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15일
백인 남자들보고 'white male privilege', 백인 남성의 특권 어쩌고 하면 버럭! 하는 백인 남자들 많습니다. 오히려 역차별 많다고 하는 사람도 있어요. 제가 역차별 소리 들어도 혈압상승으로 죽지 않는 이유가 - 많이 들어봐서 ㅋㅋㅋ
그 특권이란 게, 정말 별거 아니거든요. 없는 사람에게는 무지 아쉽지만 있는 사람은 별 생각 없는 것. 공개된 장소에서 애인과 손잡고 걸어도 되는 특권. 이건 동성애자들에게 정말 아쉽죠(물론 쏠로들은 '애인이 있는 것들의 특권이다!!!!' 하겠지만요 :D). 직장에서 결혼 언제 해? 애인 있어? 물어볼 때 별 생각 없이 애인 있다 없다 말 할 수 있는 것도 이성애자의 특권입니다. 동성애자들은 보통 거짓말하거나, 애인을 친구라고 속이거나 하는 일이 다반사죠. 들키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요.
영어 구사자로서의 특권도 많아요. 세계 어딜 여행해도 말이 통할 거라는 확신이 있고, 내 언어를 하라는 게 무리한 요구가 아니죠. 무슨 상황이든 영어 못하는 사람보다 스트레스 훨씬 덜 받아요. 외국에서 웬만한 물건을 사도 설명서는 영어가 있을 경우가 많고, 호텔 프론트에서, 전화 걸어서, 당연히 내 언어로 말하는 사람을 요구할 수 있다는 거, 준비되어 있다는 거 엄청난 특권이에요. 이건 공감하시죠.
있어서 엄청 이득이 되고 구좌에 돈이 들어오고 애인이 생기고 그러는 게 특권이 아닙니다. 없을 때 뼈저리게 느끼는 게 특권입니다. 미국에서 흑인은 가게에 들어가면 도둑 의심당할 확률이 높습니다. 운전할 때 경찰이 과하게 단속할 수도 있고요. 별 생각 없이 가게에서 쇼핑하고, 경찰관에게 걸리면 면허증 보여주고 슥 지나가는 백인 남자는 '와 내 특권 땜에 개이득'이란 생각 안 했겠죠.
남자의 특권 봅시다. 한국엔 흔하지 않은 것 같지만 거리를 걸어가다 보면 어이 아가씨~ 여기 봐! 이쁘게 웃어봐! 어이 이쁜이! 이렇게 작업 거는 곳들이 많습니다. 대답 안 해주면 위협하기도 합니다. 남자로서 이걸 안 당하는 게 특권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오백 원이라도 살림에 보탬 된 거 아니죠. 그리고 남자로서는 다른 여자들이 자기에게 그렇게 작업 걸어주면 좋겠다고 느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여자들은 불쾌하고, 신체의 위협도 느낍니다. 그런 일 좀 안 당했으면 좋겠다, 안 당하는 남자들은 얼마나 편한가 생각합니다.
할머니가 성차별해서 손녀만 일 시킨다고 합시다. 손자 손녀를 불러 둘이 차렷대기 시켜놓고 손자 너는 남자니까 일하지 말고 손녀 너는 일해라, 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손녀에게 잔소리를 하고, 손자는 어쩌면 그 말을 듣지도 못했을 수 있습니다. 특권이라고 느낄 기회도 없죠. 입사 서류 제출하는데 여자는 같은 학교 같은 학점이라도 서류 통과가 잘 안 됩니다. 통과된 남자가 와 내 특권 봐! 내 여자 동창 비해서 통과 잘 되네! 했을까요? 아니요. 요즘엔 다 취업하기 힘들어요.
다들 내가 받는 건 별 느낌 없고, 내가 못 받는 것에는 몇십 배, 몇백 배 서럽고 분합니다. 저는 비장애인으로서 어디를 갈 때 휠체어가 가능한 지하철역과 그 외 대중교통 루트를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대중교통 탈 때마다 내 특권에 감사하기보다는 런던 지하철에 화내고 길막힘에 빡칠 일이 더 많죠. 면접 갈 때, 사람 만날 때, 여행 갈 때, 영어가 안 통하는 사람은 얼마나 불편할까 가끔 생각하긴 하지만 그거에 매일 감사하진 않습니다. 한국 분들도 매일매일 와 내가 한국말 잘해서 이렇게 쉽게 치킨도 배달시킬 수 있어. 한국말 못하는 외국인들은 얼마나 불편할까 하지 않잖아요. 생긴 걸로 덕 보지는 않았지만, 밍밍 보통하게 생긴데다가 여자라서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수군대지도 않으며, 아주 보통 정상적인 삶을 사는 게 가능합니다.
특별한 대접을 받는 게 아니라 별 생각 없이 살 수 있는 것, 이게 특권입니다. 페미니스트들도 제발 좀 안 열 받고 아무 생각 없이 사는가, 다른 여자들도 페미니즘에 1도 관심 기울일 필요 없는 것이 궁극적 목표입니다. 당신이 가진 것,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넘사벽의 부러운 라이프스타일이거든요. 페미니즘에 전혀 신경 안 쓰고, 그게 뭔지 모른다는 거. 그게 왜 필요한지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 페미니스트를 전혀 이해 안 해도 삶에 지장 없다는 것. 여자든 남자든 그게 특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