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4일
아이 이야기 하나 더. 더러움 경고. 다시 경고. 더러운 얘기 나옵니다.
나 사실 방관충이었다. 아니, 지금도 좀 그렇다. 나까지 꼭 나설 필요 없다는 게 내 삶의 모토였고, 어디 가서도 내가 앞장서서 뭘 하거나, 내가 책임지고 뭘 맡겠다 이런 말 잘 안 한다. 리더십은 약에 쓰려고 해도 없다. 그래서 늘 역사책에서 나오는 혁명가들이 신기했다. 저들은 무슨 그런 강한 신념이 있길래 저렇게 에너지를 쓰면서 열을 올릴 수 있는지 궁금했다. 난 평생 그런 거 못 찾을 줄 알았다.
첫째 판다 군을 데리고 한국에 갔을 때 얘기다. 긴 비행 끝에 겨우 내려서 공항버스를 탔다. 판다 군은 나를 닮아서 차멀미가 심하다. 삼성동에서 내리기 약 5분 전에 판다 군은 폭풍 구토를 했고, 다행히 (...) 토 시작할 때 내가 내 쪽으로 잡아끌어서, 거의 내 옷에다 토했다. 그리고 2분 후 나는 2월의 칼바람 부는 서울 강남 길바닥에 캐리어 가지고 판다 군과 섰다. 판다 군의 토사물이 아직 상의에서 줄줄 떨어지는 채로.
그 때 든 생각. 와. 나 지금 진짜 완전 독박이구나. 나 말고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 없구나.
첫 아이 낳고 병원 침대에 누워서 기저귀를 만지작거릴 때였다. 애기가 찡찡거렸다. 난 그때까지 기저귀 갈아 본 적이 없었다. 뭐 닥치면 하겠지 싶어서, 육아 책은 잔뜩 읽었지만 어떻게 목욕시키는지, 어떻게 기저귀 가는지 그런 현실적인 건 오히려 안 알아봤다. 시간은 있었다. 설마 성인이, 스마트폰도 있고 인터넷 연결도 있는데, 기저귀 하나 못 갈까 생각했고, 실제로 쉽게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그 느낌에 짓눌렸다. 할 사람 나밖에 없어. 네가 책임져야 돼.
그때는 이미 십 년 가까이 직장 생활 해왔고, 내 앞가림 내가 다 해오긴 했다. 그렇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몸 하나다. 내가 방금 낳은 작은 생명체는 내가 절대적인 책임을 져야 했다.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다. 전 세계에서 오늘도 여자들은 아이를 낳고, 자기 아이를 돌본다. 나도 그 흔하디흔한 엄마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어쨌든 이 아이에 관해서는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 "아기 엄마시죠?"라고 간호사가 물었고, 난 그 질문이 그때도, 그리고 지금도 두렵다. 네 엄마 맞아요. 그 단어가 내포하는 무거운 책임감은 내가 다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네 어쨌든 제가 엄마 맞아요.
그리고 삼 년 후 난 강남 삼성동의 대로변에서 가만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내가 엄마다. 내가 안 하면 누가 해. 우선 물휴지로 애를 닦았다. 그리고 가까운 편의점을 찾아서 물휴지를 더 샀다. 냄새 나서 죄송하다고 양해를 구했다. 캐리어에서 새 옷을 꺼내서 아이 옷을 갈아입혔다. 아이도 놀래있었지만 내 옷도 엉망이라 안아주기가 힘들었다. 내 청바지도 대강 닦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악취에 수군거렸다. 죄송합니다만 연발했다.
삼 년이 더 지나서, 난 아직도 잘 나서지 않는다. 내 집은 그리 깔끔하지 않고, 난 훌륭한 엄마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방관충이었던 전의 나에서 나는 아쉬운 소리도 할 줄 아는, 내가 개진상 맘충인 상황에서도 얼굴에 철판 깔고 일 처리하는 깜냥은 좀 생겼다. 아 그냥 몰라몰라 하고 이불 뒤집어쓰면 편하긴 한데, 그래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건 안다.
내가 뭔가 조금 한다고 크게 변하지 않는 거 안다. 뭐 사실 전 세계 몇억 인구 중에 한 명인 내가 뭘 애써서 한다 해도 그리 특별할 수는 없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일, 내가 책임져야 하는 일은 있다. 이게 꼭 아이를 낳아야 생기는 변화는 아니다. 말했다시피 난 성격상 심할 정도로 충돌을 피하고 뒤로 숨는 사람이다. 단지 그게 조금 변했을 뿐이다.
내가 하는 말이, 쓰는 글이 대단한 게 아니라는 건 너무 잘 안다. 그저 한국에 학연 지연 직장 선후배 등등 연고가 전혀 없으니 눈치 볼 사람들이 없어서 좀 더 편하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필요한 일이고, 유용한 일이다. 뭐 엄청 큰 변화는 생기지 않더라도 그래도 내가 할 일은 한다는 만족이 있다. 용기가 없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귀찮아서 안 했을 나인데, 아이들 낳고 아주 조금은 더 철판이 생겼다.
결론:
욕먹을 거 각오하고 책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이들 토사물 처리반으로 단련된 비위로, 저는 이 사회의 물휴지 한 장이 되어 조금이라도 세상의 토사물 처리에 도움이 되도록 ... 으으. 죄송죄송.
육아팁:
세 돌이 되면서 구토는 확 줄어듭니다. 이유식 전에 우유 토하는 건 그리 역하지 않습니다. 그냥 토하는 거 말고 엔진 달고 날아가는 식으로 토하는 걸 projectile vomiting이라고 합니다. 혹시 지나가다 애가 토해서 어쩔 줄 모르는 애 엄마 있으면 도와줍시다. 딱히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주위 사람 눈총 쉐어만 해줘도 감사합니다. 세 살 전 아이를 데리고 나갈 때는 산소 다음으로 중요한 게 물휴지입니다.
판다, 만두 너네 진짜 커서 엄마한테 잘 해라.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