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angpa Jun 07. 2018

기득권자, 특권 있는 자로 살기와 죄책감

2017년 1월 20일

고등학교 때 읽은, 이름 생각 안 나는 프랑스 연극은 딸을 데리고 여행하는 한 중년 남자가 주인공이었다. 이 남자는 어찌어찌하다가 한 사람을 구해주고(A), 자기 자신도 누구에게 구조를 받는다(B). 자기를 구해준 B에게 당연히 고마워하지만, 이 사람은 자기가 구해준 A를 더 좋아하고, 딸에게 A를 사윗감으로 내민다. 보통 사람을 자신을 선하고 좋은 존재로 보고 싶어 하는데 A와 있을 때는 자신이 이 사람을 구해준 영웅이 되지만 B와 있을 때는 늘 감사함을 표시하면서 약자가 되는 느낌이라 그렇다. 

이 심리는 이상하게 비상식적이다 느껴지는 사람들의 선택에 자주 나타난다. 뭔가 부족하고 내가 도와줘야 하는 사람 A와 나만을 사랑해주고 아끼는 사람 B의 경우 A를 택하는 케이스 꽤 봤을 것이다. A와 있을 때는 내가 도움이 되며 존재감이 있는, 주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해가는 사람이지만 B와 있을 때는 그냥 인형같이 가만히 앉아서 감사합니다만 하면 되니까 그렇다.    

 

사람은 누가 나에게 무슨 말 했는지는 기억 못 해도, 어떤 기분이 들게 했는지는 절대 잊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people will forget what you said, people will forget what you did, but people will never forget how you made them feel.”, Maya Angelou). 내 철학은, 사람은 자신의 모습을 사랑할 수 있는 상황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몇십 년에 걸친 제도적인 인종차별이 끝나던 시기에 남아공으로 갔다. 그리고 그 후 20년 동안 기득권자, 특권을 가진 자들로 공격받는 백인들과 주로 어울리면서 크게 느꼈다. 나쁜 사람이 되고 싶은 이는 없다. 너는 특권을 가졌다, 너는 우리를 억압했다, 너는 그로 인해 덕을 봤다는 소리를 듣고 기분 좋은 사람은 없다. 그게 명백한 사실이어도 그렇다. 그리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오히려 자기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주장할 근거를 찾는다. 그게 왜 내 잘못이야? 내 전 세대가 한 일인데 왜 내가 그걸로 피해 받아야 해?이거 역차별이야. 난 잘못한 게 없어.     

실제로 나도 남아공을 떠나고 영국으로 오면서 정말 좋았던 것 중 하나가, 특권을 누리는 배부른 것들이란 죄책감에서의 해방이었다. 대학 졸업하고 그럭저럭 괜찮은 회사에 다니고 백인 지역에 사는 것만으로도 상위 1%에 들어갔다. 세금은 엄청나게 떼였지만 내가 보는 이득은 없었다. '니네는 엄청나게 이득 봤으니까 이제 소득 재분배해야 해' 라는 철학이 사회 전반에 깔려 있었고 백인들의 피해의식은 엄청났다. 93년에 흑인 정부가 들어왔을 때 열 살이었던 아이들은 2003년도가 되자 자격미달인 흑인들이 대거 뽑히고 백인들을 대놓고 차별하는 데에 거세게 반발했다. 

진짜 기득권 - 40대+ 백인 남자들은 아직도 고위직에서 잘 먹고 잘 살거나, 재산 다 들고 유럽으로 튀거나 시골 별장으로 은퇴했다. 하지만 가난한 젊은 백인들에게 그런 사치는 없었다. 전 세대는 죄지어 놓고 이득 보고 다 튀고, 후세대들이 피본다고 난리였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흑인들 앞에서 하면 싸대기다. 아직도 남아공의 흑백 간 빈부 차이는 말 할 수 없이 크다. 그리고 백인들이 '우리 취업하기 힘들어!' 해봐야 흑인들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민다. "우리 집에는 창문도 수도도 없었어" "난 여섯 살부터 상습적으로 성폭행당하는 곳에서 자랐어" "흑인 전용 학교는 백인 학교랑 교육 내용부터 달랐어. 니네는 어차피 커서 일용직 노동할 건데 수학은 배워서 뭐해 그랬다고" "난 우리 집 어른들 반을 에이즈로 잃었어" 하는데 뭐라고 할 것인가?     

흑인들이 너무나 대대적으로 차별받아온 것은 사실이라 할 말은 없고, 그렇지만 당장 내가 당하는 역차별은 분하고, 내가 무엇을 하든 내 인종그룹은 무조건 억압하던 지배자들 취급받는데 분하다고 말해봤자 '역시 넌 인종차별주의자' 소리밖에 돌아오는 게 없다.     

오히려 정말 잘 사는 애들, 취업 걱정 없는 애들은 여유 있게 동의한다. 맞아, 백인 정부가 정말 잘못했지. 빈부격차가 이렇게 심한데 백인들이 좀 더 희생하고 양보해야지. 인종차별은 아주 엄하게 다스려야지. 에휴 하여튼 흑인들한테 조금이라도 지는 걸 못 참아요. 찌질해. 우리 다 같은 사람인데 왜 그걸 못 보는 걸까? 인성 문제가 아닐까?     


남아공을 떠나기 직전에 De LARey 라는 노래가 아프리칸스들 사이에 엄청나게 유행했다. 거의 20년 동안 독일의 나치 급으로 욕을 먹은 그들. 어디 가서 힘들다는 말 못 하고, 정치계에서나 상경계에서나 점점 다 밀려나고, 취업도 힘들어지고, 어딜 가나 '흑인들 착취해서 잘 먹고 잘살았던 극악 인종차별 그룹' 소리 밖에 못 듣고, 한때 필수과목이었던 자신들의 국어는 교육과정에서 사라지고, 자신들의 문화 어느 하나도 자랑스럽다고 말하기 힘든 분위기에서 펑 터진 그 노래는 정말 오랜만에 아프리칸스임을 자랑스럽게 해주었다.     


노래의 배경은 1900년대. 초반 영국과 아프리카너들 사이에 전쟁이 있었다. 사실 집단 수용소도 영국인들이 이때 시작한 거라는 주장이 있었다. 아프리카너 농부들의 부인과 딸 등 뒤에 남은 가족을 포로로 잡아 한곳에 몰아넣고 열악한 환경에 두다가 많이 죽었다고 한다(나치 수용소는 이 프로토타입을 독일식 효율성으로 업글한 거라는 이론이..;;). 그러니까 그때만 해도 아프리카너들은 대영제국에 핍박받으며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지키려는 가난한 농부들이었다. 그 중에 아주 뛰어난 장군이었던 De LARey 의 생을 바탕으로 만든 2006년 노래는 거의 아프리카너들의 국가 비슷하게 되었다. 드라레이 드라레이. 와서 우리 보어(Boer)들을 이끌어주소서. 따라가겠습니다 드라레이.     

이 노래는 그들을 다시 피해자로, 자유를 위해 싸우는 투쟁가들로 돌려놓았다. 약자를 억누르고 이득을 취한 기생충이 아니라 정의를 갈구하고 자신의 그룹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그런 무리로 만들어준 것이다. 난 이 노래 들으면서 닭똥 같은 눈물 흘리는 덩치 큰 백인 남자들 많이 봤다. 모였다 하면 이 노래 틀더라. 파렴치한 무리로 욕먹기보다는 자신의 정체성을 자랑스러워하고 싶은 마음이, 그들을 끌어줄 리더가 그만큼 절실했던 거다.     


그리하여 결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 people do well, if they can. 할 수 있다면 잘 하려고 한다. 하지만 자기가 알게 모르게 받은 특혜나 특권은 인정하기 힘들고, 자신을 나쁜 사람으로 만드는 모든 것은 피하고 싶어 한다. 고치는 쪽이 장기적으로는 자신에게도 이득이 된다 해도 그렇다. 피해 본, 계속 보고 있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정말 기가 막히고 황당해도, 네가 잘못했으니 인정해, 넌 나쁜 사람이야, 넌 우릴 착취했어란 말로 궁지에 몰린 이는 반성보다는 자기 연민이나 공격을 택하는 게 더 흔한 것 같다. 최대한의 자기 합리화, 정신승리가 우리가 험한 세상 살아남는 유용한 방법이라서 그럴 거다. 우리 멘탈은 소중하니까요.     

덧: 촌스러운 De LARey 뮤비 링크 아래에. 이 노래는 공격도 엄청나게 받았다. "나는 내 문화와 내 언어가 자랑스럽다"고 주장하는 가수와 "죄책감 강요 지겹다, 내가 뭘 그리 잘못했냐"라는 청중. 그리고 "그래서 지금 니네가 잘 했다는 거냐??? 뭐야, 이제 다 모여서 싸우자는 거야??"라는, 경악하는 사람들. 뉴스 링크도 아래에.


De la Rey Song - with English subtitles

 https://www.youtube.com/watch?v=vtKKJSfYraU


노래 관련 기사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07/feb/26/music.southafrica


매거진의 이전글 둘째가 또 아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