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angpa May 24. 2018

누군들 가난을 스스로 선택할까요?

2016년 6월 21일 

https://www.facebook.com/fanzun.cho/posts/10208889491608833


부르시니 왔습니다 ㅎㅎ

"당신이 알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은 극히 일부의 양식 있는 가난한 사람이라는 것을 아시는지"라고 하셨죠.

이보세요. 누가 가난한 사람들이 다 선하다고 했습니까.


몇 주 전에 제가 남아공에서 살면서 하도 치안 문제에 시달리다가 보니까, 저 뿐만이 아니라 건장한 남편 역시 뒤에 발소리가 들리면 흠칫 한다고 했습니다. 아직도 그렇습니다. 저희 집에서 일하시던 많은 흑인 아주머니들 중에서 좋은 분들도 계셨지만 물건 훔치고 강도 들인 분들도 몇 있었어요. 이해는 합니다. 그 사람들은 한 달 내내 일해서 15만 원 정도 받는데, 한국 사람들 가게에서 하루에도 몇십씩 현찰로 버는 걸 보면 눈이 돌아가겠죠.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곳에서 이상으로 가득 차서 '난 아프리카의 난민을 돕겠어' 하고 와서는 험한 꼴 당한 케이스도 자주 보고, 그것까진 아니라도 흑인 마을에 들어가 순진함만 기대했다가 사기당하고 울고 나오는 사람도 몇 봤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왜 다 선합니까. 범죄율도 당연히 가난한 사람들 중에 높지요. 가진 사람은 범죄 저지르면 잃을 게 더 많거든요.

"야, 나도 가난했는데! 나도 힘들었는데! 그래도 이겨냈어!" 이런 식의 접근 아주 싫어합니다. 나보다 더 가난한 사람은 어디나 있고, 나보다 더 힘든 일을 겪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요. 나보다 덜 가난하다고 해서, 내 기준에서 덜 힘들어 보인다고 해서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들의 고민이, 아픔이, 별거 아닌 건 아니죠. 그렇게 보면 중동 피난민 수용소에 사는 사람 아니면 입 다물고 살아야죠.

가난할 수밖에, 가난해야만 하는 사람들도 많다고요. 가난한 이들 중에는 근성도, 양심도 없는 이들이 제 생각보다 많다고요 ㅎㅎㅎㅎㅎㅎㅎ


사람을 대할 때 저는 단 하나 생각합니다. People do well, if they can. 할 수 있으면 다 잘 합니다. 잘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어요. 다 나름대로, 자기 생각으로는 최선을 선택해서 삽니다. 여유가 없을수록, 돈이 궁할수록, 최선의 방법은 점점 빗나갑니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하고 싶어서 가난하다고 생각합니까? 그 사람도 벗어날 방법 있었으면 벌써 했죠. 어쩌면 사업해서 떼돈 번다고 설치다가 망했을지 모르고, 카지노에서 날렸을 수도 있습니다. 아, 카지노에서 날린 건 자기 잘못인가요?


전 유전자의 축복으로 도박에 전혀 끌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 번도 도박 끊을 노력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도박에 본능적으로 끌립니다. 술에 끌리고요. 마약 하는 환경에서 자란 이들은 마약을 쉽게 합니다. 저는 장애가 없고, 여자지만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아프리카 난민촌에서 태어나지 않았고, 도박이나 술, 마약에 끌리는 중독 성격이 아니고, 공부 머리가 있고, 성인이 될 때까지 키워주신 부모님이 계셨고, 고졸 유부녀라고 차별하지 않는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일상생활에 지장 갈 만큼 너무 예쁜 외모가 아니고, 그렇다고 너무 못나서 콤플렉스 생길 정도도 아니었네요. 제가 노력하지 않고 받은 것이 벌써 이만큼입니다.

저 역시 잘 살고 싶었고, 저 나름대로 노력해서 뭐 그럭저럭 잘 먹고 삽니다.

제가 한국에서 스물다섯 고졸 유부녀였다면. 사우디에서 태어났다면. 레즈비언이었다면. 머리가 나빴다면. 어렸을 때부터 소녀 가장으로 학교 다니기도 힘들었다면. 공격적인 성격이라서 싸움질을 하고 다녔다면. 한국 친구만 사귀어서 영어가 절대로 안 늘었다면. 아주 흉하게 생겨서 어디 가나 미움 받는 얼굴이었다면. 순문학으로만 먹고 살겠다 다짐했다면. 그랬다면 가난에 찌들렸을 수 있죠. 그리고 다급해서 다단계에 빠졌을 수도 있습니다. 이거 하면 정말 한탕 크게 번다 싶어서 사기스러운 사업을 했을지도 몰라요. 내가 주어진 패 내에서 최대한 돈을 벌어보려고 했을 거거든요. 우리 모두가 그렇듯이.


당신이 생각하는 아주 바닥 근성의 가난한 사람을 생각해 보세요. 그들이 삼성의 후계자로 태어났다고 생각해보세요. 과연 똑같은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요?

가난한 사람이 사치한다고요? 우리 다 사치하고 싶은 마음 있어요. 가난한 사람은 간디라도 돼야 하나요? 

가난한 사람이 자기 제어 못 한다고요? 저도 뭐 식탐 조절 못 해서 살 몇 킬로 못 빼고 있어요. 당신은 극기 그렇게 잘 합니까? 마음먹은 거 다 이루세요?

가난한 사람이 못됐다고요? 환경 안 좋고 스트레스 받고 돈 없고 미래 안 보이면 성격 다 조금씩은 나빠져요. 상황이 극에 치닫는데 누가 부처놀이하고 있습니까. 더 악쓰게 되고 더 뺏고 싶어지고 더 다른 사람들 밉고 그렇죠.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서 그래요. 당신처럼.


어떤 이는 가난을 벗어납니다. 똑똑하면서 기회가 주어진 사람들은 그 가난을 떨쳐내고, 거기에서 못 나온 이들을 경멸합니다. 하지만 기억하세요. 집구석은 엉망이면서 정부 보조로는 술 마시고 마약 하고 애들 패고 주위 사람들에게 개진상 부리는 사람들 있죠. 너 재벌집 자식 할래 아니면 그냥 이대로 살래 물어보면 뭘 택할까요. 가난하고 싶은 사람은 없어요. 그냥 포기했을 뿐이에요.

그들이 무조건 피해자다, 우리가 잘 해줘야 된다 그런 말이 아닙니다. 가난을 벗어난다는 것이, 당신 말처럼 '근성이 생기고 사치를 안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 외에도 아주 여러 가지 요소가, 그들 자신도 원하지 않는 가난을 벗어나는 것을 힘들게 만든다는 말입니다.

지금 결과만 보고 말하지 마세요. 부잣집 도련님이었다가 정말 흥청망청 사치로 망한 것 아닌 이상은, 가난은 그 사람이 태어나기 한참 전부터 어느 정도 정해져 있습니다. 환경으로든, 유전자로든, 운으로든.

사람 일은 관뚜껑 닫을 때까지 시시각각 변하죠. 내일 일 어찌 될지 모르는데 너무 입찬소리 하지 맙시다.


매거진의 이전글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다 의미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