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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angpa Jun 03. 2018

오래전 책 후기로 이렇게 썼다. 미래의 나에게

2016년 12월 31일

십 년도 더 지난 옛날에 책 후기로 이렇게 썼다. 미래의 나에게 -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어. 너는 더 잘 할 수 있을 거라 믿어 (To the future me; this is the best I could do. I'm sure you can do better). 그때 나는 에너지로 넘쳤고, 야망이 조금이라도 있었고, 좀 더 나은 나를 꿈꿨다. 며칠 전에도 썼지만 난 나 자신을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그나마 세월 지나면서 에너지까지 많이 줄었고, 간단히 말하자면 전체적으로 그냥 쭈구리가 되었다.     


1월 1일이다. 

뭔가 더 나은 나를 꿈꾸며 계획을 세워야 할 것 같으나, 매년 꿈이 작아진다. Be the best you can be라 다들 외치지만 내가 될 수 있는 최고가 무엇인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도 흥이 식었다. 늘 더 나은 나를 떠올리며 지금의 나를 미워했으나 이젠 그 '더 나은 나'가 가능한 건지도 글쎄. 지금의 한심한 내가 그냥 나인 건 아닐까. 게으르고, 한없이 늘어지고, 나은 모습 보이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그냥 내 구석으로 기어들어가 문 닫아버리고, '삶에 대한 예의' 지키겠다고 옷도 좀 더 차려입겠다 두 달 전에 큰소리 쳐놓고는 다시 치렝스+후디로 돌아온, 많이 노력 부족이고 많이 모자란 나. 어쩌면 죽을 때까지 난 빤딱빤딱한 집은 내 손으로 못 만들지 모른다. 55 사이즈를 헐렁하게 입는 것도 무슨 병 걸려 살이 확 빠지지 않는 이상은 못할 거 같고, 하루 종일 무언가에 집중하여 매달리는 것도 가망이 없어 보인다. 더 나은 나, 내가 될 수 있는 최고, 포텐 터진 내가 뭔진 모르겠으나, 아무래도 내 생전에는 못 볼 듯한 두려움이 엄습한다.      

Can I do better? Can I be better? 그렇게 오랫동안 열망했던 더 나은 나는, 그게 과연 내 그릇으로 가능한 건지에 대한 질문이 생기면서 더 이상 또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애 둘 때문에 지쳐서 그런지, 마흔 다 되어 가는 나이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너무 오랫동안 발버둥 치다가 드디어 포기하게 된 건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이번 새해에는 새해 목표를 아직 적지 않았다. (참고로 작년 새해 소원 중 하나는 '블로그도 때려쳤겠다 글 좀 제발 그만 쓰기'였는데 see how well that worked out. 별 효과 없었죠?)   

아침 아홉 시다. 상상 속의 나는 새벽부터 조깅하고 집 정리하고 애들 맛있는 아침 만들어주고 밀린 빨래 좀 하고 1월 프로젝트 계획 세우고 이메일 정리하고 공부 계획 세우고 베란다 정리하고 우편물 정리하고 그 외 백만 가지 다 끝내겠으나, 현실 속의 나는 해 뜨자마자 허리 아프다는 핑계로 소파에서 글 쓰고 앉았다. 그것도 새해부터 우는 소리. 뭔가 다른 내가 되겠다는 좀 힘들 것 같고, 신년이고 한데 오늘 하루라도 뭔가 목표를 하나라도 잡아야 할 것 같아서 5분 고민했다. 그리고 지금 7분 째다. 모르겠다. 어쩌면 아직도 노력은 하고 있다는 데에 의의를 두고 우선은 애들 아침 하는 것부터. 라면 좀 그만 먹고.     


덧1:  

저 우는 소리 진짜 엄청 많이 극심하게 줄인 거예요. 물론 그게 자기 계발 목표로 나아지고 그런 건 아니고 딴 데 가서 합니다 ㅋㅋ 

덧2: 

전 글 쓰는 버릇이 제 인생의 제일 큰 문제라고 생각하던 사람인데, 이게 작년 이후로 셀프정신분열 상태에요. 아예 그냥 작정하고 글 지르기 시작한 후로는 '아니 뭐 그래도 어느 정도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점도 있다고 볼 수 있....다는 걸 꼭 부인할 수는 없...는 게 아니라고 꼭 말할 수 있냐고 우기는 애랑, '너 그딴 식으로 그 못된 버릇 자기 합리화하려는 거 다 알거든?? 청소랑 공부나 좀 하지??' 라는 애랑 둘이 늘 교전 상태입니다. 

평생을 '내가 글만 안 썼어도 뭐라도 이루었다'며 한탄하고 살아서, 이걸 긍정적으로 보는 게 쉽진 않아요. 블로그 시절부터 이 우는 소리 아주 단골 멘트라서 아시는 분들은 지겨우실 듯. 내가 또 글을 쓰면 개라고 수없이 다짐하는데 결국 도돌이표. 

덧3: 

이 글 쓰고 올릴까 말까 40분 망설였는데 아직도 목표는 생각 안 나네요. 라면이나 끓여먹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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