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6일
댓글을 하나 받았습니다 -
"이글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글들에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건데요... 특정 상황 설명에 최적 비유 개발 능력이 탁월하신데 무슨 훈련을 따로 하셨어요? 평소 어떤 비유를 보면 아 이건 요런 거 설명할 때 써먹어야지 하고 비유 라이브러리를 만들어 놨다가 상황별 메타데이터 검색해서 사용하시나요? 아님 걍 타고 나신 겁니까? 어떤 추상적 상황을 설명하려하면 걍 가장 적합한 일상 속에서의 비유 상황이 저절로 좔좔 샘 솟나요??"
사실 이전에도 "글쓰기를 어떻게 하시나요?" 혹은 "글 소재를 어디서 찾으시나요?" 등등에 대한 질문도 꽤 많이 받았는데요, 이런 질문 볼 때마다 느낍니다.
엉뚱한 결론이긴 한데 왜 그러냐면요.
저에게 "싫은 직장 어떻게 다니나요?" 물어보시면 2박 3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집중력은 어떻게 기르나요?" 이런 것도, 저는 물론 집중력이 없지만 -_- 다섯 시간 특별 강의도 할 수 있어요. 제가 부족해서 노력한 부분이거든요. 그렇다고 직장에서 슈퍼스타도 아니고 집중력 월드 마스터는 절대 아닙니다. 원래 자기가 모자란 부분은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하고, 노력하려면 연구도 해야 하고, 연구하고 책 읽고 공부하고 시도하고 그래도 실패해서 자학하고 염세하고 뭐 안 할 수는 없으니까 또 해보고 하면서 연륜이 쌓이죠.
전 솔직히 제가 비유...를 한다는 것도 잘 모르고 그냥 씁니다. 설명충이에요. 뭔가 설명하고 싶은 욕구가 매일매일 넘쳐납니다. 딱히 비유법을 늘리겠다 생각한 적도 없고, 비유를 하면 안 좋다는 얘기 많이 들어서 줄이려고 하는데 그게 제가 생각하는 방식이라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써요. 그렇기 때문에 저 같은 사람한테 "비유를 어떻게 쓰시나요" 물어보면 저는 할 말이 없습니다. 하지만 "지저분한 사람인데요, 어떻게 치우고 살 수 있나요"에 대해서는 아주 할 말 많습니다. 제가 지저분한 인간이거든요. 엄청 깔끔한 사람한테 물어보시면 "아 그냥 매일매일 조금씩 치우면 되요" 할 걸요. 도움 1도 안 되죠.
물론 저도 좀 자뻑스러운 스토리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시스템은 다 내재된 논리가 있고, 그 논리의 공통성을 파악하면, 그리고 그중에서 제일 친근하고 단순한 모델을 잡아서 베이스를 깔고 그에 가지를 더하면 생경한 시스템도 훨씬 더 이해하기 쉬워지지요... 라고 할 수 있으나 개뿔. 이거 제가 한 말 아니에요. 이번 해에 읽은 책에서 본 거에요. 전 글 쓴지 아주 오래됐어요. 이런 책 안 읽고도 늘 비슷한 방식으로 썼고요. 그래도 그걸 뭔가 내 지성으로 이해해서 내 끈기로 발달시킨 것처럼 포장할 수 있겠죠. 글쓰기 강좌 같은 거 나가려면요.
한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 보세요. 펠프스가 과연 수영 잘 가르칠까요. 올인 할 수 있는 성격과 경쟁심은 타고났고, 신체 조건도 타고 났고, 거기에다가 엘리트 트레이닝까지 받았죠. 이 사람에게 수영 비법 물어보는 것보다는, 나와 비슷한 성격과 조건에서, 적성은 안 맞지만 노력해서 어느 정도의 성공을 이룬 사람이 훨씬 더 조언 잘 하겠지요. 바로 그래서 꿈팔이들은 "나도 너랑 비슷했어!!"라고 뻥칩니다. 아니 은행 잔고 비슷했다고 너랑 나랑 비슷하다고 하면 안 되지 이 사람아. 나도 김연아랑 키랑 인종은 똑같은데;;; 보통 이런 사람들은 딴 생각 할 겨를도 별로 없이 (성격으로나 환경 상으로나) 한 군데 열심히 매진하다 보니 거기에 닿았겠죠. 저처럼 산만하고 잡다하게 관심 많고 포커스 없는 애들하고 비교가 안 되죠.
그런데도 이런 사람들에게, 오히려 고민 별로 안 했을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합니다. 저도 그래요. 그리고 자신을 미워하죠. 왜 난 집중력이 없을까. 왜 나는 진득하게 앉아서 공부를 못 할까. 왜 난 쓸데없는 데에 관심이 많을까. 왜 난 맨날 글이나 쓰고 있을까.
Wherever you go, there you are라는 명언이 있습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새고, 어딜 가나 뭘 하나 내 의식은 어쨌든 내 육체에 묶여 있고, 이거 가지고 살아야 하죠. 전 산만한 덕분에 연상이 아주 쉽습니다. 기억력은 떨어지는 사람들이 창의력은 좀 더 뛰어나다고 하네요. 하나에 집중 못 하는 그 특성이 곧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연상하는 뇌 구조라는 말이고, 그런 구조라서 복잡함을 진득하게 아주 깊이는 설명 못 하지만 그와 비슷한 시스템에다가 쉽게 비교하는 거겠죠. 그래서 긴 논문이나 학술적인 글은 안 쓰고 이렇게 짧은 글만 씁니다. 산만한 시스템이 저이고, 그 산만한 시스템에서 나오는 결과가 간단한 비유법을 쓰는 제 글입니다. 타고 났다..고 하면 뭔가 좀 금수저스럽고, 나름대로 주어진 산만함으로 살아남으려다 보니까 어떤 식으로든 특화됐다는 게 정확하겠네요.
음. 그래도 너무 내용 없는 것 같아 더하자면. 전 글 쓸 때 다음 몇 가지만 생각합니다.
양파 너 어차피 한국에선 초졸 학력이니까 니 국어 실력 내에서 써라. 괜히 어렵게 쓰려고 하지 말고.
주어랑 동사 일치하나 확인해라. 중간에 주어 바뀌면 누가 뭘 했는지 헷갈리잖아.
최대한 짧게, 하지만 네 페이스대로.
내용전달만 분명히.
너 같으면 읽겠냐?
글 쓰는데 20 분 이상 걸리면 놔두고 업무 복귀. 나중에 다시 쓰자.
이 정도입니다. 도움 안 되죠? 죄송합니다 ㅠ.ㅠ
앗. 그리고 댓글 다신 분께 더하자면. 사업하시는 거 같은데 저도 똑같은 질문 할 수 있어요. 어떻게 그런 용기가 나시나요? 어떻게 관리하시나요? 어디서 회사 경영 경험을 얻으셨나요? 등등. :D 뭐 비슷하다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