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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Jun 01. 2018

사람에게 실망하기. 예측 모델

2017년 3월 16일

 인간의 뇌는 무척 효율적이지만 그 효율성 때문에 희생하는 디테일이 많다. 시신경은 엄청나게 많은 정보 중에서 내가 보고 싶은 중요한 것만 자세하게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대강 배경처리 내지는 기억에서 '여기 있을 만한 것들'을 갖다 붙인다. 청력 역시 사람 목소리는 골라내서 확대시키고 주변 소리는 확 줄인다. 사람을 보면 1초 내에 이런 저런 사람일 거라 판단을 내리고, 그 판단은 보통 정형화된 패턴, 극과 극일 때가 많다.     


특히나 인간의 뇌가 잘 못하는 것이 확률이다. 이 사람은 30% 보수적이고 20%는 좀 진보적이고 5% 엉뚱하고.. 이런 거 정말 잘 못한다. "진보야 보수야 하나만 정해 하나만!!" 오래 가까이 지낸 사람이라면 여러 가지 면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무척이나 평면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인식을 쉽게 바꾸지 않는다. 세계 월드컵 때에 같이 축구 응원할 때에는 나와 같이 기뻐하는 이 사람이 정치 성향도 비슷할 거 같고 같은 맥주도 좋아할 거 같다는 착각을 한다. 박근혜 씨 탄핵 집회 나간 사람들끼리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무의식중에 '같은 집회 나간 사람 == 나와 비슷한 사람 == 좋은 사람' 으로 판단을 내려버린다. 같은 초등학교 다닌 사람과 같은 집회에 나간 사람. 누구와 더 비슷할까? 확률적으로는 '같은 초등학교 다닌 사람'이 압도적이다. 그렇지만 가까이서 자주 본 사람은 훨씬 더 잘 알고, 나와 어디가 같은지 다른지 다면적인 분석이 가능하지만 집회에서 같이 소리치며 함께 걸었던 사람에 대해서는 정보가 훨씬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나와 함께 촛불을 들었던 사람이 나와 비슷할 거라 생각한다.     


비슷하다 생각하고 호감을 가졌던 사람이 내 예상에 빗나가는 기대를 보였을 때, 이것을 무시하려는 노력이 흔한 반응이다. 아 실수했겠지. 음, 내가 잘못 봤겠지. 뭐 그거 하나만 그럴 거야. 그게 아니면 엄청 크게 실망한다. 헉!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가 있지? <-- 이때 느끼는 감정은 주로 배신감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는데, 이럴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이런.     

나도 이런 반응 자주 접한다. (그런 말씀 하시다니/그런 의견이 있으시다니/그런 편견이 있으시다니) 양파님께 실망이에요. 물론 그 반대도 있다. (그런 면 있으신 줄 몰랐는데 / 그런 생각 하실 줄 몰랐는데) 놀랐어요/좋아요/반가워요. 두 개 다 한 동전의 양면이다. 그저 글로만 나를 접하는 사람은 (내 글 소통 방식이 그지같아서도 그렇겠지만 -_-) 어떤 이미지를 가지게 되고, 그 이미지는 그 사람의 지난 경험과 편견에서 나온 어떤 산물이다. 실제 나와는 많이 다르겠지. 이건 내가 뭐 어찌 통제할 수 없으니 그렇다 치고.     


얼마 전에 예측 모델에 대한 글을 썼는데 짧게 써서 그런지 '예측 모델이 그럼 소용없단 말이냣!!' 란 반응이 꽤 있어서.     

양파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예측 모델을 만들면 어떨까. 내 글을 가지고 이래저래 판단할 수 있겠다. 하지만 '여자'라는 것 가지고 내릴 수 있는 예측은 신체적인 거 말고는 별로 없다. 키가 남자 평균치보다 작을 확률이 높고, 근력은 확실히 약할 거고, 아직 폐경 나이는 아니니 생리를 하겠지. 하지만 양파는 일을 잘 하나? 양파는 밤에 잠을 깊게 자나? 양파는 차멀미를 하나? 양파는 까칠한가? 

    

'성별'이 예측 모델에서 유용할 때가 있고 아닐 때가 있는데, 보통 사람들은 먼저 본능적으로 느끼고 그 느낌을 정당화하다 보니까,'성별'을 바탕으로 한 자동 예측 모델로 한 사람을 이미 판단한 후에 그것을 정당화한다. 여자니까 핑크색 좋아하겠지, 혹은 핑크색 좋아하게 생겼음. 남자니까 대범하겠지. 여자니까 외모에 신경을 쓰겠지. 남자니까 자존심 되게 따지겠지, 아니면 성깔 꽤 있어 보이는 얼굴이다. 여자니까 이공계 아니겠지 등등. 성별이 유효한 예측모델이 아닌 경우에도 평생 성별이 중요하다고 믿고 성별에 따른 편견식 예측 모델을 돌려온 사람들은 그게 상관없는 상황에서도 돌린다.     


말했듯이 모든 사람은 타인을 볼 때(인종/옷차림/생김새 등등을 기반으로 한) 프로파일링을 자동적으로 한다. 이런 사람일 것 같다 저런 사람일 것 같다는 건 평생 쌓아온 경험과 편견과 문화의 영향이라서 바꾸기 쉽지 않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그것을 바탕으로 프로파일링을 하고 그에 따라 행동해서 사회의 편견에 일조하면서도, 그것을 지적받았을 때 야 네가 프로 불편러야 나보고 왜 그래... 하는 것. 아시아계가 잘 나서지 않으므로 리더 자리에 잘 보이지 않는다는 편견은 뭐 네 경험에 그래서 그 생각 들었다고 너 인종차별주의자 쓰레기!! 라고는 하지 않겠으나, 그런 이유로 후보에서 제외하거나 관리직으로 진급시켜줄 생각도 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아시아계 사람이 말하려는데 무의식적으로라도 덜 존중하게 된다면 그게 문제. 피해가 가니까 문제다.     


마지막으로 퀴즈 답. 양파는 키 163이고 아직 갱년기는 아니고 일은 뭐 그냥저냥 하고 숙면파이고 차멀미를 심하게 합니다. 글만 보고 센 언니 같다 하시는 분 많은데 ㅠ.ㅠ 그리 까칠한 사람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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