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1일
독자 한 분이 남자에 대해 '담담하게 글을 쓰신다'라고 하셨는데, 이건 내 인생경로 때문에 그렇다. 난 우선 그리 예쁜 편은 아니라서 남자들에게 구애 공세에 시달릴 일은 별로 없었고, 아주 일찍 결혼했다. 아까 글에서 남자는 여자를 볼 때 섹스할 수 있을 정도의 외모인가를 본능적으로 판단하고, 같이 잘려면 얼마나 공을 들여야 하는지 견적을 낸다고 했는데, 만약 그 여자 옆에 남자가 있거나 남친이 있거나 남편이 있으면 노력이 훨씬 더 많이 필요하고, 자기 여자를 보호하려는 남자의 노력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에 정말 미친 듯이 끌리지 않는 이상은 알아서 피해간다. 특히나 그 '주인' 남자와 아는 사이라면 아예 후보에서 제외해버리기도 한다(그렇다고 해서 여자로 안 본다는 건 아니다. 이건 본능적으로 결정한다니깐).
난 일찍 결혼했고, 아주 미모가 출중하지도 않았고, 초반 직장이 신랑 회사였고 그 후에 일하는 곳에서도 남편의 동료가 있거나, 한 다리 건너면 아는 환경이었다. 그러므로 직장에서 나에게 작업 걸 남자는 없었고, 밖에 나가도 남편과 거의 행동반경이 일치하고, 말했다시피 거리에서 헌팅당할 만큼 이쁘지도 않았으므로 대시 대상이 될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아주 못생기거나 심히 비만은 아니니 여자로는 보였을 테다. 이래서 나는 곧잘 "연애 상담 전담 아줌마"가 되었다. 나를 "평균 여자"로 보고, 나에게 여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좋아하는 여자를 어떻게 공략해야 하는지(그딴 단어 쓰지 말라 그랬지!!?) 등등을 물어보거나 그 외 연애 고민 상담 내지 관찰을 정말 많이 자주 하다 보니까 솔직히 남자에게 감정이입할 때가 더 많았다.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을 때의 자존감의 위기, 여자가 거절하면 어떡할까 조마조마함, 딴 남자를 선택했을 때의 분노, 왜 나를 선택하지 않았는지 뼈아픈 이유 분석, 여친과 헤어지고 싶지만 톡 까고 남자 입장에서 여자 사귀는 거 정말 어려웠기 때문에 용기 못 내고 자기 합리화하는 고민 등등 종류별로 아주 많이 봤다.
참고로, 남자는 진짜 많이 안 바라더라. 중상 정도의 미모의 여자가(같이 다녀서 안 부끄러울 정도) 나에게 잘 웃어주고, 좋은 말 해주면 그저 감사하고 오케이였다. 여친으로 급수 올랐다면, 여친이 나를 좋은 남자로 생각해주고, 칭찬해주고, (성관계를 즐겁게 자주 하고 -_-)...만 해줘도 평생 충성하고 살 남자 엄청 많았다. 그리고 남자는 자기 나름대로 여자에게 엄청 맞춰주고, 많이 참는다. 여친이 싫어하는 말 안 하고, 입으라는 옷 입고, 친구들과 만나지 말라면 안 만나고, 니네 부모님 싫다 하면 연락도 잘 안 하고(이래서 아들 키워봐야 소용없다고...), 정말 정말 많이 노력한다. 자기를 선택해준 여친에게 어울리는 남자가 되기 위해서. 뭐, 물론 샘플이 거의 백퍼 이공계 남자라 좀 더 단순할 수도. 경험으로 비이공계 계열, 특히 예술 쪽 남자들은 훨씬 더 복잡했습니다, 네.
어쨌든 그래서 난 성적으로 나에게 공격적이거나 위협적인 남자를 직접적으로 겪지 않았다. 나에게 남자들은 여자와 처음 제대로 사귀기 전에는 여자에 대한 몰이해와 분노와 비뚤어진 근자감등이 똘똘 뭉쳐 있다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와 사귀게 되면 곧바로 "너를 위해선 뭐든지 하겠어" 종류의 오글거리는 강아지로 변하는 애들이었다.
여자를 제대로 안 사귀어 본 남자들의 공통점이 있는데 - 어머니를 제외하고는 여자의 무한정한 신뢰와 애정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귀기 전에는 여자들이 까다롭게 보일 수 있으나 여자는 자기 남자에 대한 애정이 남자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다. 남편 욕한다 싶으면 안색 변하는 아줌마들 꽤 있는데, 뭐 나도 그렇다. 여자의 '무조건적인 보호 구간' 안에 들어가면, 그때부터는 남자가 진짜 엔간히 잘못해도 여자는 목숨 걸고 싸고돈다. 내 남친이, 내 남편이 최고다. 겉으로 보면 세 보이는 여자들도 실제로 자기 남자에게는 완전 백퍼 져주고 모시고 사는 여자... 의외로 엄청 많다. 오래 사귀다 보면 여자가 좀 더 좋아하게 되고 남자가 지겨워한다는 그 스테레오타입이 이 때문에 발생한다. 이런 여자의 사랑 방식을 경험하고, 여자의 사랑이 꼭 성욕과 연결되지 않지만 그래도 감정의 깊이는 깊다는 것을 경험하면 남자도 변한다. 나쁘게 변하는 쪽도 있고, 좋게도 변한다. 어쨌든 연애의 모델은 변한다. 여자의 마음을 얻으면, 그리고 그녀의 남자가 되면 연애의 다이내믹이 완전히 달라지는 걸 알게 되니, 이전처럼 여자들이 남자를 재력 같은 단순한 기준으로 재서 선택하지는 않음을 배운다. (끝까지 모르는 남자도 많다 -_-)
여자가 돈에 끌린다고 생각하는 남자는 돈을 과시한다. 여자 중에서 분명 돈 밝히는 여자가 있으니, 그런 남자에게는 그런 여자가 몰린다(철벽녀는 "네 재력 과시에 끌린다는 티 하나도 내지 않겠다!!" 라며 무시한다). 어쨌든, 돈을 과시해서 여자를 모았으니 모인 여자는 당연히 돈을 보고 모인 여자고, 이 여자들은 선물을 바라고 호화로움을 바란다. 그리고 그게 없어지면 떠나간다. 근데 니가 먼저 그런 여자 모집했잖아요;; 그래놓고 김치녀, 된장녀 하면 안 되죠.
여자가 외모, 혹은 뭔가 다른 몇 개에 끌린다고 생각하는 남자는 그것을 과시하고, 그것을 중시하는 여자가 그에게 끌린다. 당연한 거 아닌가.
그래서 연애 모델 변경이 필요하다는 거다. 여자는 돈 많은 남자가 오면 헤벌레 한다고 천박하게 생각하면 당신만 손해다. 지금 당장 여친이 없는 것을 그런 매도로 기분이 잠시 나아질지는 모르지만, 그건 당신의 미래 연애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섹스하고 싶은 여자 말고, 내가 정말 사랑에 빠졌던 여자 생각해 보면 그리 흔하진 않을 거다. 여자도 그 정도의 확률로 남자를 찾고 있다.
여자를 한 인간으로 관심을 가지고 사랑해줄 남자. 그저 섹스 제공용 도구가 아닌, 한 인격으로 봐주며 존중하고 인생 동반자로 사랑해 줄 줄 아는 남자면서 연애 못 하는 남자는 거의 없다. 지나가는 여자 보고 "어떻게 잘 수 있을까"는 그냥 고민하지 말자. 어차피 가능성 없다고 보면 된다. 일부러 잘 보이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고, 물량 공세 해봐야 안 좋은 여자들만 모이니까 열심히 살면서 예의 갖추고 존중하는 것이 최선이다(그러면 같이 잘 여자가 생기나요 묻는 당신, 그 생각 좀 그만 하라니깐). 강간할 거 아니고 성매매할 거 아닌 이상, 당신이 원한다고 어떻게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그걸 받아들이고, ‘섹스를 위한 전략적 공략’ 시도를 멈추면 남자나 여자나 살기 편해진다. 그렇게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