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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Jun 02. 2018

잠수하는 남자는 왜 그런가요에 대한 답

2016년 6월 23일

전 남자가 아니고, 잠수하는 스탈도 아니라서 잘 모릅니다. 그냥 제가 본 대로 대답해드리겠습니다. 쓰기 쉽게 하기 위해 '남자는...' '여자는...' 이라고 하지만 전부 그렇다는 말은 아닌 거 아시죠. 당장 저만 해도 사실 해당 안 되는 부분 많습니다!     



     

'남자는 별생각 없이 말하는데 여자들이 자꾸 꼬투리 잡고 흉본다'... 라는 말 많이 들었다. 이게 말이냐 막걸리냐, 무슨 개소리냐 하고 욕하던 시절도 있었으나, 지금은 이해한다. 보통은 남자들 진짜 별생각 없다.     

왜 남자는 잠수하는가. 왜 남자는 동굴이 필요한가.     


대답은 정말 간단하다. '귀찮아서'. 


무엇이든지 하려면, 그 결과 자체를 내 본능상 너무너무 원하거나, 그 과정을 즐겨야 의지가 생긴다. 그러니까 깨끗한 집을 원하다 보니까 하기 싫은 청소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까 청소가 익숙해진다거나 (결과를 원함), 아니면 내일 숙취로 고생할 걸 알면서도 술 마시면 좋으니까 술을 마시는 것(과정을 즐김). 여자들이 대화를 하고 푸는 것은 두 가지에 다 해당한다. 나에게 가까운 사람과 서로 완전히 이해하고 교감하는 상태를 원하니까, 좀 불편한 대화라도 꼭 해서 오해가 없도록 풀 수가 있고(결과 자체를 원함), 그리고 사실 대화하고 교감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기도 한다.


남자의 경우는 이런 대화/교감/공감에 있어서 과정을 여자보다 덜 즐길 수 있고, 원하는 결과 자체도 좀 다를 수 있다. 가까운 사람과 서로 완전히 이해하고 교감하는 상태보다는, '화나지 않은 편한 관계'를 원한다고 해야 하나. 그니까 아무 일 없이 서로에게 만족하고 문제없는 관계가 이상적이다. 반대로, 여자가 나에게 화가 나 있고 나에게 책임을 묻고 막 따지고 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 상태이다. 그러므로 어떻게든지 다시 좋은 관계로 돌려놓을 수 있다면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것이 해결방법이다(이것이 바로 '왜 화났는지는 모르지만 우선 사과하는 버릇'의 이유다). 완전한 이해와 교감이 목표가 아니기 때문에, 왜 화났는지는 모르더라도 어쨌든 사과하든 선물사든 방법을 찾아서 화 풀어주면 이상적인 상태(화 안 났고 나를 좋아해주는 상태)로 돌아가면 된다.     

물론 이런 방법은 여자에게 두 배로 짜증 난다. 서로가 완전히 통하는 상태도 이루지 못했고 (근본적인 목표 달성 못 함), 서로 이야기하면서 푸는 과정도 없다. 내가 화나 있는 상태에서 남자가 풀어주기를 원하는 것도, 서로 통하는 상태를 망친 것은 남자인데, 남자가 그 망쳐진 상황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다시 교감/통하는 관계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그리고 그 과정 동안 둘이 같이 이야기하게 되니까 그것도 여자가 선호하는 과정).


여자라고 꼭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일반화해서 - 사귀는 남자가 풀어주기를 원하지도 않는다면 그 남자를 별로 좋아하지 않을 가능성 높은 것도 사실이다. 친구 사이에도 정말 좋아하는 친구라면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고, 오해가 생겼다면 시간 들여서 그 오해를 풀어 좋은 관계를 회복하도록 하는데, 별로 좋아하지 않는 친구라면 그냥 좋은 게 좋은 관계만 돼도 상관없고 딱히 시간 들여 오해를 풀지 않는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남자가 무조건 사과하면 열 받는다. 나와 다시 서로 이해하고 교감하는 관계로 돌아가는 데엔 관심이 없고, 그냥 말로 사과해 때우는 것은, 내가 나에게 관심 없는 사람에게 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자가 그렇게 행동하면 결과적으로 나와의 관계 자체를 하찮게 생각한다는 증거로 본다. 남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 관계가 중요하니까 얼른 정상으로 회복하기 위해서 내가 잘못한 것 같지 않아도 사과한 거지, 안 중요한 관계라면 미쳤다고 내가 잘못했음 미안함 하겠음(많은 남자들에게 "사실은 어쨌든 내가 잘못했다"는 것은 상당히 큰 자존심 굽히기를 필요로 한다)?



자. 그럼. 잠수하는 남자.     

지난 경험으로, 여자한테 말 한 번 잘못했다가는 여자가 토라지고 삐져서 풀어주려면 몇 시간 며칠 동안 빌어야 한다는 것을 웬만한 남자들은 잘 안다. 그 경험을 거쳐서 여자들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면 몰라도, 우선 

피하고 보자는 남자들이 사실 더 많다. 그 여자가 정말 소중하고 놓치고 싶지 않다면 


1) 무조건 빌기 

2) 뭘 싫어하는지 알아내어서 다음부터 조심하기 


등으로 대하겠으나, 그렇지 않으면 그냥 짜증 날 뿐이다. 그리고 오해 없도록 잘 풀어진 관계를 원하는 본능도 없기 때문에 꺼지라고 하던가, 아님 그냥 피해버린다.     


물론 사람마다 얼마나 참을 수 있는가가 다르다. 조금이라도 싫은 소리 듣기 싫은 남자들이 보통 잠수를 잘 하던데, 이유는 진짜 간단하다. 여자한테 연락해봤자 좋은 소리 못 들을 거고, 풀어주려니까 노력이 필요한데 귀찮고, 그럼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1)게임하면 즐겁다 

2) 텔레비전 봐도 즐겁다 

3) 친구랑 가서 술 한 잔 해도 즐겁다 

4) 그에 비해서 열 받아 있는 여자한테 전화하면 혼날 거니까 안 즐겁다.     


보통 여자의 경우, 가까운 사람과 싸워서 화가 난 상태는,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더러운 방에 있는 것과 비슷하여, 어떻게든 해결 봐야 한다는 충동이 무지 강하다. 그런데 남자가 잠수하면 미치고 팔짝뛰고 환장한다. 그렇지만 사실 화난 여자의 분노 사이클을 보면 처음에는 마구마구 화가 치솟다가, 남자가 아예 연락이 없으면 아니 얘가 진짜 끊어버리려는 건가란 생각도 들고, 내가 잘못한 것도 있나란 생각도 든다. 섭섭함, 분노, 초조, 짜증, 뭐 그 외 무지무지 많은 생각이 교차하는데 이 아래에는 '빨리 틀어진 상대와 연결해서 풀어야 한다'는 충동이 깔려있다. 그런데 연락이 안 된단 말이지!!! 아 미치고 환장.

     

남자 입장에선, 여자가 막 화났을 때 사과하고 푸려고 하면 몇 시간이고 혼나고 빌고 해야 되지만, 차라리 확 잠수하고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다가 여자가 좀 풀렸다 싶으면 사과하고 해결하면 아주 좋다. 몇 시간 동안 혼나는 대신에 즐겁게 게임하고, 여자가 자기 의심 단계로 들어갔을 때 혹은 연락하고 싶은 마음이 훨씬 커진 상태에 말 걸면 짧게 끝날 확률이 높다면 그 쪽이 훨씬 더 좋지 않겠소?     


정리.     


잠수하는 남자는 - 


1) 지금 여자랑 얘기해봤자 피만 볼 거 같음. 말실수해서 완전 망치기보단 잠수하면 여지를 남길 수 있음 

2) 잠수 좀 한 다음에 다시 뜨면 화 풀려 있거나, 얘기하고 싶어서 화는 좀 누그러뜨릴 가능성 큼. 그리고 잠수 중에 적당한 핑곗거리 찾아둘 수도 있음 

3) 여자가 화를 내도 완전 관계를 끊을 거 같진 않음. 그러므로 위기의식은 없음 

4) 이 여자가 나에 대해서 나쁘게 생각한다 해도 지금 당장은 별 신경 안 쓰임 

5) ...이래저래 다 귀찮음 ㅡ.ㅡ     


이 보통 이유입니다.     

중요한 건 잠수한다고 해서 꼭 사랑이 부족한 건 아닙니다. 그러나, 정말 여자를 놓칠까 걱정되는 남자라면,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관계가 깨질 정도로 오래 잠수하지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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