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angpa Jun 02. 2018

한 남자의 실종

2016년 7월 13일

* 2014년 글

     

대강 아무 이름이나 골라서, 댄이라고 하자.     

처음 댄을 만나는 사람은 곧바로 댄의 자신감, 카리스마, 유머, 리더십을 본다. 참 재밌는 사람이다. 희한한 삶을 산 사람이기도 하다. 뭔 말을 해도 자신감이 넘치는데, 첫 몇 마디만 들어도 박학다식한, 카리스마 넘치는 포스에 이끌린다.


부유한 부모님 밑에서 자란 댄은 스무 살에 회사를 차려서 운 좋게 팔아넘기면서 몇 백만 달러를 쥐었다. 그 후로 어떻게 봐도 성공적으로 살아왔다.     

댄을 처음 만났을 때, 10초 만에 딱 타입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알파 남자. 리더 타입이다. 배짱도 있고 허세도 좀 있다. 말주변이 아주 좋다. 주변 사람들을 후려잡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이런 스타일이 기술력이 아주 뛰어나거나 천재 개발자인 경우는 드물었다. 기술력이 아주 좋은 사람들은, 특히 최고 1% 안에 들어가는 이들은, 내 경험으로는 성격이나 성향이 좀 정해져있는 편이었는데 이 중에서 유려한 언변의 알파 남자는 거의 없었다. 알파들은 보통 매니저나 리더 자리에 빨리 올라가서 기술력 좋은 사람들을 아래에 거느리는 쪽이 대부분이다.     


그런 댄이 지난 몇 주 동안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솔직히 말하면 짤렸다고 하는 게 정확하겠지만 법적으로 어떻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다. 건강의 이유로 떠났다고도 할 수 있겠고 뭐 그 외 일신상의 이유라고도 할 수 있겠지. 그렇지만 아는 사람들은 안다. 짤렸다. 기술직 이들이 집단적으로 반발했거든.     


사실 두 쪽 다 이해간다. 댄의 입장에서 보자. 절대 지고는 못 사는 남자다. 허세도 좀 있다. 누구와 언쟁을 할 때 자기가 질 것 같으면 억지를 써서라도 이기려 한다. 상대가 아랫사람이라면 윽박질러버린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주기도 한다. 상대방이 반대 의견을 내는 것을 자신을 공격한다고 보기 때문에, 반대편을 나눠서 내 편으로 만들어 버리면 자신이 승리할 거라 믿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5라면, 10이라고 떠벌리고, 3밖에 못 해낸다. 시간이 없어도 뭘 못 하겠다는 말을 못 한다. 앞에서는 꼭 잘난 척을 해야 한다. 당연히 할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쳐야 한다.


사실 오래 참았다. 기술직 애들은 댄이 큰소리를 치면 못 하는 거 알면서도 그냥 넘어가 주기도 했고, 싸우는 게 귀찮으니까 져주기도 했다. 이건 댄이 제일 높은 직급이어서 가능했다. 그러나 2년 정도 지나니까 순하고 착한 기술직 애들마저도 슬슬 짜증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댄 때문에 잘못 설계한 것들, 댄 때문에 하게 된 엉뚱한 일등으로 원망이 쌓여갔다. 바깥 팀하고도 트러블이 슬슬 생겼다. 해 준다고 큰소리 쳐놓고 못하고, 언제까지 되느냐고 물어보면 성질내기 등이 반복되었다.


요즘 내 테마가 "이성 전에 욕구"다. 우리 다들 욕구가 앞서고, 그것을 이성으로 합리화한다. 댄을 오랫동안 보아오면서 절절하게 느꼈다. 미팅에서 지가 틀렸더라도, "이기고 싶다"는 욕구가 너무 앞서다 보니 그걸 통제 못 하고 덤벼든다. 나는 그런 욕구가 없어서 그러지 않을 뿐이지, 댄보다 인성이 나아서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댄은 이기고 싶다거나, 리드하고 싶거나, 나서고 싶은 욕구가 그렇게도 크니까 지금까지 왔겠지. 반대로 나는 그게 없으니까 비슷한 나이에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고. 그렇지만 욕구가 통제 안 되면 윤창중 씨 꼴이 납니다. 이기고 싶은 욕구 때문에 얼마나 수습 못할 거짓말을 하는지, 그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합리화 하고 남 탓을 하는지를 보면서, 솔직히 난 증오보다는 연민이 컸다. 그래, 우리 아들도 지가 질 거 같으면 확 뒤집어 버리거나, 이젠 관심 없는 척하거나, 다른 사람 탓을 한다. 이제 네 돌 된 애니까 그게 귀엽지만, 성인이 그러면 짤리겠지.     


이전 직장에서는 머리도 좋고 기술력도 딱히 심하게 떨어지는 편이 아니었으며, 아랫사람들에게 지랄하고 덮어버리는 방식이 통했으니까 그런 식으로 굳어졌을 거다. 이번 직장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점차 알아차리고 약간씩 변경해가긴 했지만, 본성 통제는 그리 쉽지 않았다. 거짓말과 허세를 정확히 꿰뚫어 볼 수 있는 실력의 사람들과 너무 가까이 있다 보니 카리스마나 자신감으로 커버가 안 된 것.     


지금 댄을 몰아낸 이들은 당연한 결과라고 본다. 어제 보니까 사내 네트워크에서 사라졌더라. 다른 이들은 속 시원해 하던데, 난 좀 짠하더라. 사실 우리 다 최선을 다해도 안 되는 거 있지 않나. 나를 바꾸고 싶어도 어느 정도까지고, 내가 제일 원하는 것, 그 욕구는 잘 사라지지 않으니까. 물론 회사가 그 사람만을 위해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고, 전체적으로 심히 나쁜 영향 끼쳤다는 거 알긴 하는데... 그게 참. 태어난 게 그렇게 태어난 걸 어쩌겠소.     

빈자리 보니 허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 자신을 꼭 사랑해야 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