래서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며 앞으로 런던에서도 오버스러운 친한 척은 안 하기로 했다. (후기: 실패였음. 개념도 없지만 워낙 낯가림이 없다).

* 미국 사람들, 'Thank you', 'Sure' 이런 말 할 때 톤이 한 다섯 음 정도 너무 높단 말이지. 막 나도 같이 톤 높여서 'You're WELcome~' 막 이래야 할 거 같은 압력을 느낌. 아, 글구 왜 알지도 못하는 사람하고 눈 마주치고 말 걸고 웃어!!?? 단체로 런던에 델구 와서 모른척하기 훈련을 좀 시켜야...

* 요약하자면 -

- 시애틀 음식 맛있었음. 특히 해산물. 살 3킬로 쪄서 왔음.

- 시애틀에 이민 갈려고 생각했었는데 긴 출퇴근 및 각자 차 한 대씩 몰아야 하는 상황에 지금 거의 포기상태.

- 미국 사람들 너무 친절함. 그나마 시애틀은 다른 작은 도시보다 덜 친절한 거라고!! 믿을 수가 없다. 런던의 뻘쭘기피문화 도입이 시급함.




참고로 현재 스탠퍼드 대학교 도서관에서 이 글 쓰고 있음. 완전 좋음. 전 재산 탈탈 털어서 여기 석사라도 하러 올까 심각하게 고민 중임. 아니 뭐 이딴 지상천국이 다 있지??

젊은 애들 많은데 질투로 폭발하고 있음. 그래. 어리니까 좋지? 세상이 다 니 거 같지?

니 거 맞구나.

흑.

그래 잘 먹고 잘살아라.

아줌마는 그냥 커피나 홀짝이다가 호텔 갈란다. 너무 일찍 와서 체크인을 못 하고 있다.

그나저나 니네 나라 진짜 좋다. 아줌마 여기 와서 살란다.


후기:

그리고 결국 여기 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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