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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Dec 31. 2017

생수통 논란에 이어

2016년 12월 10일

내 참. 오늘 같은 날까지 이런 글을 쓰게 만들다니.     

핀트 안 맞는 사람하고는 댓글 놀이 하면 안 된다. 내가 맨날 다짐하면서도 답했다가 또 아무말 대잔치에 강제 소환되었다.     


생수통 얘기에 댓글이 달렸다. 주 포인트는 자기가 외국에 살고 외국 여자랑 사귄다는 건데, 두 번째 포인트는 "외국 여자들은 한국 여자들 니네처럼 약한 척 안 해"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지 싶으실 거다.     

내 글은 여자 직장인이 백 퍼센트인 사회였다면 생수통을 그런 식으로 디자인 안 했을 거란 얘기였다. 이게 딱히 여자 차별하려고 한 게 아니고, 그냥 디폴트가 남자다 보니까 세상의 참 많은 것들이 그런 식으로 디자인 되어 있다는 거였다. 그런데 이런 글을 읽고도 "외국 여자들은 (한국 여자들과 달리) 일 할 때 안 뺀질거리는데요. 여자가 들기에 무겁다고 하는 니가 오히려 여성차별하는 거임."     


아 빡쳐.     


그렇게 남자들이 힘든 일을 열심히 잘 해서 여자에게 독박 육아 살림 대리효도 시키나? 그래서 간병일은 여자 담당인가? 한국 여자들이 힘들고 위험한 일 안 한다고 할 때마다 웃기는데, 미국의 벌목공 트럭운전사 선원 중에 한국인이 몇 퍼센트일까? 한국 남자들이 그런 일은 힘들고 더럽고 위험하다고 안 하면서 인종차별 있다고 불평한다는 무식한 소리를 들으면 어떤가? 간호사 일이 얼마나 힘들고 빡센데 그런 일을 남자들은 안 하는 거 보니 게으르고 김치스럽다는, 신박하고 무식한 말은? 살기 편한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세탁소는 하면서 오지로 가야 하는 벌목공은 안 하는 거 참 이기적이다 하면? (그나저나 해외나 한국이나 페미니즘 깐다는 남자들 논리는 왜 이렇게 다들 비슷한 거야 -_-)     


단순 근력으로 보자. 남자 키가 160이 평균인 군대에서 만든 풀 군장과, 키 190의 남자들이 평균인 군대에서 만든 풀 군장 무게가 같을 거라 생각하나? 그게 키 작은 남자에 대한 차별인가? 차별은 아니지. 그냥 기본값이 어디에 책정되어 있는가가 다를 뿐이다. 꼭 사회가 여자를 차별해서 어렵게 만드는 게 아니라, 워낙 성 역할이 정해져 있다 보니까 삶의 소소한 것들까지 성 역할을 기본으로 깔고 설계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아이 기저귀 가는 곳이 남자 화장실에 보통 없는 거고. 이때 남자가 아이 데리고 외출해서 기저귀 가는 곳 못 찾아서 우왕좌왕하면 "해외에서는 남자도 그런 거 잘 가는데 한국 남자들 진짜 대책 없는 듯" 하면 빡치겠죠? 남자 화장실에도 기저귀 갈 수 있는 공간을 보편적으로 마련해 놓은 나라랑 없는 곳이랑, 아이 데리고 있는 남자로서의 경험 자체가 다른데, 기저귀 갈기 싫어서 안 가는 것도 아니고 아예 갈기 힘들게 되어 있는 상황을 가지고 '남자의 태도 문제' 기본 센스 상실이죠.     


그리고 말 나와서 하는 말인데, 생수통 안 든다고 난리 치다가도, 실제로 조금 무겁다 싶은 거 들면 또 "여자도 아니다" "참 힘만 세다"얘기 나온다.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이 앞뒤 안 맞아 보이는 말에도 이기적인 남자만의 논리가 있다.     


"평소에는 내가 귀찮으니까 육아, 살림, 무거운 거 옮기는 그런 것도 니가 좀 알아서 해라. 하지만 니가 좀 이쁘고 내가 좀 작업 걸어보고 싶은 여자라면 적당하게 약한 척 '오빠 이거 좀 들어주세요 너무 무거워요 뀨뀨'라고 센스 있게 부탁해라. 오빠가 해줄게. 글치만 못생겼다면 닥치고 니가 알아서 해" 이다. 그리하여 앞에서 쉽게 뻐길 수 있는 어린 여자를 찾고 김밥천국 데이트에도 감동하는 '비김치녀'를 찾다가, 결혼하고 나면 더 이상 뻐길 필요가 없으니 여자 혼자 독박 육아 살림 효도하기를 바란다.     


다시 반복. 

핀트 안 맞는 댓글에 반응 금지. 뭐 하는 짓이야 이 좋은 날에. 참고로 지난 몇 주에 갑자기 구독자 늘면서 차단 훨씬 많이 합니다. 아무말 댓글은 박제합니다.     


- 그냥 두거나, 박제만 하려다가 어떤 사람인지 제보받고 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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