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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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강아지' 모델은, 본인은 아니라 우길지 몰라도 상당히 수직적인 모델이다. 상대에게 잘 해주든 못 해주든 그 베이스는 어디까지나 '나는(무슨 이유로든) 우월하고 너는 내가 (돌봐줘야 할/ 지배해야 할/ 시험해야 할) 상대다라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너는 강아지 모델"은 상대와의 교류가 꽤나 활발하고 정서적인 교감도 있는 편이다. 음. 어쩌면 '상대방의 반응및 피드백이 중요하다'라는 말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너는 고양이' 모델의 남자들에게는 그런 감정의 피드백이 훨씬 덜 중요하다.
- 공주 모시는 머슴형
너는 강아지형과 겉으로 보면 비슷한 거 같지만 전혀 아니다. 이 스타일의 남자는 아주 자주 까다로운 여자를 모시고 산다. 예쁜가 안 예쁜가는 중요하지 않다. 이 여자는 남자를 달달 볶으며, 잘 토라지고, 해달라는 것도 많고 섭섭한 것도 많다. 주위에서는 도대체 어떻게 저런 여자를 데리고 사느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이 여자가 능력 있는 장군형이어서 옆에서 보좌만 잘 해도 되는 거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이건 '남자 내가 강아지' 형). 그냥 열라 까다롭고, 신경질적이거나 걱정이 많고, 그 외 여러가지 성격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옆에서 버티는 남자형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자가 좋은 남자냐 하면 뭐 꼭 그런 건 아니고요.... 이 남자는 주위의 평판에 예민하며, 절대로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고, 손해 본 착한 사람이 될망정 이기적이라던가 지 잇속만 챙긴다는 소리는 못 듣는 사람이다. 돈 달라면 다 퍼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남자와 고양이 여자와의 관계는 사실 궁합이 잘 맞는다. 남자는 목표 의식 같은 게 별로 없고 자기 주관도 없을 수 있다. 이런 경우 까다롭고 할 말 많은 여자 옆에서 그 여자가 하는 말대로 끌려간다. 남자에게 나쁜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무슨 일에 확신이 가지 않을 때 남자는 우려를 표현하더라도 결국 여자는 자기 맘대로 할 걸 알기 때문에 남자 잘못이 아니므로 괜찮다. 나중에는 '내가 그렇게 말했지만 여친이 강력하게 주장해서...' 라고 변명할 수 있다. 그러면 자기는 '실패할 걸 알면서도 여자가 원하니까 따라준' 속 깊고 착한 남자가 된다. 주위에선 말 안 듣고 지 맘대로 해버린 여자를 욕한다. 솔직히 혼자였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겁에 질려 우왕좌왕 했을테지만 여자가 있었기 때문에 그냥 옆에서 시키는 것만 하면 되는 거였지만 말이다.
이 남자는 자기가 할 수 없는 거절이나 성질부리기를 여자를 통해서 한다. 주위에서 섭섭한 일이나 거절할 수 없는 일이 있으면 그 사람들에겐 아무 말 못 하고 그러겠노라 해 놓고 여자에게 와서 착한 척 부탁한다. 그러면 여자는 분기탱천하여 그 상대에게 가서 화를 퍼붓는다. 남자는 옆에서 그러지 말라고 말리지만 사실 자기가 원했던 바이고, 여자를 말려봤자 소용없다는 걸 잘 안다. 욕은 여자가 먹지만 여자는 성격상 신경을 쓰지 않고, 남자는 이 상황에서 좋은 남자가 될 수 있다.
여자가 끊임없이 잔소리를 하고, 남자는 한없이 맞춰주는 것 같아 보이는 뒷면에는 이런 모델이 숨어있을 수 있다. 최악의 콤비는 이런 남자와 실제 능력 있는 장군형의 여자인데, 이런 조합에서는 '여자 등골 빼먹는 착한 남자' 궁합이 탄생한다. 여자는 돈은 돈 대로 벌고 일은 일대로 하면서 생색 하나 못 내고 나쁜 여자가 되며, 남자는 어디 가서나 호인 소리 듣고 성질 더러운 마누라 모시고 산다는 위로 받는다.
– 숭배형
여자란 동물은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나 기본적으로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감정교류 따위는 별 관심 없는 남자다. 예쁘나 까탈스러운 고양이를 모시고 사는 스타일이다. 본질은 다른 스타일이더라고 여자와 사귄 적이 없는 10대나 20대 초반에 잠깐 이 모델을 겪을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여자는 화장실도 안 가고, 코를 파지도 않으며, 성스러운 선녀라서 고결하며 완벽하다고 믿다가 아주 작은 결점만 보여도 환상이 깨졌다며 난리 깽깽이 블루스를 춘다. 이들에게 '감정의 교류'란, 내가 상대를 얼마나 숭배하는지를 전달하고 인정받으며 상대는 환상적인 여성스러움으로 나를 감싸고(섹스도 하고 밥도 해주고 그 외 판타스틱한 연애물에서 본 거 다 해주고, 아니면 내가 섹스하고 싶다면 받아주고 내가 밥해준다면 먹어주고 그러면서 고맙다고 해주는) 완벽한 연애가 완성된다. 남자들용 판타지에 이런 여자가 많이 나온다. 여성용 판타지에는 여성 캐릭터가 현실에 가까우나 남자 주인공은 스테레오타입 껍데기인 것처럼, 남자 판타지의 여자는 아름답고 미스테리하며 쉽게 범접할 수 없다(그리고 속이 없는 껍데기다). 이런 여자를 바라는 남자한테 실제적인 캐릭터 여자는 전혀 어필하지 못한다.
의외로 예쁜 완전체 여자들과 궁합이 잘 맞는다. 남자는 감정적으로 미숙하므로 여자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다. 그저 예쁘고 신비로우면 된다. 여자가 좀 이상한 짓을 하더라도 환상을 깨지 않는 이상은 떠받들고 산다. 이상한 부분 자체를 신비로움으로 받아들이고 살 수도 있겠다.
보통 여자하고는 사귀면서 점점 환상이 깨졌다며 다른 여자 찾아 나서는 경우가 많다. 로맨틱하지만 여자를 이해하지 못한다. 나이 들어서도 이 스타일로 남는다면 결혼 생활은 견딜 수 없는 고문이다. 내가 한때 숭배했던 여자가 머리에 기름도 끼고 발 뒤꿈치가 갈라지고 뱃살도 늘어난다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이런 남자와 같이 사는 건 정말 힘들다. 나를 숭배하며 떠받들던 사람의 얼굴에서 뚝뚝 떨어지는 경멸을 버텨낼 보통 여자는 잘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 남자는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미성숙한 소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스타일이 어리고 순진할 때 여자에게 백퍼 숭배했다가 심하게 데이면 나는 강아지의 (3)번 모델, ‘사랑을 시험하는 남자’가 되기도 한다. 이 모두가 여자를 잘 이해를 못 하거나, 이해하고 싶지 않거나, 자신의 머릿속에서의 개념으로만 받아들이는 성향으로 설명될 수 있다.
덧:
그렇다고 해서 여자들은 남자를 다 이해하느냐 하면 절대 아니다. 남자와 여자 두 그룹 다 상대 그룹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그에 따라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스타일은 극소수다.
– 사육형
사육형이라면 좀 험악한데, 어떻게 보면 셋 중에서 제일 낫다고 할 수 있겠다. ‘너는 강아지’의 (1) 번 그룹과도 비슷하게 보일 수 있으나 감정의 교류가 적다는 것, 그리고 실망하면 쉽게 떠난다는 점이 다르다.
이 스타일은 여성의 미를 사랑한다. 피그말리온 사랑한 조각가처럼, 여성스러운 미 자체를 사랑하므로 여자의 성격이 어떤가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관리하기 까다로운 난초라던가, 성질 있는 샴 고양이라던가,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는 앤틱 기계라던가 하는 식으로 여자를 다룬다. 여자가 짜증을 내도 ‘앙탈’이라 생각하고 ‘대처’를 하려 한다. 상대를 나와 같은 사람이라 보면 가능하지 않은 케이스다. 하지만 여자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큰돈을 투자하고, 예쁘게 꾸미는데 들어가는 돈은 아끼지 않고 써준다. 밖에 나갈 때 여자를 데리고 나가 자랑하는 것은 비싸고 귀한 차를 자랑하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보통은 돈 많고 나이 많은 남자가 젊은 여자를 옆에 끼고 다니는 케이스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때 여자를 딸처럼 챙기고 돌봐준다면 강아지 스타일이고, 여자가 예쁘게 꾸미는 데에는 돈을 아끼지 않으나 실제로 대화를 나누거나 하는 일이 적다면 너는 고양이 스타일이다. 이 남자에게 여자는 화려한 장식품, 관리해야 하는 자산, 어느 정도까지는 귀찮게 하는 것을 참겠지만 그 이상은 혼나야 하는 펫이다.
남자형 하나 더 나가고, 그다음에 여자형도 나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