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27일
인종차별자에게 인종차별 철폐 분위기가 인지 능력 발달, 치매 방지에 더 좋다고 친절하게 설명하는 기분
살인범에게 살인보다는 운동이 더 스트레스 풀기에 좋다면서 웃으며 설득해야 하는 기분
노상 방뇨자에게 그러시면 고객님 손 씻기도 힘들고 옷에 튀기도 하니까 화장실 찾으시라고 사근사근 기분 나쁘지 않게 말해야 하는 상황
아동 상습 학대자에게 그렇게 학대하면 나중에 아이가 효도 덜 할 거라고, 피해자 얘기는 하나도 하지 않고 가해자 기분 고려해서 말해야 하는 그런 상황.
페미니즘이 남자에게 이득이 됨을 보여줘야 한다는 주장 보면 그런 생각 들 때 있다. 하지만 나 역시 그런 식으로 글 가끔 쓴다. "페미니즘은 당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페미니즘이 성공하면 당신의 부양의 의무도 줄어들고 남자다움을 강요받지도 않는다!"
실제로 원하는 것이 몰카 찍지 마라, 데이트 강간하지 마라, 리벤지 포르노 나쁘다는 거 인정하고 소비하지 마라, 성희롱하지 마라, 결혼 임신했다고 밥줄 끊지 마라, 때리지 마라, 콘돔 거부하지 마라, 성차별하지 마라, 같은 사람으로 대해 달라 등등인데, 그렇게 말하면 기분이 상하신다니 말투를 바꾼다. 당신들에게도 가부장적인 문화가 나쁜 거예요, 몰카 그거 사실 되게 나쁜 거예요, 리벤지 포르노 그거 당하는 사람은 모르실 수도 있지만 무지 마음 상하거든요? 맞을 짓을 하는 여자는 없어요, 성상품화가 싫어요, 저희도 같은 사람이에요 이렇게 말해야 하는 상황이 먹먹하다. 진짜 우리 그 정도밖에 안 되나. 상습적으로 당하는 폭언 일상적인 성추행 그만두라는 말도 좀 많이 잠재적 아군님들께 애교 가득 담아서 기분 안 나쁘시게 돌려돌려 사근사근 말해야 하나.
아 물론 꼭 그렇게 해야 조금이라도 귓구녕에 구멍이 뚫리겠다면 그렇게도 합니다. 말했지만 저도 그렇게 했고, 새해에도 또 할 겁니다 (양파 태세전환 보소;;) . 통하기만 한다면 "이렇게 페미니즘 하면 모쏠탈출" 헤딩 뽑아서라도 씁니다. "소개팅에서 통하는 페미니즘"은 어때요?
하지만 진짜 우리 인성 레벨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가 하는 씁쓸함은 있습니다.
뭐 어쨌든. 새해에 또 힘내서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