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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Jun 02. 2018

의식과 육체의 관계, 안경

2016년 7월 6일

난 눈이 아주 나쁘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다섯 살인가부터 안경을 썼는데 그 때문에 내 두개골에는 안경골까지 있다. 안경다리 자리를 따라 골이 깊게 파였다.


시신경과 두뇌가 엄청난 것은 단지 볼 수 있는 능력 때문이 아니다. 먼 거리를 자세히 볼 수 있는 능력이라면 새대가리인 독수리 이런 애들이 훨씬 낫다. 인간 시신경과 두뇌 콤보의 진정한 파워는 시신경으로 들어오는 정보를 처리하는 엔진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미지에서 객체를 구분하고, 그 객체에 따른 물리적 특성과 정보가 주루룩 뜬다. 그런 면에서 게임엔진과도 비슷한데 게임엔진은 어느 정도 객체에 대한 정보를 넣어두어야 돌아가는 것에 비해 인간의 두뇌는 대강 때려맞추기도 잘 한다. 그렇게 들어오는 정보에 맞추어 몸놀림을 할 수 있는 것도 대단하지만 그 객체 각각에 대한 감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더욱더 대단하다.     


뇌에 손상을 입은 환자 중에, 시신경 정보에 따라 감정적인 반응이 되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자기 어머니를 보면 '어머니인 척 하는 사기꾼'이라 소리를 지르곤 했다는데, 어머니의 목소리를 전화로 들으면 전혀 그런 문제가 없었다. 어머니를 보았을 때 얼굴을 인식하여 기억 속에서 어머니 얼굴과 매치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마음속에 있는 어머니에 대한 감정과 연결이 되지 않으므로 '사기꾼'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난 눈이 아주 나빴기 때문에 그런지 (아니면 그냥 난 원래 좀 하자가 많은 애니까 포괄적인 하자 리스트에 그냥 포함되는 건지) 거울을 들여다볼 때에 '나'라는 모습에 이질감을 느낄 때가 꽤나 많다. 이건 내 자신이 싫다라던가 그런 게 아니라,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아 맞아 내가 이 육체에 들어가 살고 있지'라고 생각한달까. 아마도 그래서 꾸미는 데에 관심이 별로 없을 수도 있다. 춥고 덥고 아프고 한 것은 직접적으로 느껴지니까 어떻게든 처리하게 되는데, 내가 끌고 다녀야 하는 몸을 예쁘게 꾸미는 것은, 실질적이고 직접적인 이익이 없다 보니 자동적으로 생각이 안 되는 거지.


뛸 때는 안경을 벗는다. 러닝머신은 거울에서 약 4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거울 안의 나는 그저 주기적으로 움직이는 까만 원통형일 뿐이다. 나 자신을 알아볼 수 없고 몸은 힘들다. 특히 그럴 때 '나의 모습'을 보고 '나 자신'이라 인식해야 하는 엔진이 평소보다 더 게을러진다. 뛰느라 힘들어 죽겠으니 연상 엔진 니는 좀 조용히 하고 있어라 인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눈이 많이 나쁘다 보니 내 의식=내 자신이란 연결고리를 제대로 생성하지 못해서인가가 잠깐 궁금해졌다.     


자폐증은 의식에 대한 이론 성립 및 이해가 불가능한 증상이란 내용을 어디에선가 읽었다. 나의 의식을 이해하고, 다른 이도 비슷한 시스템을 운영할 거라 인지하면 소통이 쉽다. 난 자폐증은 아니지만 성격적인 하자 종류를 고려해볼 때 자폐 성향이 있긴 하고, 실제로 자폐 테스트하면 상당히 높게 나온다. 다른 이들의 의식 시스템이 본능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기 때문에 30년 내내 관찰하고 분석하고 연구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디버깅스러운 개발자의 접근이지 본질적인 이해는 아니니까.     

별거 아닌 단순한 사회생활 시나리오에서 망설일 때 많다. 소설도 잘 못 읽고 여러 사람이 말하면 못 들으며, 전화를 많이 어려워하고, 나쁜 의도로 말하지 않았으나 무례하다는 인상을 줄 수가 있다. 다행히 개발 쪽에서 일하다 보니까 나보다 훨씬 더 심한 사람들이 많아 오히려 사회생활 잘 하는 정상인 평가를 받으며 살고 있는데 (...앗싸..?) -     


이 글의 결론:

상당히 감성적으로 글 쓰시는 분들 페북 페이지 몇 개를 구독하고 있다. 이런 글들 볼 때마다 "확실히 난 뭔가 좀 내부 부속 문제가 있나 보다" 생각 자주 한다. 그리고 같은 세상을 살면서 이렇게 세상을 달리 보면 느낌이 어떨까 궁금하다. 난 사회생활 하다 보면 자막 없는 외국 영화 보면서 "지금 방금 뭐란 거야?" 느낌으로 살 때가 많거든. 혼자서 "뭐지? 왜 나만 못 알아들었지? 설명해달라고 할까? 물어보면 안 되는 건가?" 고민하다 보니 아 제발 좀 주석 좀 달아줬으면 할 때가 많아서, 나는 못 알아듣는 감정적인 언어로 소통하는 사람들에게 사전, 혹은 잘 보이는 안경이라도 좀 달라고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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