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4일
시애틀에 와서 친구를 만났다. 여자인데 연봉 20만 넘겼다. 같은 업계 남자는 좋아하지 않으므로 남자 만날 때 돈 안 본다. 사귀는 남자가 자기 버는 것의 1/3만 벌었으면 하는데, 유일한 이유는 "내가 돈 쓸 때 불편하지 않도록" 이다.
얘가 남자와 같은 조건에서 일하고 차별받지 않고 자기보다 돈 못 버는 남자 사귀면서 전혀 걱정하지 않는 것은 이전에 미리 싸워준 페미니즘 전사들 덕분이다.
다른 여자를 안다. 연봉 40만에 가깝다. 남편은 집에서 아이를 본다. 어차피 벌어도 아내의 1/10밖에 못 번다.
이 여자가 남자와 같은 조건에서 일하고 능력만 보고 보상받고 갓난아이를 낳고도 직장 계속 다닐 수 있으며 남편이 집에서 애를 봐도 주위에서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것 역시, 이전에 미리 싸워준 페미니즘 전사들 덕분이다.
난 영국에 올 때 내가 비자를 내고 남편은 피부양자로 왔다. 나는 학사를 끝냈고 남편은 안 끝내서 그랬다. 더 어린 내가 학사가 있고 공부를 끝냈고 돈을 벌었고 그러므로 비자 주 신청자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이것 역시 페미니즘 덕이다.
영국에 와서 서른의 나이로 면접을 다녔다. 그 누구도 나에게 결혼했냐, 애 낳을 거냐, 애 낳으면 직장 어떻게 다닐 거냐, 친정어머니는 애 봐줄 수 있느냐 묻지 않았다. 난 직장에 들어가서 1년 있다가 임신했고, 아이를 가졌다. 난 짤리지 않았고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았다. 덕분에 경력을 계속 쌓을 수 있었고 아이 가진 엄마로서 EA, 그리고 MS에 들어올 수 있었다. 이것 역시 페미니즘 덕이다.
EA, MS 면접을 볼 때 아무도 나에게 애가 있는지, 애를 누가 봐주는지, 다른 아이 낳을 생각은 있는지, 왜 남편이 있는데 일하는지, 남편이 잘 버는데 너까지 잘 받아야 하는지 묻지 않았다. 난 정당하게 내 경력에 맞는 연봉을 받았다. 엄마라고 해서 덜 받지 않았다. 실제 남자 동료들도 아이를 픽업하기 위해서 일찍 퇴근하기도 했고 아이가 아프면 직장 바쁜 아내 대신 자기가 집에 가기도 했다. 그래도 "그 정신 나간 놈 일을 하겠다는 거야 안 하겠다는 거야"라는 지적 없었다. 이런 남자들의 일하는 아내들뿐만이 아니라 이 남자들도 페미니즘의 덕을 봤다.
MS에 온 지 4년이 되었다. 그동안에 나는 둘째를 낳았고 어린아이 둘 키우느라 정신없이 살았다. 그 4년 동안 애가 아파서 재택근무한 적도 많았고, 내가 잠 못 자서 피곤한 적도 많았다. 그 긴 시간 동안 그 누구도 나에게 엄마의 자질을 의심하는 질문을 하지 않았고, 엄마니까 직장일 못할 거라는 식의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독해서 버틴 게 아니고
내가 잘나서 회사가 알아서 대우해 준 게 아니고
내가 운 좋게 좋은 상사를 만나서 그런 게 아니고
그냥 사회 분위기가 그렇게 바뀌어 있어서 나름 쉽게 할 수 있었다. 내 이전에 남녀평등 고용 평등 노동자 권리를 위해서, 목숨까지 바쳐서 싸워줬던 사람들 덕분이다.
요즘 페미니즘이 이렇다 저렇다 페미 나치가 어떻다 욕하는 사람들 있는 거 안다. 어떤 이상적인 미래를 꿈꾸며 모인 사람들이 뭐 다 옳을 수 없고, 그냥 있어 보이니까 참가하는 사람, 나한테 유리하니까 써먹는 사람도 있겠으나, 여성 참정권부터 시작해서 50~60년대부터 여성이 일 할 수 있는 권리, 같은 보수를 받을 수 있는 권리, 출산 휴가, 가정 있는 여성 차별 방지 등을 위해 싸워온 사람들이 페미니스트 맞거든.
그래서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내가 가진 것, 누린 것의 대부분은 페미니즘 덕분이다. 늘 감사하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