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1일
* 2008년 글입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만든 다큐멘터리 Insideacult를 봤다. 지가 메시아라고 우기는 마이클 트래베서라는 60살 먹은 남자와, 그를 따르는 몇십 명의 신도들이 스토롱 시티라고 이름 지은 마을에서 사는 얘기였다. 2007년 10월 31일에 세상이 끝난다고 주장하던 그는 세상이 끝나지 않자 그 후로 인터뷰를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가장 재미있게 보았던 부분은 그의 아들 얘기였다. 보통 사이비 종교 교주가 그렇듯 마이클 트래베서 역시 여신도들과 부적절한 성관계를 가졌다. 십 대 여자 아이들을 데리고 자는 것은 기본이고, 나이든 유부들의 남편이 뻔하게 있는 데도 여신도들을 거느리고 있는 거야 뭐 그렇다 치지만 제일 특이한 건 며느리와의 관계였다.
60대의 트래베서에겐 삼십 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아들 제프가 있다. 아버지 일을 아주 열성적으로 돕는 오른팔인데, 아버지 종교단체에 가담하기 전엔 경찰관이었다던가 뭐 그랬다. 할튼, 제프는 크리스티아나란 여자와 결혼을 했다. 그리고 그의 부인은 그의 아버지와 계속 성관계를 가지고 있다.
자, 여기에서 양파와 신랑은 이놈이 미친놈이냐 아니면 고도의 심리전인가에 대해서 한참 이야기를 했다. 피붙이에다가 부려먹기 쉬운 아들이지만 성깔이 보통은 아니다. 만약 내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다른 여신도도 있는데 꼭 며느리랑 성관계를 맺을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며느리가 절세미인이라든가 그런 게 아닌 이상은. 그리고 어쨌든 내가 보기엔 별로 안 이뻤다.). 그렇지만, 만약 아들이 정말 며느리를 사랑한다면, 자기 아내를 바치는 것이야말로 아버지의 '신성'을 받아들이는 절대적인 증표가 될 수 있다.
아들 입장에서 보자. 2007년 10월 31일에 세상 종말이 다가오지 않았다. 이럴 경우에
1) 아버지가 사기꾼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떠난다
2) 그냥 아버지를 계속 따른다 두 가지의 옵션이 있다.
만약 1)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제프의 인생은 그야말로 완전히 공중폭발이 되는 것이다. 그는 아내를 사기꾼 아버지에게 바친 병신 중 상병신이며, 젊은 시절을 엉터리 사이비 교단에 바쳤으며, 미래 계획도 없고, 그야말로 천하의 바보로 전락하는 셈이다. 그러나 아버지를 계속 따른다면 그의 모든 행동이 정당화되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신의 아들'이 될 수도 있다. 넘버 투에서 넘버 원이 될 가능성이 보이는 거지. 아버지가 거느린 여신도는 다 그가 물려받으면 되고.
다단계에 빠진 사람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게 사기라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그들은 돈과 시간을 바치며 주위 사람들에게 사기 친 못난 놈이 되는 거다. 그렇지만 사기를 인정하기 전까지는 약간의 노력으로 금방 큰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다. 그게 사기니까 제발 빠져나오라고 하는 이들은 금빛 미래에 먹칠을 하려고 드는 못된 것들이 되는 거지.
나도 꽤나 자기 합리화를 잘 하는 편이다. 미국/캐나다에 갔더라면 내 인생은 어땠을지 모르지만 남아공에서 자라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정외과 제대로 졸업해서 만약 그쪽 방향으로 나갔더라면 좋았을지 모르나 지금 내 삶에 만족하니까 괜찮다고 본다. 고3 때 하버드에 떨어졌던 것, IT 쪽으로 들어온 것, 다 좋게좋게 합리화해버렸다. 그래서인지 난 마이클의 아들 제프가 멍청하다기보다 참 안돼 보이더라. 저라고 의심이 없겠는가. 제 아버지가 제 아내를 상습적으로 범하는데 울컥할 때가 없겠는가. 그래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시궁창 현실로 굴러떨어지기 보다는 '믿는 쪽'을 택한 거겠지. 믿음은 그래서 대단하고, 서글프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