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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Jun 05. 2018

그녀는 왜 같은 여자를 욕하는가

2016년 11월 21일

오래전에 어디서 읽은 얘기다. 태평양 어딘가의 외딴 섬에 서방의 비행기가 몇 번 날아와서 현대 문명은 처음 접하는 주민들에게 구조품을 주고 갔단다. 그 이후로 그 섬의 주민들은 철로 만든 새가 다시 오기를 기원하며 기원 의식을 행했다고 한다. 이에 비슷한 이야기로 어느 문화에나 흔히 있는 기우제가 있다. 현재로 오면 수능 시험을 치는 아이들을 위해 기도를 하고 불공을 드리는 어머니들이 있다. 그리고 강박증에 시달리는 이들도 있다.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살면서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에, 이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어떤 방식을 채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설명은 보통 내가 어떻게든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하느님이 진노하셔서 비가 안 오는 거고, 내가 불공을 안 드려서 내 아들이 공부를 못하는 것이다. 내가 아침에 문 잠그기를 세 번 안 했기 때문에 내 상사가 기분이 안 좋은 것이다. 이 모든 설명들은 나의 노력으로 극복이 가능하다. 40일 금식기도를 하면 원하는 바가 이루어질 것이다. 108배를 하면 아이가 방황을 멈출 것이다. 동물을 희생하여 굿을 하면 비가 올 것이다 등등.     


여자의 여혐도 그리 다르지 않다. 사람이 살면서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은 정말 많이 겪게 된다. 그렇지만 우리는 의식이 있고 목표를 세울 줄 알고 기억이 있고 희망이 있으므로 (젠장) 어떻게든 이 인생의 랜덤함을 우리의 통제권 안으로 들여오려 한다.     

남편이 바람피운 것은 여자가 잠자리를 잘 안 해줘서이다. 남편에게 사랑을 받으려면 아침밥을 해야 한다. 화장을 하고 자신을 가꾸면 남편이 밖으로 나돌 리가 없다. 여자가 좀 애교가 있고 사근사근해야 남자들이 좋아한다. 시어머니에게 잘 해야 남편이 아내에게 정을 붙인다.    

 

물론 이 논리는 취업전선에서도 이용된다. 특히 한국처럼 나라가 급작스럽게 경제 발전하는 배경으로 약간의 노력만 해도 많이 나아진 삶을 경험한 부모 세대는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을 훨씬 더 과대평가한다. 몇 대를 걸쳐서 계급제가 고착된 영국의 사람들과는 달리, 자신의 노력으로 정말 많이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대학 갈 거고, 좋은 회사 취업 될 거고, 중소기업에 들어가더라도 열심히 일하면 인정받고 성공할 거라 믿는다. 노오오력의 신화는 그저 청년들을 짓밟으려 나온 철학이 아니다. 인생은 내가 어찌할 수 없이 그냥 당하기만 하게 된다는 그런 무력한 시나리오보다, 말은 안 되더라도 내가 뭔가를 하면 어떻게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할 일을 주고 희망을 준다. 그래서 다들 기도하고 절하고 공부하고 우주의 기운을 모은다.     


그런데 이런 믿음 체계를 너무 체화하다 보면 다른 이들에게도 영향이 간다. 나는 이렇게 살면 이렇게 될 거라 믿으니 너도 그렇게 해라이다. 성추행, 성폭행을 맞닥뜨린 이들은 눈을 감고 피해자에게 말한다. 네가 조심했으면 됐잖아. 난 조심했으니 안 당했고, 앞으로도 안 당할 거야. 그렇게 안 당한 자신의 상황을 정당화하고 앞으로도 그런 일이 없을 거라 자신을 위로한다. 취업 안 되는 여자들에게 말한다. 안 되긴 뭐가 안 돼. 너도 노력하면 될 걸? 여자들이 취업 안 되는 게 다 이유가 있어서 그래. 직장에서 못 버티겠어? 사람 관계를 이렇게 이렇게 하면 돼. 이건 다 네가 잘만 하면 견딜 수 있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야.     


명예 남자들, 다른 여자들을 비난하는 여자를 보면 분노할 수 있다. 난 그들을 볼 때 인간의 나약함과, 하늘에 계신 신들께 어떻게든 비 내려달라고 기도했을 우리 선조들이 떠오른다. 살기 거지같은데, 그걸 어떻게 설명할 건데? 이건 우리들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고, 우리가 이렇게 저렇게 했더라면 당연히 대접받을 거고, 그걸 못하는 김치녀 된장녀들이 당하는 거고, 나는 그렇지 않으니까 잘 살 거라는 그런 기복신앙적인 믿음이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어찌할 수 있다는 그런 안타까운 믿음이, 재수 없게 인생에 치인 이들에게는 상처가 되고 2차 가해가 된다.     

살기 힘든 건 아는데, 그래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여자로 살면서, 조심한다고, 애교 부린다고, 더 노력한다고 강간범 피하고 성추행 피하고 직장에서 승승장구하며 좋은 남자 만나 살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거, 인정하고 가자.     


이미 노오오오력 할렐루야 만세 주의는 좀 지난 거 확실하던데 왜 얘네들은 트렌드를 못 따라잡아 트렌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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