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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Dec 31. 2017

런던의 고급 인생 싸구려 인생

2016년 12월 4일

원래 남이 돈 쓰는 건 돈 지랄이고 내가 돈 쓰는 건 뭘 좀 알아서다.    

 

남이 명품가방 사는 건 골빈 자들의 사치고, 내가 수백만 원짜리 이어폰 사는 건 음질의 차이를 너무나도 잘 느낄 수 있는 내 수준 때문이다.     

참고로 난 가방이나 이어폰 둘 다 모른다만, 나도 다른 사람들이 보면 돈지랄하는 거 많다. 화장품이나 옷, 가방 등엔 돈 하나도 안 써도 피부과에 (--말할 수 없는 비용을--) 처박았다. 비싼 차는 안 사도 애기 봐주는 서비스엔 (어린이집, 오페어, 방과 후 케어 등등으로) 육 년째 매달 삼사백 갖다 붓고 있다. 탁아 비용 6년 갖다 부운 거 다 모으면 버킨백 깔별로 몇 세트 샀겠다.     


신랑과 나는, 최소한 생활 습관만은 뼛속까지 엔지니어. 확실히 직접 이득 되는 거 아니면 돈 잘 안 쓴다. 이미지 따위로는 내 구좌에 입금 안 되기 때문에 상관 안 한다. 식당 분위기 좋다고 돈 더 내지 않고, 유명하다고 더 내지 않는다. 맛집 이런 데 가봐도, 돈 낸 만큼 맛없으면 평가가 혹독하다. 뭐뭐로 유명하다, 전통의 맛집이다 뭐 어쩌고 해도, 하여튼 내 입맛에 안 맞고 비싸면 가차 없다(그렇다고 고급 입맛은 아닙니다요;; 난 한국 편의점 음식 성애자임). 내가 이기적이라고 할 땐, 이런 이유가 크다. 이게 명품이건 유명하건 딴 사람들은 다 좋아하든 간에, 내가 싫은데 뭐.     




영국 슈퍼마켓에 대해서 조금.     


런던에서 와서 보니까, 어디에서 쇼핑하는가도 되게 신경 쓰더라. 테스코 안 가려고 하고, 최소한 센즈버리에서 웬만하면 다 사려고 한다. 테스코 비닐봉지 보면 무시하더라. 그런데 무려 Asda 이런 데서 쇼핑한다 하면 하층민 취급.     

내가 비싼 동네에 안 살아서 그런가, 주위에 Waitrose가 별로 없었던 이유도 있고, 잘 안 드나드니까 거기서만 사야 하는 음식도 없어서 더욱 더 안 찾는 것도 있을 거다. 어쨌든 난 우리집에서 가까운 Asda에서 큰 쇼핑 하고, 그보다도 더 가까운 큰 센즈버리에서 자잘한 거 필요한 거 산다(가까운 테스코가 없어서 그렇다. 전에 큰 테스코 근처 살 때는 테스코만 애용했다). 과일이나 야채는 확실히 Asda는 별로고, 테스코는 지난 몇 년 동안 수준이 내려간 건지, 내가 이사 다닌 동네 테스코가 별로 안 좋은 건지 하여튼 그렇다. 하지만, 내가 아스다에서 쇼핑한다고 쪽팔리고 이런 건 없다. 어차피 내 지갑에서 돈 나가는 건데, 생필품 좀 더 싸게 사면 좋지 뭘. 

    

그래서 난 원래 옷 쇼핑 안 하고, 특히 영국에선 안 하지만 한다면 자선가게에서 채활용품, 혹은 프라이마크에서 옷 사고 (싸구려 체인!), 아스다랑 아이스랜드에서 곧잘 쇼핑하고, 비싸다고 유명 식당도 잘 안 가고, 명품가방 하나 없고, 비싸고 근사한 전자기기 하나 없다. 아아. 싸구려인생.     

살아가면서, 다들 자신의 콤플렉스에 따라 소비 패턴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영국에서 계속 살아온 사람이라면 슈퍼마켓에 대한 편견에도 좀 더 예민할 수 있겠다. 유기농 음식만 먹고, 여러 자선단체를 후원하며,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중산층 삶에 싱크로 되어 유기농 아닌 음식을 먹어야 하면 삶의 질 저하를 느낄 수도 있겠다. 이걸 한심하다고 말하기에 난 런던에 온 지 이제 8년 된 아웃사이더이고, 이보다 훨씬 더 떨어지는 아프리카 품질에 익숙해진 사람이라, 테스코 정도면 감지덕지다. 좋은 식당에서 좋은 서비스라 해봐야, 솔직히 남아공에서 탑 0.1%로 살 때 웬만한 식당 순례 다 해보고, 엄청난 서비스 다 받아봐서, 런던은 하도 부자가 많다 보니 돈 몇십 파운드 더 쓴다고 해서 내가 상류층이 되는 것도 아니고, 잠시라도 그런 느낌 드는데 돈 쓸 의향도 없다.     


결론. 

고급인생, 혹은 상류층 인생의 소비패턴을 따라 하지 않는 것은 나의 판타스틱한 소박함 뭐 이딴 건 아니다. 그것보다는 - 

1) 영국에서 이민자 아웃사이더로 그 '상류층 인생'의 소비 패턴이 그리 체화되지 않았고 

2) 뼛속까지 엔지니어라, 나한테 안 좋으면 어차피 별 상관없으며, 고급스럽다는 건 나한테는 자기만족에 도음 안 되고 

3) 아프리카 출신이라 웬만한 건 그냥 감지덕지하고 

4) 아무리 벌고 써봐야 런던에서 부층에 끼는 건 불가능하니까 쓸데없이 식당 등에 돈 붓느니 탁아 비용에나 더 투자하는 게 나한테는 이득이라 거기에 돈 쓴다는 것.     


덧1: 

영국에서의 계급 구분 및 차이는 대단어마무시하지만 계급 구분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말하는 거 10초 들으면 구분 끝. 쇼핑을 어디서 하든, 옷을 어떻게 입었던, 얼마나 비싼 차를 타고 다니든 상관없다. 말하는 걸로 게임 오버. 롤스로이스 몰고 고성에서 살면서 명품으로 치장하고 돈을 뿌리고 다녀도, 워킹 클라스 억양으로 말하면 당신은 워킹 클라스. 저녁을 tea라고 하면 돈이 아무리 많아도 상류층 진입 불가.     

그러므로 외국인은 아웃오브안중. 어설프게 상류층 억양 흉내 내는 건 아예 그냥 자기 억양으로 말하는 것보다 훨씬 촌스럽다. 그냥 자연스럽게 말하셈.     


덧2: 

아스다는 미국의 월마트가 영국에서 운영하는 슈퍼마켓 회사 이름이다. 그러니까 월마트=아스다로 보면 되겠다. 미국에서도 People of Wallmart라고 사진 올라오는 거 보면 월마트는 못 사는 사람들 간다고 조롱하는 듯.     


덧3: 

런던의 육아비용 ㅡ.ㅡ 내가 뭐 고급 육아 서비스를 이용해서가 아니라, 인건비가 엄청 비싸서 비싸다. 어린이집 종일반 한 달 1200~1700. 내가 애들 통학 못 시켜주니까 통학 도우미 및 집안일 조금 도와주는 입주 오페어 아가씨 한 달 400 + 숙식 제공이라 들어가는 돈 조금 더. 이 방을 렌트 놓으면 한달에 최소 500파운드 받겠지만 그건 넘어가고 ㅠ.ㅠ 애들 있으니 더 큰 집에 살아야 하니 그 비용...도 우선 넘어가고. 방과 후 두세 시간 케어도 따로 내서 한 달에 한 300파운드. 애들 어릴 땐 봐주신 부모님 왔다갔다 비행기 표 체류비... 육아는 아주 비싼 취미 생활입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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