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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Dec 31. 2017

닭고기 비빔밥이라는 충격

2016년 10월 7일

 어저께 "제이미 올리버의 빠에야 스캔들"을 봤다. 영국에서 꽤 유명한 요리사인데 스페인 국민 음식 빠에야를 자기 식으로 해석한 레시피가 논란을 일으킨 듯. 얘 버전에는 닭고기와 초리조 (Chorizo) 가 들어간다. 초리조는 스페인산의 약간 매콤한 소시지인데 요새 유행이라 아무 데나 다 들어가는 만능 재료다. 매운 것 잘 못 먹는 사람들도 그거 꼴랑 몇 개 넣고 "오오 스파이시 좋아해" 호들갑 떨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한다.     

어쨌든. 나에게 빠에야는 스페인식 해물 찌개 정도인데, 뭐 거기에 초리조 넣은 게 그렇게 잘못한 건가 했으나 스페인 사람들의 분노는 엄청났다. 거의 뭐 나라 뺏긴 설움 정도였다. "당장 초리조 빼라. 첫 경고다. 테러리스트하고는 네고 안 한다" "당장 지우고 무릎 꿇고 내 발에 키스하면서 대국민 사과해" "피쉬 앤 칩스를 제 버전으로 만들었습니다. 가지랑 오리고기로요." 그 외 패러디 레시피도 넘쳐났다(정치 문제로 갈가리 찢겨있던 스페인을 안티 제이미 세력 하나로 대동단결 시켰다는 의견도 있다 - 링크 아래).

   

그건 그냥 웃으면서 보다가, 한 제보를 보고서는 내 조용하던 마음에 갑작스럽게 지지직 금이 갔다.     

이눔이 김치도 지 버전을 만들어놨네. 아니 뭐 나도 김치 못 만드니까 쉽고 간단하게 만들 수 있다면야 괜찮....     

야!!     


"참기름에 고추와 중국 사천 후추알, 스타 아니스(대회향?)를 5분 정도 살짝 볶는다. 소금물을 끓여서 다듬어 썬 배추를 넣고 7분 정도 끓인다. 그렇게 끓인 배추를 건져서 10분 식힌다. 아까 만든 참기름 양념, 설탕이랑 식초를 넣는다. 마늘이랑 생강을 갈아서 넣고 소금을 두둑하게 넣는다. 끗. 디 엔드. 인조이 유어 김치."     

어이!! 저기요!!!! 야!! 너 방금 뭐라 그랬어?? 이게 김치라고???     


이 사람 요리책 세 권이나 있는데 갑자기 불 지르고 싶은 충동이.     


덧으로. 

한국 음식이 요즘 상당히 유행인데 보통은 불고기/비빔밥/잡채/김밥 정도가 흔하다. 우리 직장 옆 거리 상인들은 비빔밥하고 불고기를 판다. 그런데.     

비빔밥 주문하면 - chicken, pork or beef? 이렇게 묻는다. 

뭐 그래, 나는 관대하니까 돼지고기까지는 이해해. 그 정도는 나도 해 줄 수 있어. 제육 볶음밥 뭐 그런 것도 있으니까. 그런데 치킨??? 닭고기 비빔밥???? 아니, 이 정도 레벨로 삼강오륜에 어긋나는 레시피는 어느 콩가루 집안에서 나온 것임??? 한국 음식이라고는 떡볶이, 돈가스(...)가 최고였던, 초딩만 마치고 이민 나온 나도 그건 알아!! 아니 어디 비빔밥에 닭, 닭고기? 아아악.     

아냐. 안 돼. 무엇이든 왜냐고 묻고 도전할 수 있어야 세상이 바뀐다 뭐 그런 철학이 유행인 거 아는데, 닭고기 비빔밥은 아니야. 저런 걸 김치로 불러서도 안 돼.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그런 의미에서 우리 빠에야에 초리조는 넣지 맙시다. 저렇게 거품 물고 넘어가는 거 보면, 닭고기 비빔밥, 혹은 저희 남편 괴식 정도의 버전인가 봐요.     


덧1: 

남편 괴식 - 한국 음식을 좋아하긴 하는데 가끔가다 기절하게 만든다. 가장 최근은 한국식 카레에 참기름 넣어서 비벼 먹기. 이전에는 토스트에 김치 얹어 먹기. 생김치는 절대 안 먹고 흐물흐물해진 신김치를 제일 좋아함.     


덧2: 

BBC 기사 링크와 김치 레시피 제보 사진 아래에.



*빠에야 레시피 링크

http://www.bbc.co.uk/news/world-europe-37555389


트위터 링크: 

https://twitter.com/jamieoliver/status/783251738509836288


스페인을 통일한 레시피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16/oct/04/jamie-olivers-paella-chorizo-brings-fractured-spain-together-against-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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