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24일
두 가지의 극과 극을 고려해보자. 하나는 한국식으로 가정경제를 책임지는 가장 모델, 두 번째는 룸펜모델이다.
20대 때 보는 서구 커플과 30대의 애엄마로 보는 서구 커플은 참 많이 다르다. 20대엔 남녀 사이에 연봉 차이도 별로 없고, 고용 비율도 비슷하며, 남녀평등이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남자는 여자에게 상당히 잘 하는 편이고, 여자는 자존심 세울 거 다 세우고 남자 골라가면서 만날 수 있다.
30대로 가면서 거의 모든 것이 바뀐다. 결혼 유무보다는 아이 유무로 많이 갈라지는데, 아이를 낳는 순간부터 여자는 엄청난 위험을 떠안게 된다. 출산의 유무가 여성의 재정 상태에 제일 큰 영향을 끼친다는 말이 정말 맞다. 결혼을 했건 안 했건, 아이를 낳은 여자는 직장을 그만두던가, 잠깐이라도 쉬던가, 파트타임으로 옮겨가던가, 아니면 좀 더 시간 조정이 쉬운 직업으로 옮긴다. 이건 사회적 압력일 수도 있고 (변호사나 금융 쪽처럼 노동시간이 많다거나, 아니면 외근이 많은 직종이거나) 아니면 여자의 선택일 수도 있다. 그것도 아니면 높은 육아비용 때문일 수도 있겠다. 맞벌이보다 외벌이 쪽이 아이 정서에 좋은가 아닌가는 차치하고, 아이를 낳음으로써 커리어를 포기하는 것은 여성 개인으로만 볼 때 경제적으로 평생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 전업으로 들어서면서 경력이 끊기고, 재취업의 기회가 줄어들고, 그 외에 재취업을 위한 공부나 교육을 받을 기회도 확 줄어든다. 결정적으로, 남편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경우에 전업주부는 엄청난 타격을 입는다.
세상에는 (한국을 포함해서) 아이 가진 엄마로서 일을 하기 너무 힘든 곳이 많다. 사실 서구 남편이라고 모두 여권신장 옹호가는 아니다. 돈 많이 버는 서구남자들, 여자가 집안일로 자신을 들들 볶기보다는 그냥 집에서 살림하고 애 봤으면 하는 남자 많다. 런던 시내에 집값도 비싸고 학군도 좋지 않다는 이유로 근교에 나가 사는 가족들이 많은데, 보통이 외벌이 가족이고, 이런 경우 남자는 아무리 칼퇴근이라도 통근 시간 때문에 아침 일찍 출근하고 저녁 늦게 들어온다. 그러면 가사 부담은 당연히 힘들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다 보니, 자기 편한 거 찾게 되어 있다. 어차피 탁아 비용이 엄청나게 비싸기도 하고, 돈이 아주 아쉽지 않으면 당장은 부인이 집에서 살림 살아주고 애 키우는 것이 나한테도 편하니까 여자의 커리어 희생은 아주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내가 벌면 되고, 이혼할 것도 아니니까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돈이 아쉽더라도 비싼 육아비용과 맞벌이로 발생하는 가사노동 생각하면 그냥 두는 게 낫다고 보는 남자들 많다.
원래 남의 돈 벌려면 치사한 법이다. 안 치사한 유일한 케이스는 부모자식간이겠다. 한국과 달리 남자가 돈 관리도 맡아서 하는 케이스가 많은데, 아무리 부부관계가 좋더라도 남자가 돈을 벌고 여자가 받는 관계에선 여자가 보기에 치사한 일이 생기기 쉽다. 돈 가지고 치사하게 구는 남자 진짜 정말 많다. 아예 월급 맡기는 한국 남자보다 훨씬 더 많을 거라 생각된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돈 잘 버는 서구 남편 중에 치사한 스타일리스트:
1. 자기가 돈 관리하면서 전업주부인 아내가 필요하다고 하면 주는 케이스. 줄 때마다 뭐라 하진 않더라도, 자잘한 돈까지 하나하나 달라고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치사하다
2. 일한다는 핑계로, 혹은 긴 출퇴근을 핑계로 가사 안 도와주는 케이스.
3. 자기 직장 편한 곳으로 옮겨감으로써 부인을 친정과 친구들에게서 고립시키는 케이스.
4. 아이들을 위한다는 핑계로 직장 그만두게 한 다음 가사노동 다 전가하고, 개인 비서 및 가정부 취급하면서 커리어 경력이 확실하게 끊기면 쉽게 떠날 수 없음을 악용하는 케이스.
5. 위와 같은 방식으로 여자가 쉽게 떠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슬슬 바람피우고 '자기 계발' 혹은 '자아실현' 뭐 어쩌고 하면서 동호회 활동, 밴드 조성 (이거 상당히 흔하다는 -_-), 아니면 출장 등을 핑계로 여자 만나고 다님.
영어권 여자 커뮤니티 가면 위와 같은 케이스 정말 정말 정말 많다. 물론 잘 사는 커플들도 많겠지. 고민 있는 사람들이 커뮤니티 와서 상담하고 하는 걸 테니까. 하지만 내 주위만 봐도, 20대엔 정말 동등하고 바람직한 커플만 보이다가, 30대가 되면 파워 밸런스가 조금씩 바뀌고, 40대 초반이 되면 잘 사는 커플과 깨어진 커플이 반반이다. 50%. 상당히 높은 실패 가능성이라고 본다. 반복하지만, 무엇이 아이를 위해서 최선인지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냥 확률만 본다면, 여자는 애 안 낳는 것이 최고고, 낳더라도 무조건 커리어를 살려두는 것이 좋다.
두번째 케이스. 룸펜 남자.
잘 가는 커뮤니티에는 이런 남자들 별명이 있다. Cocklodger. 여권 신장의 이면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다음과 같은 케이스를 보자. 여자는 남자와 이혼한 다음 아이를 데리고 혼자 살고 있다. 아이를 낳아본 여자분이라면 다 동감하리라 보는데, '아이 때문에 같이 산다'라는 말에는 사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라는 말도 포함되어 있다. 애 낳고 키우는 것이 너무 일이 많다 보니까, 가사를 많이 도와주지 않는 남자라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낫기 때문에 이혼하기가 힘들다.
당장 둘째 데리고 병원 가야 하면, 장 보러 가야 하면, 첫째와 집에 있어 줄 어른이 있는 게 큰 도움이다. 젊었을 때야 자존심 상하고 분하면 무조건 헤어져!! 하겠지만, 애 낳아보면 자존심 살리자고 헤어진 다음 수습의 일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된달까. 그러므로 '진짜 이기적이고 민폐라 차라리 없는 게 일이 더 줄겠다'란 케이스가 아니면 이혼하기 힘들다.
어쨌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최악의 상황에서 여자는 이혼하고 아이를 데리고 살고 있다. 이때 그럭저럭 괜찮은 남자를 만난다. 아이들에게 잘 한다. 그러다 보니 동거하게 된다. 애들 있으면 한 명이 집에라도 있어 주는 것이 크게 도움이 된다. 어차피 사는 집이니까 들어와서 사는 것이 크게 부담이 되지 않고, 남자도 식비와 그 외 생활비를 조금 보조할 수 있겠다. 그러다가 남자가 실직하거나 하면 그나마 그 알량한 생활비 보조도 안 한다. 어쩔 때는 집에 있으면서도 아이 안 보고 게임하거나 친구들과 논다고 나갈 수 있겠다.
30대 중반이 넘고 아이가 딸린 워킹맘이 사실 딴 남자 찾기가 아주 쉬운 것도 아니고, 꼭 남자가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도 아닌 분위기니까(톡 까서 말하면 아이 딸린 여자가 이혼하고 혼자 살 정도면, 원래 일을 중요시해서 혼자서도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경제력이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 오히려 더 이런 남자가 붙기 쉽다) 여자는 넘어간다. 일 년이 이 년이 되고, 남자는 이런저런 핑계로 일을 하지 않는다. 그나마 집에서 전업주부 역할이라도 해주면 좋겠지만 안 그런 경우가 진짜 많다. 꼴에 바람도 피우는 놈도 많더라. 여자한테 돈 받아서 그걸로 딴 여자랑 놀러 다니는 인간말종.
음. 이 정도가 대강 막장 케이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