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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Jun 05. 2018

아인슈타인이 극찬한 과학자가 있었다

2016년 12월 18일

1900년대 초반 얘기다. 아인슈타인이 극찬한 과학자가 있었다. A라고 하자. 이 사람은 유태계였고, 숫기가 없었다. 오스트리아의 한 대학에 도착한 A는 B를 만난다. 외모로는 B가 훨씬 빼어났다. 게다가 활달하고 붙임성까지 좋은 B는 내성적인 A와 급속도로 친해졌다. 꼭 구분하자면 A가 천재 과였고 B는 열심이 과였다. 친구가 별로 없던 A는 하루의 거의 대부분을 같이 보낸, 아름답고 밝은 B를 짝사랑했던 것 같다. B 역시 A와 아주 잘 지내는 듯하였으나 4년 후 B는 더 잘난 사람을 만나 홀랑 결혼해버린다. A는 죽을 때까지 다른 사람을 사귀지 않았다.     


A는 원소 주기표의 마지막 빈칸 중 하나를 채우는 성공에 B가 참여하지 않았지만 공저자로 넣어주었다. 논문을 낼 때는 B의 이름이 먼저 올라가도록 조처하기까지 했다. 다들 A가 좀 호구짓 한다고 생각했을 거다. 아직 짝사랑이 남아있어 그럴지도 모른다 쑥덕거렸을 수도 있다. A는 괘념치 않았다. 나중에 히틀러가 권력을 얻고 유태인 핍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30년 지기 B가 A를 아주 처참하게 배신했어도, 그래서 스웨덴으로 도망가야 했어도, 인연의 끈은 놓지 않았다. 같이 하던 연구를 B가 혼자 맡아 어려움이 생기자 A는 스웨덴에서 첨삭지도에 가까운 피드백을 수없이 날려주었다. B는 천재 과는 아니었을지라도 엄청나게 꼼꼼한 화학자여서 둘의 궁합이 잘 맞았다. 이해할 수 없는 실험 결과로 고민하는 B가 또 편지를 보냈고, A는 천재 끼 돋는 통찰력으로 한 이론을 내놓았다. A가 옳았다. 그렇게 핵분열의 비밀이 밝혀졌다.     




일부러 성별을 밝히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아주 여러 시나리오가 떠오를 것이다. 공대 아름이 생각한 분도 있을 것이다. 천재과학자 A옆에 붙어서 어장관리 하며 단물 다 빼먹고 더 잘난 남자와 결혼하고, 그것도 모자라 A를 배신한 후에도 징징 짜서 매달리는 여자. 하지만 내 페이지는 페미니스트 글이 많이 올라오니까 A가 여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이야기를 계속하자면, 핵분열 관련 공로로 B는 노벨과학상을 받았다. A의 이름은 거론되지도 않았다. A가 연구실의 리드 격이었다고 공공연히 말했던, B와 같이 연구한 스트라스만도 언급되지 않았다. 자, 이러면 갑자기 B가 남자로 보인다. 노벨상 받은 여자는 퀴리 부인 말고 생각나는 사람 별로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선입견의 힘이다. 공대의 숫기 없는 천재와 활달하고 외모가 뛰어나서 그 천재의 호감을 사서 공을 가로채는 세팅이라면, 미모를 무기로 뭐든지 얻는 여자의 흔한 스테레오타입이 곧바로 떠오른다. 그렇게 어장관리 하다가 결국 결혼은 더 잘난 사람(이 스토리에서는 B가 연하의 미술전공 대학생과 결혼했다).  


리제 마이트너와 오토 한 이야기다. 아인슈타인이 우리의 마담 퀴리라고 했던 여자. 청소부를 제외한 여자는 연구소 출입도 허락되지 않던 곳에서 지하 목공실에 실험실을 차렸다. 이 허접한 곳에서 연구 성과가 팡팡 터지자 대학교는 그제야 여성 화장실도 만들어주고 연구소 출입도 허가했다.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엄청나게 차별을 받고 결정적으로 오토 한까지 배신을 때리고 대학교에서 쫓아내어 스웨덴으로 도망갔다. 그래도 속없이 연구는 계속했고, 오토 한은 그걸로 노벨상을 탔다. 오토 한은 나이가 들면서 핵분열 연구 시절 리제 마이트너의 역할을 점점 축소했고, 나중에는 모르는 사람인 척까지 했단다.     


오토 한의 이름을 딴 105번째 원소 Hahnium은 (마이트너와는 상관없는 긴 얘기지만) 이름이 Dubnium으로 바뀌었고, 109번 원소는 마이트너의 이름을 따서 마이트너리움이 되었다. 원소 이름 중에 유일하게 실존하는 여성의 이름이다 (Curium은 퀴리 부부이름을 땄음). 역사에서 여자는 늘 지워지지만, 최소한 마이트너는 늦게나마 인정이 되었다. 노벨상 위원회의 최대 실수라고들 하지만 아직 위원회는 이에 대해 입장을 표명한 적은 없는 걸로 알고 있다.     

(David Bodanis의 E=mc2에서 가져온 이야기입니다)     


덧: 

리제 마이트너는 아버지가 부유한 변호사였고, 딸의 재능을 알아줬고, 공부한다는 딸을 밀어줬고, 마침 그 시대에는 그런 여성들이 조금씩 허락되는 시기라서 그 정도의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여성의 출입 자체가 금지되고 여자 화장실이 없는 곳에서 버텨야 했다. 그 후로 백 년이 넘게 지났다. 아직도 전 세계에서 가난을 핑계로 딸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 곳이 많다. 딸도 공부 많이 시키는 건 한국도 아마 90년대 이후에야 보편화되었을 것이며 서구에서도 남녀공학에 다니는 여자아이들은 '여자답지 않은' 과목은 피한다. 여학교에서는 그런 성향이 훨 덜하다. 내가 대학 다닐 때도 공대 물리 강의실은 몇백 명의 남자에 열 명 남짓인 여자였다. 다시 말해 여성에게 교육의 기회가 주어진 것도 최근 일이고, 그나마 돈 없는 집은 아직도 아들에게 올인 하고, 수학 과학은 여자답지 않다고 생각하며, 이공계로 가서 취업이 쉽다는 것은 남자 얘기다.     


이제는 고등학교에서도 여학생들의 수학과학 점수가 더 높다고 한다. 그렇게 찍어 눌러도 그렇다.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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