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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May 28. 2018

글쓰기의 메이저, 마이너

2016년 8월 12일

블로그 쓰던 시절에 쓴 글입니다. 역시 시간은 지나고, 그 때엔 메이저 블로거냐 마이너냐 논란이 많았는데 페북으로 옮기니 좋아요 몇 개냐 아니냐로 또 -_-; 


Plus ça change. 



  

뭘 해야 메이저인가, 마이너인가 하는 논란을 몇 달에 한 번씩 본다. 어떻게 하면 메이저가 되는지, 뭐가 메이저인지 등등에 대한 글도 많다. 또 그만큼이나, 블로그에서의 매너가 무엇인지, 소통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도 자주 본다. 댓글을 지우면 안 되고, 트랙백은 뭐 어쩌고 등등.     


고등학교 때 쓴 짧은 소설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모든 사람은 바다에서 태어난다. 바다에서 점점 멀어질수록 자의식은 또렷해지나 바다에 대한 기억은 잊는다. 그러나 매일 밤, 다 자라나 바다를 떠난 이들은 해변으로 걸어 나와 그 날 겪은 기억 몇 개를 바다에 집어 던진다. 끝없이 펼쳐진 해변에는 무언가에 홀린 듯 다가와 바다에 발목까지 잠겨 기억을 털어내는 이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그렇게 공유되는 바다는 모든 이들의 기억으로 넘실거린다. 우리가 태어난 바다이고, 기억의 창고이고, 그리워하지만 자의식이 또렷한 상태에서는 다가갈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보시다시피 심하게 감상적이라 열라 손발이 오그라든다. 미안하다-_; 나도 한때는 감성 만빵 틴에이저였다;;     

포인트는. 어릴 때부터 강박적으로 알고 싶어 한 시스템이 바로 의식, 기억 등등인데, 글쓰기는 말하기보다 표현에 우월하다. 물론 글쓰기 역시 의식을 표현하기엔 후덜덜하게 모자라지만, 그래도 난 대화나 그 외의 말하기 방식보다 글쓰기가 더 편하다. 생각을 정리할 수 있고, 무엇보다 기록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난 그래서 전화보다 이메일을 선호한다. 의식이란 게 파도에 휩쓸리는 모래 같아서, 멀리서 보면 늘 같은 모래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그렇지 않다. 끊임없이 쓸려가고 또 쓸려온다. 일 년 전에 일어난 일은 내 뇌 속에 어느 정도 저장될 수 있으나 다시 돌아보고 또다시 돌아보면서 그 기억은 변질되어간다. 계속 돌리다 보면 늘어나는 테이프처럼, 기억 역시 다시 꺼내고 집어넣을 때마다 변형되고 편집되어진다. 그렇지만 글은 남는다. 그때의 내 의식이 정리하여 기록한 내용은 그대로 남아있다. 그것을 다시 접하는 내 자신은 변했다 할지라도.

     

매일같이 난 글을 쓴다. 메이저니 마이너니 하는 건, 내 신발 사이즈가 240이냐 250이냐 하는 것만큼 별 의미가 없다. 발 사이즈 알아야 구두 쇼핑할 때 편하지만, 그 외에는 의미를 갖지 못한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기록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이다. 아마 글쓰기를 시작하게 된 것도 글 쓰는 것 자체를 좋아한다기보다 기록을 남기는 방식 중에 제일 간단하고 쉽기 때문일 것이다. 장인에 비교한다면 난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 내려는 예술가보다는 매일매일 로그를 만들어야 하는 관리자에 가깝다. 깔끔하고 정확하게 기록이 되면 그걸로 만족이지, 전 세계가 감동할만한 예술을 한다든가 그런 건 없다.     

그런 쪽으로 보면 소통에 관한 나의 태도도 좀 더 설명이 가능하다. 소통은 좋다.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고 이런저런 이야기 듣는 것 좋아한다. 그렇지만 그 소통이 '나의 작품'에 관한 칭찬으로 이어지만 불편하다. 모서리가 너덜너덜해진 로그 기록을 들춰보면서 오, 이런 것도 적어뒀구나! 오 이런 일도 있었어? 하는 건 상관없지만 '아니 이런 훌륭한 로그라니!' 하면 뻘쭘해지잖아. 난 그저 옛날 앨범 꺼내 들어 이것저것 펼쳐보면서 하하 이럴 때도 있었어, 뭐 그런 식으로 놀고 싶은데 메이저 마이너 하면 이런 동문서답이.     


나이가 들면서, 기억력이 희미해지면서, 블로그는 나에게 '내 자신의 백업 창고'가 되어간다. 1월에 쓴 글을 보면서 아, 이랬었지 하는 정도라 좀 심각하다 (...).     


감상적인 아이디어이긴 했지만, 지금도 난 밤이면 바닷가에 산책을 간다고 믿는다. 별 가득한 밤하늘 아래에서 따뜻한 바닷물에 기억 조약돌 몇 개를 던진다. 그리고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난 나는 주머니 사이로 흘러내리려는 기억의 조약돌을 붙잡아 들고 내 방갈로 벽장에 조심스레 뉘여 놓는다. 내 기억의 대부분을 잡아먹은 바다를 통째로 가져올 수는 없으니까.     

나에게 블로그는 별 볼일 없어 보이는, 그러나 개인적으로 소중한 조약돌로 가득한 벽장이다.     



     

그리고 저는 이 글을 쓴지도 또 8년이 지나서, 그때 모아둔 조약돌 하나 꺼내 여기 새 벽장에 옮겨둡니다.     

뭐 변한 듯해도 결국 그게 그거라는 불어 표현이 - plus ça change. 영어로는 - wherever you go, there you are. 어딜 가든지 똑같은 제가 있네요. 고등학교 때의 나. 2009년에 이 글을 쓰던 나. 그리고 또 지금의 나. After all that time, here I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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