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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Jun 04. 2018

선택이 많을수록 불행해진다

2016년 7월 10일

평생 어떤 부츠를 살지 몰라서 안 사고 안 신다가, 엄마가 싸구려 슈퍼마켓에서 파는 레알 싸구려 부츠를 사 오셨는데 사실 아주 고맙게 잘 신었다. 그리고 기뻤다. 왜냐면 내가 원하는 스타일도 아니었고 아주 이쁘진 않았지만 어쨌든 부츠였고, 난 힘든 선택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래서 쇼핑이 피곤하다. 난 안목도 별로 없고, 패션에 별 관심도 없다. 하지만 이뻐 보이고 싶은 욕심은 가끔 있다. 그리고 적은 비용으로 패셔너블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럴 내공이 나에겐 없다. 내 마음에도 들고 주위에서도 잘 샀다고 인정해주고 가격도 낮으면서 뭐 그런 거 찾으면 좋겠으나 그건 참 힘들다. 그래서 난 쇼핑 전엔 입을 옷이 없어서 좀 불행했다면, 쇼핑하고 나서도 불행하다. 고를 때 뭘 보고 골라야 할지 정확하기 몰라 괴롭고, 제대로 된 걸 골랐는지 몰라서 괴롭고, 입으면서도 안 산 다른 것들이 떠올라 괴롭다.

뭐, 괴롭다는 건 좀 과장법이긴 한데, 삶의 다른 분야에도 적용되니까 과장법이라도 그냥 가자.     


요즘엔 인생사는 법을 정말 다양하게 접할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천재적인 재능을 보여서 천재로 커온 연아 같은 케이스. 나이 들어서 어쩌다가 제 길을 찾아서 성공한 케이스. 그냥저냥 평범하게 사는 사람. 혼자서 세계여행 다니는 여행자, 다른 이들을 헌신적으로 돕는 사역자, 개성으로 성공한 패션 디자이너, 학교 땐 공부 잘하다가 완전 망한 친구, 사업으로 대박친 사람,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 등등.

그 수많은 선택 중에 우리는 하나를 골라서 살아가긴 하는데, 그거이 참 '대강 걸쳐 입고 동네 슈퍼 나간 차림'은 아닌가 고민될 때가 많다. 딱히 최고의 선택이라기보다는 어찌어찌 사정이 생겨 그에 따른 결정을 하다 보니까 지금까지 어영부영 온 것 같은 그런 상황. 그렇다고 확 바꾸자니 뭘 바꿔야 할지 모르겠고, 선택한 다음에도 다른 거 해야 했나 불안하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다 좋다고 인정하는 걸 똑같이 하는 것이 마음이 놓인다. 고시 공부를 한다든지, 의대를 향해 노력한다든지 이런 건, 좋다고 알려진 브랜드에서 인기 품목 하나 잡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물론 개성이 튀어서 자신만의 선택을 하고도 패션피플이 되는 케이스가 있지만 보통 사람들은 그럴 내공이 없으니까 말이지. 


직장 선택이 그렇고, 배우자 선택이 그렇고, 무려 카메라 하나 사기도 그렇다. 너무나도 많은 선택이 있고, 정보가 있다. 페널티가 뭔지 최악의 케이스도 잘 알고 있고, 최고의 케이스도 알고 있다. 그리고 내가 들고 있는 패는 그중 최고의 패일 가능성이 상당히 낮다.     

이럴 땐, 엄마가 사 왔던 가죽 부츠 생각한다. 엄마 나름대로는 이쁘다고 생각해서 사 왔겠지. 나한테는 5만 원이라고 했지만 어쩌면 더 비쌌을지도, 완전 떨이로 만 원짜리였을지도 모른다. 더 알아봤더라면 훨씬 더 이쁘고 좋은 부츠도 살 수 있었을 테지만 나름대로 한겨울 잘 신었다.     

삶도 그렇게 살려고 한다. 물론 더 좋은 선택을 해서, 혹은 좋은 정보로 더 쉽게 할 수 있겠지만 아예 그냥 선택의 폭을 좁혀버리고, 더 넓은 선택의 가능성을 잊어버리는 편이 정신건강에 좋다. 왜냐하면 -     

모든 삶을 다 살 수는 없다.     


공부 잘 해서 고시 합격하고/외국 유명대학 진학하고/힘들게 학위 따고/ 힘들게 유학하고/ 개성 살려서 공모전 붙고 그래서 성공했다는 사람 보면 뭔가 열심히 살아야 할 거 같다.     

잘 나가는 직장 때려치우고 자기가 좋아하는 거 했다는 사람들 얘기 들어보면 돈이나 명예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거 찾아서 해야 할 거 같다.     

한 달 200만 원 월급으로도 3년 재테크해서 집 샀거나 몇 억 벌었다는 사람들 얘기 들으면 재테크가 참 중요한 거 같다. 나도 좀 아끼고 살아야 할 거 같다.     

아주 대단했던 사람들이 은퇴해서 농사 짓는다는 거 보면 나도 좀 여유롭게 살아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 든다.     

여행 블로그 보면 와 난 왜 이렇게 가본 데가 없지, 돈 모아서 여행 좀 다니고 싶은 마음이다.     

평생 동안 한 우물만 파서 성공한 사람들 보면 참 나도 일관성 있어야 할 텐데 싶지만,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팔방미인인 사람들은 또 그 사람 나름대로 부럽다.     


그림 잘 그리는 사람들 보면 나도 어릴 땐 그림 잘 그렸는데... 

컴터 잘하는 사람들 보면 나도 좀 더 공부해야 할 텐데... 

요리 잘하는 사람들 보면 나도 조금 시간 들여서 배우면 될 텐데... 

예쁜 여자들 보면 나도 좀 고쳐야 하지 않을까... 

스타일 좋은 사람들 보면 나도 좀 패션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리저리 흔들리다 보면 결론.     

모든 삶을 다 살 수는 없다. 언젠가는 선택을 해야 하고, 그 선택이 최고/최선일 가능성은 낮다.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무궁무진하게 많으나,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정해져 있고, 둘러보면 둘러볼수록 불행해진다. 내가 가진 것을 의심할수록 불행해진다.     


결론: 

우리 제대로 선택했나 너무 안달하지 말고 행복하게 삽시다. 선택이 많으면 많을수록 오히려 더 불안해지고, 불행해집니다.     

...라고 결정장애자 양파가 위선적으로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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